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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정필담

한국미술100년(9) - 심산 노수현

작성자촌정|작성시간15.03.31|조회수1,101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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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화

 

 

 

 

 

                                   노수현(心汕 1899-1978)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죽어 독립투사였던 할아버지의 손에서 유년을 보냈다.. 1914년에 보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화미술회의 강습소에 등록하였다. 이상범, 이용우가 동기생이다. 18년에 서회미술회를 졸업과 동시에 심전 안중식의 경묵당에서 이상범과 같이 기거를 하면서 그림을 배웠다.(호의 심은 심전에서 받았다고 한다. 전은 이상범에게)

 

  1921년에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삽화를 그렸다. 협회전과 선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때 이상범, 변관식, 이용우와 함께 활동하였다.

 

  1940년에 심산 화숙을 설립하여 1946년까지 제자를 양성하였다.

  1948년에 서울미대에 출강하였다. 1949년 국전 1회부터 9회까지 국전의 심사위원을 하였다. 이상범과는 동문수학을 하였고, 절친한 사이지만 화풍에는 차이가 있다. 청전이 조선미전에서 승승장구할 때 심산은 뒷 자리에 처져 있었다. 선전에는 작품을 출품하지 않기도 하였다. 그러나 협전(서화협회전)에는 1회부터 마지막 회인 15회까지 작품 출품을 하였다. (협전은 민간 단체인 서화협회에서 주도한 전시회이다. 조선 사람 위주의 모임이라고 하나 친일 인사 들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조선미전의 선전은 심사위원도 입선자도 대부분이 일본 사람이어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청전이 실경 산수로 나아간 반면에 심산은 관념산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관념산수는 전통적인 동양 산수화라고 한다. 전통 산수화에는 작가의 개성미나 메시지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상향을 그렸다고 하나 그 그림ㅇ 그 그림이다 보니 작가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심산의 작품은 이러 류의 작품이다. 특징이라면 기법에서 산의 표현에 우점준(작은 붓자국을 마치 빗방울처럼 하여 산의 주름을 나타내는 회화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글자 그대로 심산 유곡의 비경을 표현한 것이다.

 

  1920년 대에 전통 회화에 대한 강한 비판이 있었다. 변영로는 동양화가 시대 정신도, 예술적 양심도 없이 옛 그림을 모방이나 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동양화단은 이런 비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심산이 산수화를 ‘정신미의 추구’라고 말하지만 위의 비난을 벗어날 수 없다. 한국화단에서 관념산수화가 더더욱 비난을 받는 이유는 너무 전통에 얽메여 있었기 때문이다. 심산이 바로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동양화단의 권력자로 화단에 미친 영향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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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나 | 작성시간 15.03.31 심산선생님 동양화 대가 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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