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나라는 사람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항상 내가 그만한 노력을 해야만 하고,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야 그 응답으로 돌아오는 것이 내가 정당하게 차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를 얻기 전에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매우 불안 했습니다. 그러나 내 경험상 대부분은 먼저 받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사1;18)
이 구절은 구약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가장 아리송하게 생각하면서도 저에게 가장 뜨거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 구절입니다. 이유인 즉, 하느님은 언제나 나(내가 누구인지 따지지도 않고!)를 먼저 사랑하고, 용서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아무리 찾아도 별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사랑’입니다.“오너라”하시지만 먼저 우리에게 와 계시는 그분을 찾으면 그만입니다. 제 성격상 그저 받아서 미안하다고 얘기하기도 한참 전에 이미 저를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조건을 걸기 전에 그분께서 먼저 조건 없이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조건 없이 먼저 주는 것에 의구심을 가지는 저는 이 어마어마한 사랑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이야기 중에“주머니 속에 넣어 다니고 싶다”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몸소 보여 주십니다. 아니 그보다 더 놀랍게 말입니다. 성체로서 그분은 당신을 우리 몸속에 내 던지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난 너와 함께 있고 네게 마음을 기울일 것만을 항상 원한다.”하십니다. 내가 어찌 하느님의 사랑에 장단을 맞춰 내가 늘 하던 대로 대등하게끔 만들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의 나와의 관계를, 내가 세상 사람들과 관계 하듯이 하려는 내 방식에 굉장한 잘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이 와서 한번 시비를 가려보자 하셨으니 나도 시비를 걸어보려 해도 진하게 붉은 죄 뿐입니다. 불가능입니다. 아무리 시비를 가려봐도 그분은 더더욱 높게만 보이고 나는 더더욱 작아지며 비참하게만 보입니다.
비록 나 혼자만의 사랑의 응답은 별 것이 아니지만, 우리 모두의 것을 모으면 주님의 눈에는 ‘별 것 같은 티’라도 날 것 같은 생각이 일기도 합니다. 끼리끼리 어울려 다닌다고 했던가요? 하느님 눈에는 우리가 모두 고만고만한, 끼리끼리 할 것들입니다. 비슷한 우리들인데도 항시 분열되어 서로 싸우는 우리가 뭉치고 다닐만한 가장 좋은 접착제는 아무리 찾아봐도 용서와 사랑 밖에는 없습니다. 먼지 묻은 스티커가 잘 붙지 않듯이, 사랑하려면 우리가 먼저 깨끗해지길 노력해야겠습니다. 항상 하느님을 바라보며 시비를 가립시다. 동네 건달님들이 하는 그 ‘시비’가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교 신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통해 하느님과 마주하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눈같이 희도록 깨끗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어마어마한 그 사랑을 미약하나마 서로에게 할 수 있을 때,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하나 된 모습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하나 된 모습이야 말로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아주 크고 만족스러운 보답이 될 것입니다.
- 남광진 안드레아 형제, 소식지 형제들의 뜰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