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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칸토와 베리즈모???

작성자eric|작성시간11.02.08|조회수1,011 목록 댓글 0

2011년 개인 독창회를 해보겠노라고 선언하고나니...

"정말 해 낼 수 있을까?"라는 문제보다는

우선 어떤 성격의 독창회가 되어야할 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내가 그동안에 공부했던 노래,

평소에 즐겨 부르던 노래(젤로 잘 할 수 있는 노래)를 늘어 놓아야할지....

듣는 사람을 생각해서 좀더 대중적인 노래의 레파토리를 늘려야 할 것인지....

아님 특정 주제, 특정 작곡가나 시대를 조명하는 형태가 되어야할 지....

그런 저런 고민과 함께 그동안 공부했던 노래들의 리스트를 죽-- 늘어놓고 보니

'벨칸토', '벨칸토 창법'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벨칸토 (bel canto)’란 ‘아름다운(bel) 노래(canto)’라는 뜻이죠.

제 레파토리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모차르트 작품이 바로 벨칸토 창법으로 아름답게 불러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네이버 사전에서 '벨칸토'를 찾아보았습니다.

이렇게 써 있네요.

 

"벨칸토 [bel canto] 란 18세기에 확립된 이탈리아의 가창기법을 말한다. 벨칸토는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며 이는 극적인 표현이나 낭만적인 서정보다도 아름다운 소리, 부드러운 가락, 훌륭한 연주효과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결과 기교적 과장에 치우치는 폐단이 있어 글루크나 바그너는 벨칸토를 배척해 왔다. 그러나 벨칸토 자체는 고도로 예술적인 기법으로 현재 이탈리아오페라나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창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모차르트와 함께 도니체티, 롯시니,벨리니의 오페라를 '벨칸토 오페라'라고 하구요.

그 이후의 오페라, 그러니까 베르디나 푸치니 오페라들을 '베리즈모 오페라'라고 하며 흔히 벨칸토의 반대 개념으로 쓰이거든요.

그러니 '베리즈모'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죠. 

 

"베리즈모(Verismo)는 현실파라고도 한다. 19세기 후반의 이탈리아 오페라에 일어난 운동. 졸라, 프로벨, 입센 등의 문학적인 리얼리즘 영향이 음악에 나타난 것. 그 이전의 신화나 영웅을 다룬 과장된 대본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현실적인 사건을 다룬 대본이다. 따라서 초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콜로라토라 아리아 같은 특징은 없어지고, 바그너는 무한선율보다 민족적 색채가 더 짙은 레치타티보를 선호하였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1890), 레오카발로의 「팔리아치」(1892)가 이 운동으로 맺은 최초의 결실이며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그 후에는 프랑스의 샤르팡티에의 「루이즈」(Loise, 1900)가 있다. 또한 풋치니의 「라보엠」(La boheme, 1896)은 서정적인 성격의 베리즈모가 변형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제 개인적인 음색으로보나, 노래 공부의 단계로보나..

저는 강렬하고 다이내믹한 '베리즈모'쪽보다는 좀더 서정적인 '벨칸토'라는 생각을 하게되는군요. 

"이은권-벨칸토를 노래함"이란 주제로 가볼까 합니다.

 

‘벨칸토’에대한 좋은 글이 있어 퍼왔습니다.

음악평론가 이용숙씨가 썼군요.

회원님들의 성악 이론 무장에 다소나마 도움되시기를 바라며.....

.

‘벨칸토 (bel canto)’란 ‘아름다운(bel) 노래(canto)’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아름답게 노래하는 가창법’이라는 의미지요. 물론 모든 성악가는 아름답게 노래해 청중에게 감동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벨칸토 창법’, ‘벨칸토 오페라’, 혹은 ‘벨칸토 가수’라는 용어들을 만들어내게 되었을까요? 그건 벨칸토라는 말이 시대에 따라 특정한 의미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벨칸토라는 용어는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나?

