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서예 에세이 한글 서예를 읽다 - 30
갈물 이철경
탄신 100주년 기념전 편람
석야, 신 웅 순 | 시조시인․평론가․서예가, 중부대 교수
갈물 선생님의 김소월의 「진달래꽃」 작품이 1973년 12월호 『월간서예』 (3호)에 실린 적이 있었다. 당시 문학도였고 서예가를 꿈꾸었던 필자는 시와 글씨가 이렇게도 만날 수 있는가 충격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아성 신명숙 회장님께서 필자에게 갈물 탄신 100주년 기념 도록을 손수 선물해주셨다. 거기에는 비문 · 현판, 서예 교과서 표지를 포함, 궁체 정자와 흘림체 작품 140여 점의 작품이 실려 있다. 「진달래꽃」 은 46세에 쓰신 갈물 초기의 궁체 흘림 작품이다.
고대 가요 황조가, 고려가요 가시리, 서경별곡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별한을 노래한 겨레의 대표시 「진달래꽃」. 일제, 해방, 한국 전쟁을 거쳐오면서 우리 정신을 올곧이 지켜온 갈물 이철경 선생의 흘림체 글씨 「진달래꽃」 .
40년 후 도록에서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의 「진달래꽃」전문
우리나라 정한의 대표시와 우리나라 최고의 궁체와의 만남은 우리 서예인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안겨주었고 하나의 롤 모델을 제시해주었다. 그런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문화는 어떤 역경에 처했어도 면면이 이어져 왔고 지금처럼 아름다운 창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께서는 선각자이셨습니다.일제의 암흑기에 태어나 해방과 한국 전쟁 등 격변의 시절을 몸 으로 부딪히면서도 한글 서예 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부임하시는 학교마다 서예부를 창 설하시고 서예교본을 찬술하시어 한글서예가 지향해야하는 이정표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나아가 갈물한글서회와 한국여성소비자연합(대한주부클럽연합회), 묵향회 등을 창설함으로써 여성의 저극적 인 문화참여가 가능하도록 초석을 놓으셨습니다.이들 단체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 으며. 특히 갈물한글서예는 꽃뜰 이미경 선생님의 보살핌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만방에 한글서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단체로 성장하였습니다.
- 신명숙의 ‘갈물 이철경 탄신 100주년 기념 서집을 헌정하여’ 서문에서
한글 현대서예사의 큰 별임을 말해주고 있다. 큰 어른 앞에서 우매한 필자가 그 공적을 이래저래 언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리라.
님의 작품 세계는 주로 애국심과 고전, 교육, 기독교에 관련된 테마들이 많다. ‘한글서예가, 교육가, 여성운동가’라는 수사가 서첩에서 그대로 증명이 되고 있다. 서예가에게는 글씨도 중요하지만 글씨에 담긴 의미나 의도도 그만 못지 않다. 용기의 내용물은 서예가의 사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글과 글씨는 일체이지 용기 따로 내용 따로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날 방과 후 수원 시장 안의 포목상에서 한복감을 끊어가셨는데 그 다음날 아침 그 옷을 입고 나오셨습니다. 놀래라! 밤에 그 옷을 만들어 입고 나오신 것입니다. 흰 버선에 흰 고무신을 늘 신으 시고 한복을 예쁘게 입으셨습니다. 바느질 솜씨도 대단하셨고 선생님 댁에 가보면 언제나 반짇고리 에 버선 깁다 놓은 것이 높이 쌓여있었습니다. 비로도(벨벳) 치마를 뒤집어서 해 입으신 선생님의 기 발하신 센스에 감탄해서 수원 부인네들이 모두 선생님을 따라 비로도 치마를 뒤집어서 해 입는 유행 을 만들어 내기도 했던 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 샌날 조성자의 ‘갈물 이철경 선생님 탄신 백주년을 맞이하여’에서
195,60년대 삶의 일화 한 도막이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엔 한복감을 끊어 직접 옷을 해 입는 것이 일상이었다. 예로부터 여성은 바느질, 음식, 말솜씨를 으뜸으로 쳤다. 님의 생활은 하나의 사도로서 모범자로서 실천 그 자체였다.
그 제자들이 작금의 현대 한글 서예의 등불이 되었다.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이 땅의 한글 서예를 환하게 밝혀 제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한글 서예 문화를 창조케 했다. 교육만큼 아름다운 창조는 없다. 님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날씨가 무덥다. 화선지를 펴고 붓을 들어 ‘갈물 이철경 선생님’ 한 번 써보면 어떨까. 선생님의 작품에 대해 붓을 함부로 들 수 있겠는가. 서첩을 자세히 읽고 난 후 붓을 드는 것이 말석의 필자에게는 어울리고 아니 그리해야된다고 생각한다.
으레 떠오르는 해이건만 오늘 아침해는 더욱 붉고 눈부시다.
- 출처 : 서예문화 2014.7월호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