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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하나님 보시기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작성자김진수|작성시간26.06.05|조회수126 목록 댓글 0

하나님 보시기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2026년 6월 7일 주일설교

 

시편 139:23-24

 

 

하나님 보시기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략으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어린이들도 많았습니다. 죽은 아이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는 부모의 모습에 제 마음까지 아파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시고 계실까요? 하나님도 아파하셨을까요? 혹시 하나님은 그들의 전쟁에 동의하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이런 일각의 의심이 생기는 이유는 사실 하나님에게는 그런 전력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무자비하셨습니다. 아이들이라고 봐주지 않으셨습니다.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사무엘상 15:3)”

 

그래 혹 지금도 그 아이들까지 죽어 마땅한 존재로 보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여전히 우리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은 아니겠지요? 하나님이 그들 두 나라의 편이신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최근 놀라운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국회에서 열린 한 기도회 장면이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회개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들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한 행동에 대해서 말입니다. 당연히 한국의 지도자도 그러고 있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 총리를 비판한 것에 대해서요.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여전히 건드릴 수 없는 하나님 편이었습니다.

 

잘못 배운 것입니다. 잘못 믿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편이 아닙니다. 이젠 하나님이 함께 하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유대인 네타냐후는 그것을 잘 이용하는 정치인일뿐입니다.

 

트럼프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보입니다. 트럼프가 더 그렇게 된 것에는 그 주위의 목사들의 책임이 큽니다. 여기 그 트럼프의 목사들이 있습니다.

 

폴라 화이트(Paula White Cain)는 트럼프의 가장 측근 목사일 것입니다. 그녀는 2017년 트럼프의 첫 취임식에서 개회 기도를 맡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이른바 번영신학(Prosperity Gospel)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로버트 제프리스(Robert Jeffress)는 텍사스 달라스에 있는 초대형 교회인 제일침례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그는 트럼프의 거친 언행이나 도덕적 논란이 일 때마다 성경 속 인물에 빗대어 하나님은 완벽한 성인을 지도자로 쓰시는 게 아니라, 거친 세상을 이겨낼 강한 전사를 쓰신다며 방어해 주었습니다.

 

프랭클린 그레이엄(Franklin Graham)은 대단한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 목사입니다. 그는 트럼프의 대법관 임명, 낙태 반대, 이스라엘 정책 등을 전폭 지지하며 미국 전역의 복음주의 표심을 움직이는 거대한 배경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뿐이겠습니까? 어쩌면 우리 교회 목사님도요. 우리 목사님도 매주 그런 설교를 하시고 있는지도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일 것입니다.

 

그래 우리는 늘 스스로 이렇게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하나님 보시기에 어거스틴은 어떤 사람일까요?

 

아마도 사도 바울이 기독교 창시자일 것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가 없었다면 지금 기독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바로 어거스틴(Augustinus)입니다.

 

주후 313년, 기독교는 공인되었고 392년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로마 제국이라는 현실 권력과 결탁하여 제도화 되었고, 교회가 로마의 법률, 행정 조직, 권위주의를 그대로 닮아가도록 신학적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바로 그 일을 한 장본인이 어거스틴이었습니다.

 

그는 국가의 평화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혹은 악을 징벌하기 위한 전쟁은 정당하다는 전쟁론을 체계화했습니다. 제국의 안보를 걱정해야 하는 로마 지도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고마운 신학적 면죄부도 없었을 것입니다.

 

도나투스파(Donatists)라는 엄격한 기독교 분파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과거 로마의 박해 시절에 배교했던 신부들이 집전한 성례는 무효라고 주장하며 어거스틴이 속한 정통 교회와 대립했습니다. 그는 로마 제국의 군대를 동원해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재산을 압수하는 것을 지지했습니다. 그때 인용한 성경 말씀이 이것이었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4:23-24)”

 

그에게서 트럼프의 느낌이 나는 것은 왜 그럴까요?

 

도대체 하나님 보시기에 어거스틴은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의 기도문

 

다행히 어거스틴의 ‘신국론(De Civitate Dei)’을 보면, 그는 로마 제국 자체를 신성시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지상의 제국, 로마는 결국 인간의 탐욕으로 세워진 것이라 언젠가 망할 수밖에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사이비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교도였던 공무원 아버지와 극진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방황하는 아들을 위해 평생 눈물로 기도한 어머니의 귀감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엄청난 천재성에 비해 영혼의 갈증과 정욕을 이기지 못해 격렬하게 방황했던 고뇌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영적 진리를 찾겠다며 선과 악의 이분법을 주장하던 신흥 종교 마니교에 9년 동안이나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최고 통치자들과 귀족들의 연설문을 쓰고 말하기를 가르치던 황실 수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최고의 스피치 전문가이자 천재 문학가였습니다.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번민하며 울고 있을 때, 이웃집 아이가 노래하듯 외치는 "들어서 읽어라! 들어서 읽어라!"라는 정체 모를 목소리를 듣습니다. 성경을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온 구절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3-14)”

 

꼭 사도 바울 같습니다. 그는 결국 회심했고, 고향으로 돌아가 히포(Hippo)의 주교가 되어 평생을 보냈습니다.

 

여기 그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 주님, 당신은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 받으실 만합니다.

당신의 능력은 심히 크시고 당신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피조물의 한 부분인 인간이 당신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과 자기 스스로 지은 죄의 증거와 당신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는 그 증거를 몸에 지닌 채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피조물의 한 부분인 이 인간은 당신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당신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당신을 찬양하고 즐기게 하십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

 

, 주여, 나에게 지혜를 주시어 당신을 불러 아뢰는 것이 먼저인지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찬양함이 먼저인지,

혹은 당신을 아는 것이 먼저인지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불러 아뢰는 것이 먼저인지를

깨달아 알게 하소서

이 기도문은 단순한 읊조림이 아니라 엄청나게 정교하게 짜인 언어의 예술품이었습니다. 영어 번역도 보시지요.

 

Great art Thou, O Lord, and greatly to be praised; great is Thy power, and Thy wisdom infinite. And thee would man praise; man, but a particle of Thy creation; man, that bears about him his mortality, the witness of his sin, the witness that Thou resistest the proud: yet would man praise Thee; he, but a particle of Thy creation. Thou awakest us to delight in Thy praise; for Thou madest us for Thyself, and our heart is restless, until it repose in Thee.

 

Grant me, Lord, to know and understand which is first, to call upon Thee or to praise Thee? and, whether to know Thee be first, or to call upon Thee?

 

이 기도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바울의 실력이 성경 곳곳에 그대로 드러나 있듯이 말입니다.

 

다윗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편 139:23-24)”

 

어거스틴의 기도도 이 기도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때로는 옳았고 때로는 틀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살폈습니다.

 

이것이 그의 본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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