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579-632) 때 귀산(貴山)이라는 소년 화랑(花郞)이 있었다.
귀산은 어려서 같은 부(部) 사람 추항(箒項)과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선비나 군자와 함께 교유하기를 기대하면서,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지 않는다면 아마도 욕을 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어진 사람에게 나아가 도를 배우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여 가르침을 줄 스승을 찾았다.
그때 마침 수(隋:581~618) 나라에 유학을 다녀와서 가실사에 있었던 원광법사(圓光法師)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었다.
귀산과 추항은 법사의 처소로 나아가 옷자락을 여미고
“속세의 선비가 어리석고 몽매하여 아는 것이 없사오니, 한 말씀 해주시어 평생의 계명으로 삼게 해주소서.”
라 하며 공손히 가르침을 청하였다.
법사는 말하기를,
“불가의 계율에 보살계(菩薩戒)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열 가지로 구별되어 있으나 그대들이 인신(人臣)으로는 아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세속오계(世俗五戒)가 있으니,
첫째는 사군이충(事君以忠)이요,
둘째는 사친이효(事親以孝)요,
세째는 교우이신(交友以信)이요,
네째는 임전무퇴(臨戰無退)요,
다섯째는 살생유택(殺生有擇)이니,
그대들은 이를 실행함에 소홀치 말라!”
고 하였다.
법사가 '금유세속오계(今有世俗五戒:지금 세속에 오계가 있다)'라고 하였으니,
직접 계율을 만드신 것은 아닌가 보다. 그러니 임전무퇴도 나오고 살생유택도 나온다.
귀산은 말씀을 다 듣고나서
“다른 것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만, 살생유택(殺生有擇)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다시 질문을 드렸다.
그러자 법사는
“육재일(六齋日)과 봄여름에는 살생치 아니한다는 뜻이니,
이는 죽이는 시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가축은 죽이지 않는 법이니, 이는 말, 소, 닭, 개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며,
하찮은 것을 죽여서는 안 되나니, 고기 한 점도 되지 못하는 것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죽이는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직 소용되는 경우에만 죽이고 그 이상은 죽이지 말 것이니, 이는 세속의 좋은 계율이라고 할 만하다.”
고 하였다.
법사의 말을 듣고 난 귀산은
“지금부터는 이 가르침을 받들어 두루 실행하고, 감히 어기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또 '이는 세속의 좋은 계율이라고 할 만하다(此可謂世俗之善戒也)'고 한 것을 보면 법사가 직접 지은 계율이 아님이 더욱 분명해진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법사가 말한 살생유택의 범위를 보면
육재일(六齋日) 즉, 음력 매월 8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에는 살생하지 말 라고 했으니,
이는 재가(在家) 불자(佛子)가 지켜야 할 팔재계(八齋戒) 중의 맨 처음이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기 때문이다.
봄과 여름에는 살생하지 말라고 했으니, 이는 축생들이 새끼를 낳아 번식할 때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집에서 기르는 말, 소, 닭, 개는 죽이지 말라고 했으나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기 한 점도 되지 못하는 하찮은 것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했으니, 참새나 매뚜기처럼 먹을 것도 없는 것은 죽이지 말라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면, 일단 유택(有擇)의 대상이 우리가 늘상 먹는 고기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법사님의 말씀은,
살생을 하되 매달 30일 중 6일은 빼고
봄여름 여섯 달 빼고,
가축도 빼고, 고기 한 점 안 되는 것도 빼고 죽여도 된다는 말씀이다.
법사님! 전쟁터에 나가 싸우려면 체력이 튼튼해야 하는데,
이것 빼고, 저것 빼고, 다 빼버리면 언제 무슨 고기를 잡아먹고 단백질 보충하라는 말씀인지요?
2015. 8. 15
淨山/金柄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