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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순 서예이야기

소치의「완당선생해천일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석야 신웅순

작성자신웅순|작성시간16.10.15|조회수945 목록 댓글 5

소치의완당선생해천일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

 

 

 

 

석야 신웅순

 

  

 

 

소치의 완당선생 해천일립상(海天一笠像)

종이에 담채, 51× 24,19세기,아모레 퍼시픽 미술관 소장

 

김정희 나이 일곱 살 때의 일이다. 번암 체재공이 추사의 집을 지나다 대문의 입춘첩(立春帖)’ 글씨를 보고 누구의 글씨이냐고 물었다. 친아버지 김노경은 우리집 아이의 글씨라고 대답했다. 노재상은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아이는 반드시 명필로서 이름을 떨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글씨를 잘 쓰게 되면 반드시 운 명이 기구해 질 것이니 절대로 붓을 쥐게 하지 마시오. 대신에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게 되면 반드 시 크고 귀하게 될 것입니다.”

-대동기문

 

스승 박제가 역시 김정희 글씨를 보고는 이 아이가 크면 내가 직접 가르쳐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당시 북학파의 거두였던 박제가 밑에서 수학하게 했다. 추사의 실학은 바로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추사는 24세 때 생부 호조참판 김노경을 따라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연경에 갔다. 그가 북경으로 출발한 것은 18091028, 체류 기간은 2달 남짓이었다. 그의 연행은 추사 일생에게 있어서는 일대 전환기이었으며 한중 교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추사는 이 사행길에서 평생의 두 스승 중국 제일의 금석학자 옹방강(翁方綱, 1733~1818)과 완원(阮元, 1765~1848)을 만났다. 추사는 옹방강으로부터 경술문장 해동제일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완원으로부터는 완당이라는 아호를 하사받았다. 스승 외에도 이정원, 서송, 조강, 주학년 등 많은 학자들을 만났다.

 

 

청의 대학자 옹방강은 적벽부로 유명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의 상 3폭을 그의 서재인 보소재(寶蘇齋,소동파를 보배처럼 받드는 서재)에 봉안하고 동파의 생일에는 동파서첩 등을 진설하고 제를 지냈다. 3폭의 동파상은 송의 이용안이 그린 동파금산상(東坡金山像), 송의 조자고가 그린 동파연배립극소상(東坡研背笠屐小像), 명대의 당인이 그린 소문충공립극도(蘇文忠公笠屐圖,옹방강의 찬문이 적혀 있다고 함)이다.

추사는 보소재에서 크게 감명을 받고 후에 1864년 오역이 그린 동파립극도(東坡笠屐圖)를 얻어 직접 모사하고 제찬을 했다. 이것이 동파입극도이다.(한국사전연구사 한국미술오천년)

동파입극도는 소동파가 혜주에 유배되었을 때 갓 쓰고 나막신 신은 평복 차림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소동파가 담주 사람 여씨가 자운을 방문하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소식은 늘 그들의 집을 찾아가 함께 술을 마시며 같이 시를 짓거나 학문을 토론하곤 했다.(홍승표 외,중국유학의 남방전파,351)

이것에 착안해 소치는 제주도 바닷가 대정마을에서 귀양살이하는 스승 김정희의 모습을 소동파에 빗대어 그렸다. 이것이 소치의 완당선생해천일립상이다. 인물화의 형식을 띤 완당의 또 다른 초상화이다.

추사 선생은 소동파의 문장과 글씨를 좋아했으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스로 유배에 처한 자신의 처지가 말년의 소동파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소동파는 당대 최고 시인으로 높은 벼슬까지 올랐고 추사 역시 탄탄대로의 벼슬길을 달렸다. 그러나 소동파는 정치적인 이유로 해남도에, 추사는 정치적인 음모에 휘말려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추사의 유배기간 동안 소치는 그 험한 제주의 바닷길을 세차례나 다녀갔다. 이는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다. 소치는 허유의 호로 김정희가 아낀 제자 중의 제자이다. 그는 추사로부터 그림, , 글씨 등 많은 사사를 받았으며 초의 스님의 차를 추사에게 전해주기도 했고 헌종대왕의 명으로 추사의 글씨를 받아 올리기도 했다.

소치는 스승 추사의 동파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동파입극도에 얼굴 모습만을 바꾸어 그렸다. 많은 고민 끝에 그렸을 것이다. 이는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는 참된 제자의 존경의 표시였다. 소치의 완당선생해천일립상은 추사의 유배시절 모습을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손철주의 해천일립상에 대한 감상이다.

