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3장 7-9절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세례를 통해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려는 것입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 나온 사람이라면,
저 같으면 ‘잘 오셨습니다.’라고 영접할 것 같은데,
세례요한은 부드러운 말로 회개의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며 독설을 뱉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세례받으러 나온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하는 것은 세례받으러 나온 사람 중에는 세례만 받으면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세례요한은 세례만 받는다고 해서 진정으로 회개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목욕했다고 해서 그 속마음까지 깨끗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뱀이 수십 번 허물을 벗는다고 해도 뱀은 그냥 뱀입니다.
겉모습이나 형식을 바꾼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속이 바뀌어야 하고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겉모습이 유태인이라고, 할례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훈련소에 가서 진중 세례를 베푼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회개하고 제대로 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어떤 병사는 초코파이와 선물을 받으려고 세례 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법당에 가서 ‘수계’를 받기도 합니다.
만일 세례가 형식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야말로 ‘뱀 허물 벗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비켜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8절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라고 선포합니다.
회개했으면 그에 걸맞은 삶의 변화가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7장 16절에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삶과 행동을 보면, 회개가 진실한 회개였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 의식을 8절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은 형식적으로만 지키고, 율법이 요구하는 믿음과 의로움과 사랑은 저버리고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세례요한은 잘못된 신앙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서 “땅에 떨어져 있는 돌들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헛된 자만심을 버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를 향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교회 다닌다고, 말로만 예수 믿는다고 해서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세례요한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누가복음 13장 6-7절을 보면, ‘포도원에 심어둔 무화과나무가 3년이 되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자 주인이 찍어버리라’라고 명령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므로, 예수의 향기를 내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