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대정향교 대성전 뜰앞에 있는 곰솔, 주민들은 이 나무가 세한도의 모델이되었다고 한다.
국보 제180호 완당 세한도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로 그려 준것으로 송백 즉 소나무와 잣나무라는 것과 달리 소나무와 곰솔이라고도 한다.
서귀포시 대정향교(제주도 유형문화재 제4호) 1653년 (효종 4)에 지어졌으나, 이 대성전은 1834년(헌종 원년) 추가해서 지은 것이라한다.
추사가 유배생활했던 곳(사적 제487호) 비석 뒤 집이 추사가 위리안치된 곳이다. 추사체 명작 세한도는 이 곳에서 완성되었다.
추사체(秋史體)라는 독특한 필법을 창안한 완당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예가 이다. 특히, 고증학의 영향을 받은 그는 금석학에 일가견을 가진 분이기도하다. 집권 안동김씨 세력에 밀려 9년이라는 긴 세월을 제주도에 유배되었는데 이 기간 그는 좌절하지 아니하고 향교에 나가 주민들에게 학문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추사체를 완성하였으며, 세한도(歲寒圖 국보 180호)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한 체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주위를 텅 빈 여맥으로 처리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새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藕船是賞, 우선 이상적에게 이것을 줌) ‘완당’이라는 관서(款書)를 쓰고 ‘정희’와 ‘완당’이라는 도인을 찍었다. 그림 자체는 단색조의 수묵과 마른 붓질의 필획만으로 이루어졌으며, 소재와 구도도 지극하게 간략하게 다루어졌다. 이와 같이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화면은 직업 화가들의 인위적인 기술과 허식적인 기교주의와는 반대되는 문인화의 특징으로 작가의 농축된 내면세계의 문기(文氣)와 서화일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라고 평가 받는 그림이다. 유배생활 5년 째 되는 해인 1884에 그렸다고 한다. 평소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조차 몰락한 그를 외면하는데 비해 제자이자 역관이었던 이상적(李尙迪)만은 변하지 아니하고 청나라를 다녀오는 길에 귀한 책을 사와 선물하자 답례로 그려준 것이라고 한다.
제목 세한(歲寒)은 논어에 나오는 말로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야(知松柏之後彫也) 즉 ‘소나무와 잣나무는 다른 나무들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을 지내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듯이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변함없는 이상적의 마음을 고맙게 여긴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어느 날 임학자 박상진 교수가 쓴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를 읽다가 갑자기 이 나무가 보고 싶어졌다.
그분은 이 세한도가 실경산수화가 아니고 관념적으로 그린 그림이라면 나무학자가 뭐라고 끼어들 틈이 없지만 만약 실경을 그린 그림이라면 그림에 등장하는 4그루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집 뒤에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1그루는 소나무이지만 그 이외 뻣뻣하게 서 있는 3그루는 곰솔(해송, 또는 흑송이라고도 함)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왜냐하면 아열대지방인 제주도에서는 잣나무가 자생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분석을 해 놓았다. 보고 싶은 욕구를 더욱 부채질한 것은 강판권(계명대학교)교수가 모 월간지에 기고한 글이었다. 그는 논어에 나오는 송백(松柏)이라는 말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한도가 탄생한 대정향교에는 도대체 무슨 나무가 심어져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왜냐하면 제주도는 마음만 먹으면 바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 중에 갑자기 행운이 찾아왔다.
처음 얼마동안은 포도청의 부장인 송계순 집에 머물다가 몇 년 뒤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그 후 1948년 4.3사태로 불타버리고 빈터로 남았다가 1984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입구에는 유허비가 서 있고 담장이 높았으며 안쪽에는 또 탱자나무 울타리를 둘러 이중으로 막은 것을 볼 때 그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남도를 예향으로 자리 잡게 한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1809~1892)은 이 외진 곳을 세 번이나 찾았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제주를 견학해 팔공산 개발에 정보를 많이 얻은 점도 유익했지만 세한도의 무대와 추사의 유배생활 면모를 살펴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제주공항에 내려 내가 처음 느끼는 감회는 푸른 나무들이었다. 남국에서만 볼 수 있는 야자수, 후박나무, 등이 겨울인데도 푸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고 주변을 살펴보니 무, 양배추, 배추 등도 그대로 들에서 자라고 있어 육지 사람인 나를 경이롭게 했다. 이런 상록활엽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에 참여하면서였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대구의 겨울이 너무 삭막하기 때문이었다. 첫날 견학을 마치고 숙소에 여장을 풀고 잠시 쉬는 동안 김태락님과 함께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대정향교(제주도 문화재 자료 제4호)로 향했다. 택시기사가 좀 불친절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대정읍소재지를 벗어나 산방산 부근이었다. 기사는 산방산이 한라산 분화구에서 튀어나온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 산으로 분화구를 메운다면 한 점 깎거나 더 보탤 필요도 없이 꼭 들어맞는다고 했다. 대정향교는 육지의 여느 향교와 달리 문이 열려있었다. 대정전 앞 한 귀퉁이에 큰 팽나무와 함께 나란히 서 있었다. 얼핏 보기에 소나무 같기도 했으나 겨울눈을 보니 흰 솜털 같은 것이 싸여 곰솔임이 분명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세한도의 모델이 이 나무라고 한다. 박 교수의 지적이 맞음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을 기회가 있으랴 하는 마음에서 몇 바퀴 돌아보고 문을 나와 대기 시켜놓은 차를 타고 대정읍 안성리 유배지(사적 487호)로 향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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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茂林 작성시간 09.02.13 지향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 아직 제주도 대정의 추사적거지의 기념관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다녀올 그날을 기다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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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촌노 작성시간 09.02.13 좋은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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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진밭 작성시간 09.03.10 사진과 글을 읽고 여러가지 의미로 감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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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勝溪 작성시간 09.04.21 좋은 정보 공부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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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彰華 작성시간 09.05.10 공부잘 했습니다 그림이 된 나무를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게 되다니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