 

이 그림은 제자가 유배지의 스승을 그린 작품이다. 뭣보다도 옷거리에 눈이 간다. 귀양 사는 처 지에 관복은 당치도 않지만 명색이 고관 출신인데 삿갓과 나막신은 뜻밖이다. 구김이 간 겉옷도 변변찮다.손시늉은 묘하다. 왼손은 넘실거리는 수염을 붙들고 오른손은 단전에 갖다 댔다. 다만 얼 굴이 편안해 보인다. 눈썹과 눈매가 섬약하나 낯빛은 온화하고 웃음은 인자하다. 여전히 생뚱스러 운 건 삿갓에 나막신 차림이다.그림에 사연이 있을 듯 싶다.

스승의 귀양살이를 제 눈으로 본 제자는 가슴이 아렸다. 소동파의 옛일이 떠올랐다. 동파가 유 배시절 길 가다 폭우를 만났다. 삿갓과 나막신을 빌린 그가 옷자락을 쥐고 진창에서 뒤뚱거리자 사람들이 보고 웃었다. 그걸 아는 제자는 스승을 비 온 날의 동파 옷차림으로 바꿔 그렸다. 요즘 말로 동파코스프레이다. 스승을 동파와 같은 반열에 놓고 싶었던 것이다.

찬찬히 보니 김정희는 초탈한 표정에 가깝다. 동파는 쩔쩔맸다는 말이다. 이로써 비극을 꿋꿋이 건너는 김정희의 이미지 하나가 생겼다.제자 길러 복 받은 스승이다.)(조선일보.2012.4.16.손철주의 옛그림옛 사람 6)

 

오른쪽 제목은 완당 선생이 하늘이 닿은 바다에서 삿갓을 쓴 모습’, 왼쪽 낙관은 허소치가 그리다로 되어 있다.

추사 김정희를 사사했던 소치는 또한 그 그림을 그대로 모사, 권돈인이 제찬한 동파상을 그려 소동파를 찬양하는 여파가 후대 화가들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치기도 했다.

다음은 설흔의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의 일부이다. 재구성한 것이기는 하나 당시 상황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어 소개한다.

 

보소재를 갈 수 없다면 보소재를 재현하고 싶었다.내가 머무는 곳인 귤중옥을 보소재로 만들고 싶었다. 너도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중략귤중옥을 보소새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귀중 한 문물과 전적들이 아니었다. 넓은 공간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 동파 입극도만 있으면 되었 다. 그 절묘한 그림 하나로 굴중옥은 보소재가 되고 귤중옥을 보소재로 바꾸어버린 나는 옹방강과 소동파를 함께 모시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절해고도를 찾아 온 소치에서 이러한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동파 입극도를 그려달라고 맹렬과 진심을 담아 요구했다.소치에겐 별로 어려운 일도 아 니었다.그런데 소치는 내가 그려달라고 했던 동파 입극도를 그리고도 붓을 놓지 않았다.그렇 게 해서 탄생한 것이 해천일립도였다.

소치가 그린 내 얼굴도 아니었다. 너도 알다시피 백 번을 양보한다해도 나는 결코 온화한 사람 이 아니다.중략그런데 소치는 어쩐 까닭인지 나를 세상에 둘도 없이 여유롭고 달관한 사람으 로 그려 놓았다.중략내 스승 옹방강은 소동파를 추앙했다. 나는 소동파와 옹방강을 추앙했다. 그러므로 소치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내가 아니라 소동파와 옹방강을 추앙하는 내 간절하고 그리 운 마음 그들처럼 살고픈 마음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해천일립도는 바로 내가 옹방강과 소동파를 추앙하며 그들처럼 굳세면서도 유유자적하게 한 시대를 살아가기 바란다는 결연한 의지 가 담겨 있는 그림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추사는 자신의 적거지를 귤중옥(橘中屋)’이라고 이름 지었다. “매화, 대나무, 연꽃, 국화는 어디에나 있지만 귤만은 오직 내 고을의 전유물이다. 겉빛은 깨끗하고 속은 희며 문채는 푸르고 누르며 우뚝이 선 지조와 꽃답고 향기로운 덕은 다른 것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므로 나는 그로써 내 집의 액호를 삼는다.(梅竹蓮菊在在皆有之橘惟吾鄕之所獨也精色內白文章靑黃獨立之操馨香之德非可取類而比物吾以顔吾屋)”라고 하였다.

추사의 스승 옹방강의 서재 보소재는 소동파를 향한 그리움의 공간이다. 추사의 적거지 귤중옥은 추사의 소동파와 옹방강에 대한 그리움의 공간이다. 스승과 제자가 만난 보소재와 귤중옥, 이보다 더 존경스러운 공간이 어디 있을까. 완당선생해천일립상, 스승과 제자의 대명사라면 어떨까 싶다. 현대인들에게도 이런 아름다운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월간서예.2016.10월호,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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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霓苑(예원) | 작성시간 16.10.17 선생님의 생각에 동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 작성자신웅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10.17 늘 읽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 작성자三道軒정태수 | 작성시간 16.10.23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솔내 | 작성시간 17.01.04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지 | 작성시간 17.02.11 글, 작품 감상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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