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봉의「한석봉증류여장서첩 韓石峯贈柳汝章書帖」2
신웅순
추풍사
본 서첩은 1596년 선조 29년 명필가 한호 석봉이 친구들과 함께 베푼 연회석에서 기증한 것으로 왕발의「등왕각서」, 한무제의 「추풍사」, 이백의 「춘야연도이원서」등 세편이 수록되어 있다. 때는 호시절 봄과 가을이며 장소는 누각, 선상, 도이원이다. 본서첩은 짧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방편을 제시해 준 시구들로 인생 무상을 노래하고 있다.
등왕각은 장시성에 있으며 호북성의 황학루, 호남성의 악양루와 더불어 중국 강남 3대 명루의 하나이다.
왕발의「등왕각서」는 671년 당나라 염백 여가 등왕각에서 연회를 열었다. 왕발은 어린 나이로 부친을 따라 갔다가 이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흥이 한창 일 때 여는 손님들에게 글을 청했으나 아무도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 때 왕발이 즉석에서 시를 지어 좌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글이 그 유명한 왕발의「등왕각서」이다.
전반부는 등왕각의 수려하고 웅장한 아름다움과 연회의 성황을, 후반부는 타향의 객으로 품은 뜻을 펼쳐 볼 수 없어 탄식하고 있음을 그리고 있다.
「등왕각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南昌故郡,洪都新府。星分翼軫,地接衡廬。襟三江而帶五湖,控蠻荊而引甌越。物華天寶,龍光射 牛斗之墟
남창은 옛 군이요, 홍도는 새로운 고을이다. 별은 익과 진으로 나누이고 땅은 형산과 여산에 접 해있다.
세강은 옷깃처럼 오호는 띠처럼 둘러져 있다. 이 곳은 형만을 누르고 구월을 끌어 당기는 형국 이다.
이 곳에서 나는 물건은 모두 광화가 어리고 하늘의 보배이며, 용천 검의 빛은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비추인다.
당시 임란 직후의 시대상과 분위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들이 여렷 있어 몇 구절을 인용한다.
興盡悲來 識盈虛之有數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흥허성쇄가 정해진 운수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萍水相逢 盡是他鄕之客
우리 모두 우연히 만났으니 이 모두가 타향의 길손이로다
時運不齊 命途多舛
시운은 고르지 못하고 운명 또한 어긋나는 일이 많아
東隅已逝 桑楡非晩
젊은 시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아직 노년기는 아니라네
閣中帝子今何在 檻外長江空自流
누각 안의 왕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난간 밖 긴 강물은 속절없이 흐르네
시구 중 “落霞與孤鶩薺飛 秋水共長天一色 지는 노을은 외로운 기러기와 함께 날아가고, 가을 강물은 아득한 하늘과 일색이구나" 는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명구로 알려져 있다.
한무제는 유난히 미인과 인연이 많은 임금이다. 한무제의「추풍사」는 인생무상을 노래한 유명한 시로 첫머리에는 “임금님이 하동에 행행하여 후토를 제사지내고 서울을 돌아보며 기뻐하시더라. 중류에서 여러 신하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스스로 추풍사를 지으셨다.”라는 시를 지은 뜻을 적은 글이 있다.
秋風起兮白雲飛 草木黃落兮雁南歸 蘭有秀兮菊有芳 懷佳人兮不能忘 泛樓船兮濟汾河 橫中流兮揚 素波 簫鼓鳴兮發棹歌 歡樂極兮哀情多 少年幾時兮奈老何.
가을바람이 부니 흰 구름은 날리고, 초목이 누렇게 시드니 기러기는 남녘을 날아간다.
난초는 빼어나고 국화는 향기로운데, 아름다운 미인들을 생각하니 잊을 수가 없구나.
다락배를 띄워 분하를 건너려니, 강 한복판에 가로로 걸쳐 흰 물결이 솟아난다.
피리와 북 소리 울리며 뱃노래를 부르니, 환락은 극에 달아 외려 슬픈 정이 많이 남아.
소년의 젊음이 그 얼마인가, 이내 늙어짐을 어이하리오.
「춘야연도리원서」는 당나라 시인 이백이 복사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봄날 밤 정원에서 가족, 친지들과 시회를 베풀면서 지은 글이다. 첫부분이다.
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 而浮生若夢 爲歡幾何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
천지는 만물이 잠시 쉬어 가는 여관이고, 시간은 긴 세월을 거쳐 지나가는 길손이다. 이 덧없는 인생은 꿈같이 허망하니, 즐긴다 해도 얼마나 되겠는가? 옛사람들이 촛불 들고 밤에도 노닌 것 은 참으로 이유가 있었구나.
명대에는 성무엽,오윤재,구영,만수기,우구 등의 화가들이, 청대엔 냉매, 왕원훈, 황신, 왕기,전혜안 등의 많은 화가들이 이백의「춘야연도리원서」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가 화가들에게까지도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언급한 시구는 많은 글에 인용되고 있어 지금까지도 명구 중에 명구로 남아있다.
명나라 오윤재 작, 출처 http://blog.naver.com/mgjang1/220377403189
- 주간 한국문학신문,2015. 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