 

1. 바로크 벨칸토

‘벨칸토’라는 용어는 16세기 말부터 존재했고, 17세기 중엽에는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단순하고 서정적인 창법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작곡가 자코모 카리시미(Giacomo Carissimi, 1605-1674) 등이 제창한 것으로, 그 당시까지 유행하던 가사 중심의 ‘스틸레 레프레젠타티보’ 창법에 대항해 선율을 중시했던 새로운 창법입니다. 벨칸토 창법은 18세기에도 계속 발전해갔습니다.

 

2. 19세기 벨칸토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벨칸토’는 주로 19세기 전반 이탈리아 오페라에 쓰였던 화려하고 기교적인 창법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저 우아하고 서정적으로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성악가가 발휘할 수 있는 극한의 기교를 총동원해 노래 부르는 것으로, 때로는 인간의 목소리로 악기들의 기교와 겨루는 시도가 이루어지지요. 벨칸토 창법은 강약의 폭이 좁아, 가수는 대단히 큰 음량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량을 치밀하게 조절하거나, 발음을 분명하게 해 빠른 패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 등이 중요했습니다.

 

3. 레가토의 중요성

벨칸토 창법의 최대 관건은 ‘유연한 레가토(legato)’입니다. 음과 음 사이가 끊어지지 않도록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것을 뜻합니다. 음계를 아무리 빠른 템포로 오르내리더라도 그 음들 사이를 명료하고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이 진정한 레가토랍니다. 그러나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가수들조차도 이 레가토의 의미를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음의 오르내림을 느슨하고 자유롭게 조절하는 것이 레가토라고 생각하는 가수가 많다는 것이지요.

 

4. 기교의 자유

물론 벨칸토 가수들에게는 기교를 발휘할 자유가 어느 정도 허락됩니다. 반드시 악보에 적힌 대로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예를 들면 벨칸토 오페라의 대표적인 아리아인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광란의 아리아’는 가수마다 다르게 노래합니다. 루치아 역을 맡은 가수가 소화할 수 있는 기량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고음이나 기교의 난이도를 조절해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5. 벨칸토 창법의 쇠퇴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극장 규모와 오케스트라 규모가 점점 커지고 오페라 소재 및 작곡법이 차츰 극적으로 변화하면서 벨칸토 창법은 쇠퇴하고, 중량감과 큰 성량을 요구하는 새로운 시대의 창법이 벨칸토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성악가들이 벨칸토 창법을 훈련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열린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초가 됩니다.

 

벨칸토 가수의 조건

벨칸토 오페라의 대표 작곡가였던 조아키노 로시니는 1858년에 ‘벨칸토 오페라 가수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1. 전체 성역에 걸쳐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닐 것

2. 노력 없이도 화려한 기교를 소화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을 것

3. 이탈리아 명가수의 노래를 듣고 거기서 배워 얻을 수 있는 탁월한 창법을 몸에 익힐 것

 

별 것 아닌 얘기 같지만 굉장히 어려운 요구입니다. 특히 ‘노력 없이도 화려한 기교를 소화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벨칸토 창법은 엄청난 연구와 노력과 훈련이 없으면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일단 발성훈련이 충분히 이루어져 기교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노력 없이도’ 가능한 것이죠. 위에서 말한 루치아의 ‘광란의 아리아’ 같은 노래는 상당한 수준의 가수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 겨우 소화해냅니다. 청중이 듣기에는 가수가 힘겹게 겨우겨우 소리를 지어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훈련된 진짜 벨칸토 가수는 크게 애 쓰지 않고도 그런 고난도 아리아들을 탁월하게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벨칸토 가수였던 로시니의 아내 이사벨라 콜브란은 원래 소프라노였지만 풍성한 중저음을 지녔고, 하이 메조 소프라노를 위한 배역들도 능숙하게 소화했습니다. 로시니는 벨칸토의 대단한 난곡들을 바로 자기 아내를 위해 썼습니다.

