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3장 23-38절
‘누가’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의 나이가 30세쯤 되었다고 밝힙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은 이미 2장에서 본 것처럼,
예수님께서 12세 때,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서 종교 지도자들과 토론할 정도였다면, 좀 더 일찍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왜 30세가 되어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까요?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30세를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숙하여 공동체의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41장 46절을 보면,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는 나이가 30세입니다.
민수기 4장 3절과 23절과 30절을 보면, 30세가 되면 정식 제사장이 되어 50세가 될 때까지 성막 봉사를 감당했습니다.
사무엘하 5장 4절을 보면,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다가 나이가 30세이 되어 헤브론에서 왕이 된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의 자격도 30세가 되어야만 주어졌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을 보면,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율법으로도 흠이 없어야 하기에 30세까지 기다리셨다가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읽으려면 발음도 잘 안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참 인간으로 오셨으며, 유대인을 넘어 모든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은 인간(人間)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족보가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신화나, 전설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하냐면 십자가의 사건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속임수가 아니라 진짜 고통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 사함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동시에 사람들의 연약함을 몸소 겪으셨기에 언제든지 주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16절을 보면, “우리에게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두 번째는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이 만인(萬人)의 구세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오는 족보라면,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에게서 시작하여 아담, 그리고 하나님께로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입니다.
이는 예수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려는 누가의 의도입니다.
32절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마태복음 1장 5-6절과 비교해 보면, 족보 속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오벳과 보아스는 유대인의 족보에 들어올 수 없는
이방 여인 라합과 룻이 낳은 아들입니다.
왜 이방 여인이 낳은 오벳과 보아스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한 것일까요?
예수님의 족보가 증거하듯,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만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유대인만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족보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이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이 아닌 것을 당당히 기록하는 것은, 예수님은 누가복음 2장 32절의 말씀같이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오신 분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이 만인의 구세주로 오셨음을 증거합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어느 민족이라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여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 안에서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의 말씀같이,
“우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혈통이나 조건이 아니라 은혜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이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우리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