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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강해

누가복음 4장 16-30절

작성자고동훈|작성시간26.06.16|조회수14 목록 댓글 0

본문: 누가복음 416-30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은혜에 더 가까워질까요,

아니면 익숙함에 갇히게 될까요?”

사람은 매일 마시는 공기, 늘 함께 있는 가족, 오래 다닌 교회, 자주 듣는 말씀이 익숙해질수록 소중함보다 익숙함에 갇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예수님을 거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광야 시험을 마치신 후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회당 예배의 순서를 담당하여 예수님은 이사야의 글을 전달받았습니다.

성경 읽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본문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정해진 본문을 읽었습니다.

 

 

17을 보면, 예수님은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셨다.”라고 기록한 것은 마치 예수님이 이사야 611-2을 찾아 읽으신 것이 아니라, 찾다(:휴렌)”라는 말은 우연히 발견했다는 뜻이 아니라,

마침내 그 지점에 이르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께서 이사야 6112절을 읽으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읽으신 이사야 611-2 말씀은 단순한 위로의 말씀이 아니라 메시아에 대한 구절이기도 하고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의 은혜의 해희년(禧年)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25희년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희년에는 제사장들이 전국을 다니며 뿔나팔을 불고 희년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희년이 선포되면, 모든 노예와 포로를 해방 시켜주어야 합니다.

빚진 것은 다 탕감해 주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욕심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희년 인류의 원상복구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진 것을, 예수님께서 인간의 죗값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희년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사야 말씀을 전하면서, 충격적인 말씀을 합니다.

21에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가 예언의 말씀이 미래가 아니라 오늘’,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다.’라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바로 나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며 감탄하다가 내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다라는 말을 듣자, 회당에 있던 사람들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합니다.

 

22을 보면,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의 가족도, 성장 배경도, 직업도 알고 있는데,

네가 무슨 메시아냐?’ 이런 반응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어도,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며, 요셉의 아들이란 익숙함으로 인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자리가, 은혜를 가장 쉽게 놓치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신 듯, 23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이 말은 기적을 보여야 믿겠다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믿기 위해 기적을 요구했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은혜는 요구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65에 보면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를 예로 드십니다.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믿음 있는 이방인이었던 사렙다의 한 과부나아만에게 역사하셨습니다.

불신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회당은 순식간에 분노로 가득 찹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끌어내어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리려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분노합니까?

그들이 붙잡고 있던 선민의식”, “우리가 중심이다라는 생각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말합니다.

너희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다.”

그 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은혜의 주인을 제거하려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렇게 끝납니다.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머무시지 않고 지나가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정말 메시아로 믿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아는 수준의 예수로 제한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내 기대와 다를 때, 나는 순종하는가 분노하는가?

익숙한 신앙의 자리에서 오히려 은혜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바라기는,

나사렛 사람들처럼 익숙함으로 주님을 밀어내는 삶이 아니라,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주님이 우리의 삶에 머무시는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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