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3장 10-14절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 있던 요한에게 임하자, 요한은 요단강 주변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세례요한에게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묻자,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해줍니다.
먼저 세례 요한은 옷과 음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주라고 말합니다.
당시 로마의 수탈과 권력자들의 착취로 인해 대부분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당시 백성들 중에는 하루에 두 끼를 먹으면 괜찮게 사는 부류로 취급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빈부의 격차가 극에 달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모습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민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레위기 25장 35-38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함께 찾아보기)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36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37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38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을 돌아보고 사는 사회’가 바로 하나님이 꿈꾸시던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웃 사랑이 사라져 버린 사회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의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무엇이겠습니까?
이기심과 탐욕을 회개하고, 가진 것을 나누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말씀을 부자들에게만 주시는 말씀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웃 사랑은 부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도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입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지고, 부유층과 서민층의 사회 갈등이 발생하면서 사회가 통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번 수능 수시 의대 경쟁률이 약 26대 1입니다.
성균관대 의대는 113.4대 1입니다.
소득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단면적인 것입니다.
경제적 ‘양극화’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요한일서 3장 17-18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우리가 사회를 당장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모든 가난한 자를 다 구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 주변에 있는 이웃은 도울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는 바로 그 시간, 그 자리가 하나님 나라의 성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리들이 세례를 받으러 나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대답은 아주 단순합니다.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당한 이익을 챙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직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입니다.
군인들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세례 요한은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말합니다.
자족하며 사는 것이 바로 회개의 합당한 열매라고 말합니다.
회개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의로운 삶에 대해서 누구든지 이야기할 수는 있습니다.
정의롭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저주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바라기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로, 저와 여러분들이 서 있는 곳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