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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순 서예이야기

이서의 필적- 신웅순의 유묵 이야기-석야 신웅순

작성자신웅순|작성시간14.04.29|조회수281 목록 댓글 1
이서의 필적- 신웅순의 유묵 이야기 유묵,육필,석각 이야기

2013/09/04 14:50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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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묵 이야기 11>

이서의 필적

 

 

 

* 석야, 신 웅 순(시조시인․평론가․서예가, 중부대교수)

 

 

 

 

 

이서이 글씨, 해남 윤씨 종가 소장

 

 

이서(李潊 1662.현종 3-?) 의 본관은 여주이며 자는 징지 호는 옥동이다. 이익(李瀷)의 형이며 관직은 찰방에 그쳤다. 글씨를 잘 썼으며 진체의 필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필법을 계발했다.『성재집(性齋集)』에서는 “동국의 진체는 옥동에서 비롯되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글씨를 잘 썼다.

이서는 공제 윤두서와는 막역한 벗으로 만년까지 정을 나눈 사이이다. 위 글씨는 1715년 윤두서가 유명을 달리한 그 해 부채에 쓴 당나라 시인 대유공의 오언절구 시이다. 초서체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뜻 고요하여 할 일이 전혀 없네

마음 한가로우니 날조차 더디 가네.

백발만 버들가지 마냥 서로 마주 드리웠네

 

此意靜無事 閑心風景遲 柳條將白髮 相對兩垂絲 玉洞生 乙未孟夏

 

 

공재도 이와 같은 시를 초서체로 남겼다. 사상과 학문, 서․화를 함께 모색했던 두 사람 간의 교분을 헤아려볼 수 있다.

 

 

 

 

 

나는 마음 통하는 사람 있으니

지금 바닷가에 있다네

내 마음이 보지 못하는 것

그대 아니면 누가 알리

사십 년간 서로 어울려

단 열흘도 떨어지지 않았네

어떤 이유로 서로 끌렸던가

천 리나 멀리서 서로 그리워하네

세월은 흐르는 물 같고

하늘은 유유히 변하누나

길은 멀고 몸 또한 병들어

얼굴 보기 쉽지 않으니

원컨대 날개라도 나서

한번에 그 곳으로 날아갔으면

- 이서 「공제에게 드림」

 

 

이서가 윤두서에게 보낸 시이다. 윤두서는 1715년에 감기를 앓다 갑자기 사망했다. 이는 이서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겨주었다.(박은순,공재 윤두서, 조선화가들02, 돌베개,2010)

석북가에서도 이서의 간찰이 전해지고 있다. 「관산융마」로 이름 높은 석북 신광수가 윤두서의 사위이다. 이서가 장인의 막역한 벗이었으니 석북가와의 교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석북가에 남아있는 이서의 간찰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옥동 이서가 보낸 간찰- 고령신씨 석북가 유묵

 

옥동의 이서가 보낸 간찰이다.

 

 

광이 와서 기쁘다는 심정, 남행은 4일 혹은 6일 가능하니 기한 내 도착할 것이라는 것, 상원이라 는 사람을 재경이 잡아 보냈는데 매를 심하게 맞았다가 이제 일어나 보냈으니 중첩하여 죄를 다스 릴 필요가 없다는 것, 혼서․부채․창의를 아직 가져오지 않았는데 자신이 갈 때 가져갔다는 내용 등 이 들어 있다.(이병찬 편,석북 신광수가 간찰,충청문화연구소 자료,2011.)

 

 

해남 윤씨의 가전 유묵과 고령 신씨의 가전 유묵은 이서의 명필과 함께, 당시 사대부 집안가의 교분과 일부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한국문학신문, 201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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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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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三道軒정태수 | 작성시간 15.02.22 좋은자료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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