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브리서 11장 32-38절
제목: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
세상은 사람을 평가할 때 주로
어느 대학을 나오고,
어떤 직장에 다니며 연봉은 얼마나 받는지,
무슨 차를 타고 다니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움을 겪으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성공의 기준은 뭘까요?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잘 활용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꿈에 직장에 들어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게 성공의 기준일까요?
아니면 욥과 같이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거부가 되는 게
성공의 기준일까요?
하나님께서 보시는 성공의 기준은 믿음으로 살았는가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두 부류의 믿음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부와 형통한 삶을 누린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다른 부류는 ‘고난과 핍박 속에서 순교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 부류 모두를 믿음의 승리자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부와 형통한 삶을 누린 믿음의 사람들’도
‘고난과 핍박 속에서 순교한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믿음으로 살았느냐 믿음으로 살지 않았느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누구의 평가를 의식하며 살고 있는지?’
마음속으로 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32절을 보면,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는 위기의 나라들을 구해냈습니다.”
군사력이 아니라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믿음이 실제 삶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기도에 응답이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은혜도 있습니다.
질병이 치유되는 은혜도 있습니다.
막혔던 길이 열리는 은혜도 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수없이 경험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체험이 아니라 체험의 비결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통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보다 잘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성공하면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형통할 때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형통은 믿음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형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35절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누구는 사자굴에서 살아났지만,
누구는 죽임을 당합니다.
누구는 불 가운데서 건짐을 받았지만,
누구는 톱으로 켜임을 당합니다.
누구는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누구는 광야와 동굴을 떠돌아다닙니다.
이 차이는 믿음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닙니다.
똑같은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믿는 믿음 때문에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고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도
신앙을 부인하고 구차히 풀려나가는 것을 원하질 않았습니다.
사실 조금만 타협하면 죽음을 면하고 살 수 있었습니다.
“시저는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외친 후
다시 돌아와서 예수를 믿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거부한 겁니다.
“예수가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외치다가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재산을 빼앗기고,
사자 밥이 되고,
검투사의 칼에 죽임을 당하게 된 겁니다.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했으며, 죽임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믿음을 지키며 죽음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기둥에 묶어서 가슴을 북처럼 쳐서 죽이는 처형 방법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세상은 묻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저런 일을 당합니까?”
세상의 물음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저런 일을 당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악한 왕인 므낫세에 의해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다 사자굴에 들어갔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를 전하다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에서, 창에 찔려,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을 버리고 타협하면 살 수 있었습니다.
“예수가 아니라 황제가 주인이다.”
이 말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35절에 더 좋은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말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죽음 이후에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일 뿐 아니라
고난을 견디게 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환경이 좋아서, 형통해서 감사하는 것은 쉽습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 찬양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무너져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산 사람을 38절에서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로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돌에 맞고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순교를 당했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보며,
“불쌍하다,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의 뜻은 ‘세상이 그들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뜻입니다.
예레미야는 평생 눈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회개한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대한 선지자로 평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수없이 맞고, 굶고, 감옥에 갇히고
마지막엔 순교를 당했습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위대한 사도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배신당하셨습니다.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했던 분이십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살면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면 조롱받을 수 있습니다.
예배를 우선하면 뒤처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의 평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움직이며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은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향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박수를 받기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이 강해서 끝까지 견딘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붙드셨던 하나님이,
다니엘을 붙드셨던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붙드셨던 하나님이,
신실하게 붙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붙들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형통할 때도,
고난당할 때도,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실패자라고 말해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그것이 성공입니다.
바라기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움직이며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을 받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