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역 교 회
프랭클린 퍼거슨
교회와 관련한 두 구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 이는 그분께서 말씀에 의한 물의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케 하시고 깨끗케 하시며, 점이나 구김이나 그런 것들이 전혀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 앞에 내세우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5-27),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도록 교회에게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 1:22,23).
이 두 구절에 나오는 교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곧 오순절에서부터 주님이 오시기까지 사람의 신조(creed)나 교파에 관계없이 모든 지체를 다 포괄하는 완성된 교회를 가리킵니다. 이 교회의 거의 전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습니다.
우주적인 교회는 지배권이 없다
이 우주적인 교회는 새로 태어남으로 들어갑니다(요 3:5-7). 모든 믿는 이들은 회심할 때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로 이 우주적인 교회에 더해집니다(고전 12:13). 이 우주적인 교회는 사람이 다가가서 가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교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같이 교회법을 제정하고 다스리고 지배하는 권력을 갖는 선출된 체제를 가진 종교 조직이 아닙니다. 우주적인 교회의 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우주적인 교회는 전체가 함께 모일 수 없으며, 문제가 있을 때 호소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이러한 사실들을 알았더라면, 교회의 실행과 증거에서 계속되어온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세 가지 표현
이 우주적인 교회는 신약 성경 안에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들”(고전 11:16)
“그리스도의 교회들”(롬 16:16)
“성도들의 교회들”(고전 14:33)
각각은 복수의 많은 교회들로 표현되지만 교파들과는 다릅니다. 왜 이렇게 불렸을까요? 우주적인 교회에 관한 이러한 표현에서 우리는 이들 교회에 관한 삼중적인 관점을 볼 수 있습니다.
(1) 기원 :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다.
(2) 소유자 :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그분의 것이다.
(3) 구성 : 오직 성도들로 구성된다.
교회는 어떻게 증거하는가
교회가 넓은 관점에서 이 땅에서 지배하는 권한이 없으며, 조직체가 아니라면, 어떻게 사람들 가운데 증거할 수 있습니까? 그 답은 “성도들의 교회”로 불리는 지역교회를 통해서입니다.
교회가 지역교회를 통하여 증거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회심자들을 세상에서 불러낸 무리들로 구성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그들에게 “믿음(모든 교리)”을 전달해 줍니다. 머리되신 주님에 의해 이같이 고안된 각 지역교회는 우주 교회를 정확히 나타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서에서 세상 가운데 증인으로서 그러한 지역교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사도 요한은 서신서에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계시록 2,3장).
이제 우리에게는 유형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한 교회는 한 곳에서 함께 모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는 한 장소에서 함께 모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찾아올 수 있고 문제가 있을 때 호소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사람들을 받아 드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며(롬 16장), 필요한 경우, 출교를 시킬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았습니다. 이 교회는 징계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묶을(bind)” 수도 있고 “풀(loose)” 수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 교회는 주님을 위해 “그분의 몸인 교회”의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각 지역교회는 독립적이다.
각 지역교회는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각 지역교회는 그들이 “붙들어야” 하는 하늘에 계신 머리되신 분께 직접 책임을 갖습니다(골 2:19). 그리스도 외에는 어떠한 권위도 없습니다.
한 국가나 지방이나 지역에 있는 각 지역교회들의 감독들이 연합하여 만든 “교회 연합체” 같은 것은 없습니다. 장로들, 인도자들, 감독들(모두 같은 의미입니다)은 오직 지역교회를 위해서 성령님에 의해 임명되며, 자신들의 교회 밖에서는 공식적으로 권능을 행사하거나 다스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 신자들의 자유에 관한 문제를 결정한 예루살렘 공의회(행 15장)와 같은 공의회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모든 문제에 관한 안내자로서 그들이 가지지 못했던 완성된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문제를 호소할 곳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님과 함께 우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의 하나됨
사도시대에 지위 체제의 지배아래 지역교회의 연합은 없었지만, 이와는 완전히 다른 “성령의 하나됨”이 있었습니다(엡 4:3). 참된 “성도들의 교회”가 세워진 곳에는 일반적으로 일곱 가지 진리들, 곧 한 몸, 한 성령, 한 소망, 한 주, 한 믿음, 한 침례, 한 하나님 아버지가 지켜졌으며, 그 결과 놀라운 성도의 교제를 낳았습니다. 이 하나됨은 믿는 이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행 20:32)을 붙드는 한 계속해서 지켜질 것입니다. 우리는 연합체를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됨이 있습니다. 우리는 “화평의 띠”로 이 하나됨을 지켜야 합니다. 성령의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인내하며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야” 합니다(엡 4:1-3).
