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호 해질녁
김관호 자화상
김찬영 자화상
김관호(金觀浩) 월간미술 95/5
평양이 고향으로서 1911년에 동경미술학교로 미술공부를 하러 갔다. 수석 졸업을 하면서 졸업작품인 ‘夕暮’가 일본의 관전인 문부성 미술 전람회에 특선을 하였다. 동경미술학교가 생긴 이래 처음이라 하여 떠들썩하였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고희동의 자화상 2점과 이 작품이 유일하다. 1915년에 조선물산 공진회에도 고희동과 같이 작품을 출품하였다. 일반적으로 김관호를 고희동보다 더 천재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작품 특징은 외광파의 영향을 보이는 것이다. 인상파의 색채 분할까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시기에 일본에서는 프랑스의 외광파 화풍이 도입되어 유행하고 있었다. 그의 그림이 사실적인 그림도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도 인상파와 사실주의 중간 쯤에서 어정쩡한 그림이리라 생각한다.)
김관호는 1916년에 평양에서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술 전시회를 열었다.
1923년에 선전에 출품한 湖水라는 작품이 입선을 하였다. 이후로는 붓을 꺾고 공식적인 전시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평양에서 목재상을 하면서 살았다고 하나, 이후의 그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희동과 김관호가 미술 활등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한 것은 아직 우리의 여건이 서양화(특히 누드)를 받아들일 여건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4) 김찬영(金瓚永)
평양인으로, 김관호에 이어서 1912년에 동경미술학교로 유학을 갔다. 귀국 후에 미술활동은 하지 않고, 평양에서 김두방이라는 이름으로 문학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김찬영은 화가로서 보다는 비평가, 이론가로 더 많은 활약을 하였다. 특히 예술지상주의 미학을 소개하였다. 1921년에 ‘현대예술의 대안’에서 후기 인상주의와 입체주의를 소개하였다. 이 글에서 순수하고, 영적인 자아의 주관적, 본능적 표현을 현대예술의 근본이라고 소개하였다. 오스카 와일드를 연구한 임장화 등과 함께 예술지상주의 이론을 한국에 소개하여 왜정시대의 예술인이 낭만주의 사조에 젖어서 세기말적이고, 툎폐적인 풍조를 이끌었다. 한편 이들은 순수 예술 운동이라면서 사회주의 예술운동(참여예술)에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