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브리서 11장 39-12장 2절
제목: 믿음의 주 예수를 바라보자
인생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출발은 쉽지만, 같은 속도로 끝까지 달리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뜨거웠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했고, 예배도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삶의 무게가 짓누릅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건강의 문제가
가정의 문제가
관계의 문제가 신앙의 걸음을 힘들게 만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을 마무리하면서
신앙의 경주가 힘든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격려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라.”
“끝까지 달려가라.”
“믿음의 주 예수를 바라보라.”
39절에 “이 사람들은”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 때문에 그들은 형통한 삶을 살기도 했고,
믿음 때문에 그들은 고난을 받으며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히 믿음을 지키며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증거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또 다른 믿음의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39절을 보면,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그들이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약속을 받지 못했다는 것일까요?
갈라디아서 3장 16절을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그들이 사모하던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낙심과 좌절과 의심을 딛고 일어나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모세도 보지 못했습니다.
다윗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보다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우리 마음에 모시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도 더 큽니다.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은 희미한 빛만 보고 믿음으로 살았다면,
그 믿음의 바통을 우리가 받아 믿음의 경주를 더 잘 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12장 1절에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육상 선수가 겨울 패딩을 입고 배낭을 메고 뛰는 것을 보셨습니까?
달리기 선수가 무거운 짐을 들고 경기장에 나오지 않습니다.
육상 선수들의 옷을 보면,
민망할 정도로 거의 벗다시피 옷을 입고 나옵니다.
공기의 저항을 최대한 줄여서
최대한 기록을 내고 이기기 위해 그렇게 입고 나오는 겁니다.
만약 짐을 지고 허덕이며 경주하는 선수를 본다면,
여러분들은 뭐라고 소리치겠습니까?
짐을 내려놓고 뛰라고 소리치지 않겠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도 우리에게 그렇게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려면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신원하 교수가 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곱 가지 죄”을 보면,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이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달리지 못하게 얽어매는 치명적인 죄라고 말합니다.
교만은 내가 삶의 주인이 되려는 태도입니다.
질투는 자신이 가진 것 보다 타인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분노는 복수심으로 자신과 타인을 해치려는 감정입니다.
나태는 삶의 책임을 타협하고 회피하는 태도입니다.
탐욕은 물질과 권력에 대한 욕망입니다. 만족함이 없습니다.
탐식은 쾌락에 대한 집착입니다.
정욕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면서
영혼을 병들게 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방해하는 근본적인 뿌리를 주님께 맡기면 되는데, 맡기지 못하고 계속 자기가 들고 가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것들을 붙들고 있으면서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를 가장 무겁게 만드는 것은 환경보다 죄입니다.
죄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죄는 우리의 시선을 빼앗습니다.
죄는 하나님께로 달려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자기가 자랑했던 것들,
인간적으로 훌륭했던 것들이
오히려 믿음의 경주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55편 22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그가 너를 붙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넘어뜨리는 죄는 무엇입니까?
오늘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믿음의 경주할 때 필수 덕목이 ‘인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평생 달리는 마라톤입니다.
제가 지금 보기에는 10m도 달리지 못할 것처럼 보이지만,
미군 부대에서 철인 10종 경기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철인 10종 경기에서 마지막으로 부대 한 바퀴 10km를 뛸 때,
한계점에 다다릅니다. (힘을 다 뺀 상태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고 싶고 멈추고 싶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신기하게도 다시 호흡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끝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기도하십시오.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조금만 더 인내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12장 1절은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배들인
아벨이, 노아가, 아브라함이, 모세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라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믿음의 경주를 달려갔다.”
“우리도 믿음의 경주에서 고난을 겪고, 힘들어서 울었다.”
“그러나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다 달리며 믿음을 지켰다.”
“그러니 너희도 할 수 있다.”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인내하며 끝까지 달려라.”
우리는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고,
그들의 발자취 위를 따라 달려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조롱받고, 버림받으셨습니다.
6시간 동안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혀 십자가에서 달려 계셨습니다.
그 고통이 상상이 됩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쳐집니다.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늑골이 부러지는 듯한 고통을 참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십자가의 고통에서 벗어나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인내하며 그 고통을 다 참으셨습니다.
왜입니까?
부활의 영광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을 백성들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이용규선교사님이 쓴 “떠남”이라는 책에 보면,
이용규선교사님이 몽골 사역을 마치고
잠시 가족들과 미국 애틀랜타에 머물러 있던 중,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열흘간 사역차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답니다.
이제 집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레더랍니다.
그런데 문득 집이 ‘한국인지 몽골인지 미국인지’
어디가 집인지 잠시 헷갈리더랍니다.
그러다가 ‘어디가 내 집인가?’하는 질문이 떠올랐답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기다리는 곳이 내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내가 찾아가는 곳은 집이 아니라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였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어디 있든지 아내가 있는 그곳이
내 집이고 고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경주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는 사람을 바라보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합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낙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바라보면 다시 일어설 힘과 위로를 얻습니다.
문제를 바라보면 가라앉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낙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바라보면 다시 일어섭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달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다 보면,
우리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낙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믿음의 크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붙드시는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는
내 힘으로 완주하는 경주가 아니라
주님이 붙들어 주실 때 완주할 수 있는 경주입니다.
바라기는
사람을 보지 마시고,
환경을 보지 마시고,
문제를 보지 마시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주님께서 손에 붙들려 믿음의 경주를 마칠 때
사도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노라”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