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신웅순 서예이야기

신윤복의「월하정인 月下情人」-석야 신웅순

작성자신웅순|작성시간17.10.21|조회수771 목록 댓글 2

신윤복의「월하정인 月下情人」




석야 신웅순





신윤복의 「월하정인」,국보 제 135호, 28.2 x 35.6cm ,간송미술관 소재


  이「월하정인」은 혜원 신윤복(1758,영조 34년 ~ 미상)의 작품으로『신윤복필풍속도화첩 申潤福筆風俗圖畵帖』에 실린 30점의 풍속화 가운데 하나이다.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함께 18세기 후반 조선시대의 3대 풍속화가이다.
  세로 3행의 로맨틱한 화제가 적혀있다. 연기는 밝혀져 있지 않다.
  화제와 관련이 있는 김명원의 칠언절구 한시가 있다.


      창밖에 가는 비 내리는 삼경           窓外三更細雨時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알겠지  兩人心事兩人知
      환정이 미흡한데 하늘이 밝아오니      歡情未洽天將曉
      다시금 나삼 잡고 뒷날 기약 묻는다.   更把羅衫問後期


  이 시에는 작자 김명원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김명원은 사랑하던 기생이 권세가의 첩이 되자, 담을 넘어 첩을 만나러 갔다가 주인에게 잡혔다. 이 때 형 김경원이 달려와 자신의 아우가 앞으로 나라에 크게 쓰일 인물인데, 계집 하나로 인재를 죽일 수 있느냐고 변명하자 주인이 술을 대접하여 보냈다고 한다. 김명원은 과연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가 되어 공을 세우고 좌의정에까지 올랐다.(강명관,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당시에 이 시를 번역하여 지은, 널리 알려진 시조도 있어 혜원이 이 구절을 따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달빛 어두운 밤 삼경 月沈沈夜三更
      두 사람 마음        兩人心
      둘만이 알리라       事兩人知
 
 「월하정인」은 조선시대 밤 도회의 뒷골목에서 남녀의 밀회 장면을 포착한 그림이다.
  눈썹달이 침침하게 떠있는 야삼경이다. 어느 길 모퉁이 담장 옆에서 젊은 남녀가 은밀히 만나고 있다. 젊은 남자는 갓을 쓴 선비 차림으로 한 손에는 초롱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품 속을 더듬고 있다. 수염도 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젊은 양반이다.
  여인은 쓰개치마를 둘러쓰고 다소곳 고개를 숙이고 있다. 허리춤에 치마를 질끈 동여맺고 치마 아래로는 속곳이 드러나 있다. 차림새로 보아 양반가의 여인으로 보인다.
  시간은 삼경인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조선시대에는 정월 대보름과 사월 초파일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된 시간이다. 이런 야심한 밤에 청춘 남녀가 은밀히 만나 밀회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두 남녀는 어떤 사이이며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제 막 만나고 있는 장면일까, 이제 막 이별하고 있는 장면일까. 누구에게 들킬 것만 같은 그런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여인은 다소곳 고개 숙이고 있어 뭔가 부끄러운 듯한 모습, 젊은 양반은 품 속을 더듬고 있어 뭔가 겸연적해 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누구이고 그들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여기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유야 어떠하든 둘만이 안다했으니 독자들은 그저 추측만할 뿐 많은 이야기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이다. 훗날에도 뒷말들을 무성히 남겨놓고 있으니 명작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애틋한 사랑이야 어느 시대이건 없었겠는가.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시대이다. 새파란 젊은 나이에 청춘 남녀가 몰래 만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시대이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이렇게 밤이 깊어서야 그리운 이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역대 서화가들이 실려있는『근역서화징』에는 1117명의 화가들이 실려있다. 여기에 혜원 신윤복에 대한 기록은 단 두 줄이다.




      신윤복, 호는 혜원이며 화원인 신한평의 아들.


      화원으로 벼슬은 첨사를 지냈으며 풍속화를 잘 그렸다.

  신윤복이 세상을 떠난 약 100년 후 『호암전집』에는 혜원은 비속한 것을 묘사했다고 해서 도화서로부터 쫓겨났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본관은 고령. 자는 입보, 호는 혜원이다. 화원이었던 신한평의 아들이다. 신한평은 도화서의 화원으로 최고의 화원들만이 그릴 수 있는 어진을 3차례나 그렸던 유명한 화가이다.
  일재 신한평의 가족 사진으로 볼 수 있는 풍속화 작품「자모육아」가 있다. 거기에는 부인과 두 아들 그리고 딸이 있다. 자신은 사진 속에 나올 수 없어 좌상단에 호 일재로 대신하고 있다.

신한평의「자모육아」

 「자모육아」그림 뒤편의 이목구비가 번듯한 큰 남자 아이가 신윤복이다. 아우에게 엄마를 뺏겨 서러웠는지 오른손으로 눈을 비비며 칭얼거리고 있다. 엄마 젖을 만지작거리며 젖을 물고 있는 아이가 동생 윤수이다. 왼쪽은 혼자서도 놀 수 있는 나이의 누나이다.
  신윤복의『혜원전신첩』에 등장한 인물은 162명인데 이 중 여자가 72명이다.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등장하는 사람은 184명인데 여자는 20명뿐이다. 혜원은 이유야 어떻튼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여자를 이렇게 많이 그렸다.
  인물한국사는 다음과 같이 신윤복을 애기하고 있다.

      화원 집안의 가풍 속에서 어려서부터 그림을 접하고 그 능력을 발휘한 신윤복. 그러나 그는 틀      에 박힌 도화서 화원의 길을 선택하는 대신에 자신의 성정(性情)에 충실하여 그림을 그렸다. 특히      여성과 일상이라는 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을 보였고, 자신의 그림에 조선 후기 역사의 일부분을 고      스란히 남겨 놓았다. 기존의 틀에서 일탈한 화원 신윤복이 있었기에 조선 후기 풍속사는 더욱 풍      요로워졌다.

  그는 점잖고 고상한 산수화나 정물화 대신 당시 천박하게 여겼던 다양하고도 화려한 색채를 과감하게 도입, 일반 평민들이나 기생들 그리고 사랑하는 정인들을 주로 그렸다. 그런 이유로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말도 있으나 신윤복은 그런 것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그렸다. 그는 조선시대에 극히 드믄 영혼이 맑은 자유로운 화가였다.
  담장 위에는 으스름 눈썹달이 떠 있다. 그런데 여느 초승달과는 다르다. 혜원은 풍경이나 사람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가이다.「야금모행」에서는 그믐달이 등장하고「월야밀회」와「정변야화」에서는 보름달이 등장한다. 신윤복은 적재적소에 그림 내용에 걸맞는 달을 그렸다.「월하정인」에서는 볼록한 면이 위쪽을 향해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달을 그렸다. 이는 월식이 일어날 경우에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태영 천문학자는 이를 근거로 하여 기록을 토대로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부분 월식이 일어났던 1793년(정조 17) 8월 21일로 추론하고 있다.
  동시대의 화가 김홍도는 농촌의 모습, 정겨운 서민들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그렸으나 신윤복은 도시를 그렸고 여성을 그렸다. 특히 여성 중에서도 도시의 여인을 주로 그렸다.
  조선시대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여성. 그 여성의 마음을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것은 신윤복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 월간 서예,2017.10.149-151쪽.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치암 | 작성시간 17.10.21 좋은말씀에감사 드립니다
  • 작성자신웅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0.22 늘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