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4장 1-4절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돌아와, 성령에 인도하심을 받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은 성령께서 인도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마귀가 시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도 열심히 하면 시험이 없겠지.”
“말씀대로 살면 어려움은 피해 가겠지.”
그러나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마귀의 시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없는 곳이지만, 마귀는 그곳까지 따라옵니다.
사단은 에덴동산에도 찾아왔고, 광야에도 찾아왔습니다.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 결단의 자리에도 시험은 찾아옵니다.
이 세상에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시험이 찾아온다고 해서 믿음이 없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방심하는 순간, 시험은 틈을 탑니다.
그래서 깨어 기도하며,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으로 먹을 것이 간절히 필요했을 때,
마귀는 3절에서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배가 너무 주리면 이성이 흐려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군에 성벽에 둘러싸여 시간이 지나자 먹을 것이 없고, 너무 배가 고프니까 자기가 낳은 아기를 잡아먹은 기록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하셨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습니까?
바로 이때 마귀가 찾아와 하는 말이 “너 배고프지? 이 돌을 빵으로 만들어 먹어.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잖아. 에이 이거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지.” 하고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아마 저 같으면 돌을 떡이 아니라 전복죽으로 만들어 먹었을는지도 모릅니다. “일단 먹고 보자”라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을 겁니다.
마귀는 바로 이 지점을 노립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당장 필요한 것을 먼저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첫 시험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신 분이십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의 능력을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 쓰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본능을 따라 살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며, 4절과 같이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신 의미를 풀어주는 내용입니다.
‘만나’가 없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모두 굶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나면서 굶어 죽지 않은 것은 ‘만나’를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순서를 보십니다.
떡이 먼저인지, 말씀이 먼저인지.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가 먼저인지, 하나님의 뜻이 먼저인지.
예수님은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그리고 우리가 늘 넘어지는 결핍과 조급함의 자리에서
말씀을 붙들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시험의 순간은 옵니다.
편법이 더 쉬워 보일 때,
말씀과 타협하고 싶을 때,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고 싶을 때.
그때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결핍의 자리에서 기적을 요구하기보다,
독생자를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신뢰하며
오늘도 말씀 앞에 먼저 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