 

벨칸토를 대표하는 가수

20세기 들어 벨리니, 도니체티, 로시니의 거의 잊혀졌던 벨칸토 오페라 레퍼토리들을 역사 속에 부활시킨 마리아 칼라스는 ‘벨칸토란 목소리를 악기처럼 최대한도로 활용하고 제어하는 기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칼라스가 16세에 처음 만난 스승 엘비라 데 이달고는 그때까지 메조소프라노에 속했던 칼라스의 음역을 소프라노로 확장시켰습니다. 당연히 칼라스는 소프라노 및 메조소프라노 배역을 모두 부를 수 있게 되었지요. “나는 근육을 쓰는 걸 즐기며 발전해가는 체조선수나 춤 자체를 즐기며 실력이 늘어가는 무용과 학생 같았죠.” 이달고로부터 벨칸토 창법을 전수받고 벨칸토 레퍼토리들을 쉴새없이 연습했던 칼라스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 당시까지 오페라 극장에서 별로 인기가 없었던 벨리니의 [노르마] 타이틀 롤, [청교도]의 엘비라 같은 배역의 노래들을 칼라스는 길을 걸으면서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계속 연습했다고 합니다. 수업시절에 이미 달달 외워버린 이 배역들은 훗날 마침내 기회가 왔을 때 칼라스에게 최고의 영광을 안겨주었습니다. 누구도 이런 인기 없는 배역들을 그토록 열심히 연습하지 않았으니까요. 칼라스의 눈부신 공적은 완벽한 장식음을 구사하는 벨칸토 기교와 드라마틱한 음색 연기로 이 비인기 오페라들을 새롭게 대히트 시켰다는 점입니다. 칼라스의 뒤를 이은 대표적 벨칸토 가수들은 존 서덜랜드, 에디타 그루베로바,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입니다. 이들은 모두 유연한 레가토와 불꽃튀는 장식적 기교를 과시합니다.

 

벨칸토 오페라의 대표 작곡가와 대표작들

 

벨칸토 오페라의 대표적 작곡가 로시니/도니체티/벨리니

 

1.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

호른과 트럼펫 주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우고 볼로냐 음악 학교에서 작곡 공부를 시작한 로시니는 18세부터 오페라 작곡을 의뢰 받았고, 30대 후반에 오페라 작곡을 그만둘 때까지 총 39편의 오페라를 발표했습니다. 해마다 평균 두 편을 쓰는 속필이었던 셈이죠. 고전주의 형식을 따른 마지막 오페라 작곡가이면서 풍자 희극에 강했지만, 여러 편의 오페라 세리아와 규모가 큰 대작들도 발표했습니다. [세비야의 이발사], [신데렐라]를 비롯한 그의 여러 걸작들은 ‘희극을 위한 천재성’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2.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1848)

도니체티는 원래 관현악과 실내악, 칸타타와 교회음악에 헌신할 작정이었으나, 자신의 초기 오페라 작품에 유명 흥행사가 관심을 보이자 오페라 작곡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830년에 밀라노에서 초연된 [안나 볼레나]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사랑의 묘약],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연속적인 성공으로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검열에 염증을 느끼고 아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이탈리아를 떠난 그는 파리로 가서 [린다 디 샤모니], [돈 파스콸레] 등의 오페라로 다시금 성공을 누렸으나 신경쇠약 등의 이유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3.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

시칠리아 지방에서 태어난 벨리니는 나폴리 음악원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페르골레시의 음악을 배우며 작곡가로 성장했습니다. 1824년 로시니의 오페라 [세미라미데]를 보고 결정적으로 오페라에 헌신하게 되었지요. 그의 오페라는 초기부터 관객과 제작자 모두를 만족시켜, 이미 젊은 나이에 벨리니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 작품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해적]을 작곡할 때 만난 대본가 펠리체 로마니와 함께 [몽유병 여인], [노르마] 등의 히트작들을 발표했으나, 파리로 이주한 뒤 마지막 오페라 [청교도]를 발표하고 34세로 병사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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