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3장 21-22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칠 때, 수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기 위해 나아왔습니다.
종교 지도자도 있었고, 세리와 군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예수님도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세례받는 자리에 나오셨을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하늘은 높아진 자리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는 자리에서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세례는 죄 씻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 같은 줄에 서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처럼 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세례에서 시작되어,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세례는 단지 물에 잠기는 의식이 아니라, 앞으로 예수님이 걸어가실 수치와 고난의 길을 미리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낮아짐과 겸손을 통해 시작되고 확장됩니다.
바라기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낮아짐과 겸손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1절을 보면 누가복음만의 중요한 특징이 나옵니다.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늘이 언제 열렸습니까?
예수님께서 무슨 기도를 드리셨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사도행전 7장 5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스데반은 순교하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비록 돌에 맞아 죽을지라도, 주님께서 자신을 받아 주신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는 경험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해 두려울 때, 평안으로 하늘을 열어 주시기도 하고, 말씀을 묵상할 때, 하늘이 열리는 듯한 확신을 주시기도 하시고, 또 꿈을 통해서, 주위 사람을 통해서 열어 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늘을 열어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새벽에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며 기도하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1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예수님의 사역은 인간적 열심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의 임재가 있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말씀 없이, 성령의 임재 없이 깊은 신앙생활은 불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 말씀은 시편 2편 7절과 이사야 42장 1절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시편 2편 7절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와
이사야 42장 1절의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앞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종으로서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이 길은, 오늘 우리에게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높아지려 자리보다 낮아지는 자리에서,
인정받으려는 자리보다 기도의 자리에서,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하늘을 여십니다.
바라기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맡겨진 사명을 종으로 감당하셨듯,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맡겨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