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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정필담

서예사 -- 金文(1)

작성자촌정|작성시간15.05.19|조회수768 목록 댓글 2

 

 

이궤는 서주 초에 만든 것으로서, 무왕이 상을 정복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대우정에는 서주 초에 '우'가 귀방을 정벌하고 포로를 잡아 온데 대한 포상으로 상을 내린 일을 기록하였다.

 

金文

 

金文은 진 이전시기(先秦시기라고 함)에 청동기에 새겨진 문자를 말한다. (중국은 銅을 金이라고 함) 일반적으로 秦 이전의 문자를 篆書라 하고, 진 이후의 漢代의 문자를 隸書라 한다. 전서도 진 이전의 문자를 大篆이라 하고, 秦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의 전서를 小篆이라 한다.(진이 육국의 문자를 통일하여 만든 문자이다.)

漢初에는 진 이외의 문자(6國의 문자)를 古文이라 하였다.

한 나라 때 이미 금문을 발굴하여 연구하였으나 본격적인 연구는 北宋 때 였다. 최근까지 약 6600여 점의 청동문자을 발굴하였다. 아주 일찍 만든 것은 商나라 초기의 청동기로서 부호 형식이다. 부족을 상징하는 族徽가 아닌가 라고 한다.

이후에 청동 주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한 자에서 서, 너 자로, 10여 자로 글자 수가 많아 졌다.

금문이 제일 발달한 시기는 西周이다. 서주의 묘에서 주로 출토된다. 갑골문이 칼에 의한 刻이라면 銘文은 형틀(거푸집)에 붓으로 글을 쓴 후에 파내어서 주물로 만들므로 붓의 흔적이 강하게 남는다.(用筆) 따라서 갑골문과 금문은 刻과 筆의 차이로 느껴진다.

금문이 새겨진 주요 청동기로는 毛公鼎 32行 497字

大盂鼎 19行 291字

史牆盤 18行 284자 등이 있다.

그 외에도 大豊궤, 散氏盤가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중산왕의 기물이 많다.

1) 商代 -- 뮨자적 동기와 圖形문자가 있다. 도형문자는 형상을 象形으로 표현한다. 단슌히 하나의 형상인 것도 있고, 형상을 조합하여 표현함으로 의미를 담은 것도 있다.(위의 사진) 읽기가 어렵다. 족휘가 아닌가 생각한다. 문자적 동기는 주로 왕실에서 사용한 청동기로 글자가 새겨져 있다. 행과 열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

 

 

문자가 대체로 간단하며, 그림의 형태가 많다. 갑골문보다 더 상형인 것도 있다. 갑골문과 동 시대에 만든 것이기나, 한 단계 발전한 단계이다.

2) 西周 初期 -- 商代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획이 두텁고 붓을 오른 쪽으로 삐친다.(波책) 필세에 힘이 있다. 서주 초기는 국가가 강성한 시기로 시대의 분위기가 표현되었다. 장편 명문이 나타나고 문자를 질서있게 배치하였다.(布局)(행과 열을 질서 있게 맞추었다.) 문자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다양한 크기가 뒤섞여 있다)

서체는 두 가지 형태로 하나는 상나라의 영향으로 상형이 많이 남아 있다. 다른 하나는 글자를 비교적 규칙에 맞추어 쓰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자체가 균형이 잡혀가고, 안정되어 간다. (肥筆波책) 대우정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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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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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彰華 | 작성시간 15.05.19 감사합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
  • 작성자霓苑(예원) | 작성시간 15.05.20 귀한 자료 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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