오늘날 문제들이 뒤얽혀짐.
오늘날 문제들이 뒤얽혀져 있어서 단순한 영혼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종교적 종파의 바벨탑이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요?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됨의 증거 안에서 만나는 도시나 마을을 찾는 것은 여전히 헛된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바는 단순히 주님의 이름으로 초대 신약 교회와 유사하게 모이는 믿는 이들의 무리가 있는가 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파당적인 이름을 인정하지 않고 겸손하게 진리 안에서 걷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 교회
그렇다면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질서를 따르는 교회를 알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다음의 항목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1) 오직 믿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2:47, 5:13)
(2) 그들은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모입니다(시 50:5)(마 18:20).
(3)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신조이며 모든 문제 해결의 기준입니다
(사 8:20)(요 17:14).
(4) 그들은 “한 몸”이 있으며, 다양한 종파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고 있음을 인정합니다(고전 12:12, 1:13).
(5)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주되심(주재권)만을 인정합니다
(행 2:36)(골 2:6).
(6) 그들은 경배와 사역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 12:7-11)
(7) 그들은 모든 믿는 이들이 성직자임을 인정하며,
‘성직자와 평신도’와 같은 개념을 거부합니다(벧전 2:5-9).
(8) 그들은 (사람이 임명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사들과 장로들을 인정합니다(엡 4:11)(빌 1:1).
(9) 그들은 “주님의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으로”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히 13:13)(딤후 2:19).
(10)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모든 사람들과 동료 지체들임을 기꺼이 인정하며, “성령의 하나됨”을 힘써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제에 합당한 자로 여겨진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고전 12:21-27)(롬 15:5)(엡 4:3)(고전 5:6-7).
위의 항목들은 신약교회의 특성을 전부 기술하지 않고 주요한 것만 기술한 것입니다. 연약함과 비난 가운데에서도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공유하고”, “큰 권능으로” 증거하니 “큰 은혜”가 그들 위에 임했던 사도 시대의 영광에 훨씬 못 미치는 지금, 이제 이러한 증거들은 오직 “남은 자”의 표(標)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의 의무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붙들고, 모든 허식을 피하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분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우리가 가진 것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억함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며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하나님의 성령의 자유를 인정하는 구속받은 무리들은 주 첫날에 주님께서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하신 명령에 따라 “주님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이기” 위해서 모입니다(고전 11:23-26). 거기에는 강단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도 없고, 사회를 보는 장로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성직자”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5)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잔이 놓인 상을 중심으로 둘러앉습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는 사람의 감각에 호소하는 것이 일체 없습니다. 그들은 휘장 안에서 영으로 경배를 드립니다. 한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이 경배 찬송이나 찬양을 제안합니다. 이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며, 단지 제안한 사람의 마음에 새롭게 주어진 것입니다. 몇몇 사람이 기도에 참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숭배와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의 구절을 읽으며 경배자들의 마음을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께로 인도합니다. 이 모든 것을 성령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빵을 부수어 나누고, 잔을 나눕니다. 경배자들은 위대한 구속자 앞에서 마음으로 엎드려 절을 합니다. 그리고 참석한 이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말씀이 증거되며 기도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주님의 임재 안에서 드리는 이러한 경배의 시간을 체험할 때, 진정으로 주님께 드려진 마음은 결코 사람의 고안품과 혼합된 것을 좋아한다거나 진정한 경배의 영이 결여된 태도를 취할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지옥으로 가던 때를.
이제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없으면
결코 하늘에서 안식처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큰 기쁨으로 보입니다.
내 죄를 없애신 그 죽음을.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죽음을
나의 유일한 소망이자 근거인 그 죽음을.
나는 빛나는 얼굴들을 들여다보고,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잃어버린 죄인들을 봅니다.
나의 마음은 기뻐 뛰며
모임 가운데 계신 분을 맞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빵을 보며
나를 위해 부서지신 그 몸을 봅니다.
나는 잔을 보며
나의 죄를 위해 흘리신 그 피를 봅니다.
- Franklin Ferguson 著 『The Church of God』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