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침대와 남겨진 온기
누구나 태어나면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걸어갑니다. 순서 없이 찾아오는 그 길 앞에서, 우리네 삶은 시작과 끝이 참으로 닮아 있습니다.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누군가의 손길 없이는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듯, 떠날 때 역시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손길에 의지해 옷을 갈아입고 마지막 길을 배웅받습니다.
천 년을 살 것처럼 분주히 움직이던 삶도, 결국에는 빈손으로 바람처럼 돌아가는 것이지요.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서 보았던 초혼(招魂)의 기억이 납니다. 지붕 위로 높이 던져진 망인의 저고리가 바람에 펄럭이던 그 애절한 몸짓, 그리고 망자 이름을 세번 부르던 동네 할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는 온 마을을 슬픔으로 적셨습니다. 그때는 그저 죽음이라는 것이 참 멀고도 두려운, 막연한 서러움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리고, 십오 년 전, 저는 그 멀게만 느껴지던 죽음을 요양보호사를 시작하며 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떠나보낸 96세의 어르신이 생각납니다.
주름진 얼굴에 피어난 미소가 마치 잘 익은 꽃잎 같던 분이셨지요. 자식들과 손주들이 찾아와 얼굴을 비비며 온기를 나누던 모습은, 그 자체로 지극한 효심의 기록이자 따뜻한 사랑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수를 다하신 어르신은 고요히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엄마, 가지 마세요."
"나 두고 엄마 어디 가"
서럽게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딸의 절규와, 입을 굳게 다문 아들의 얼굴위로 애절한 굵은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제가 손수 죽을 떠 드리고, 머리 빗겨드리며 손톱을 깎아드렸던 그 따스한 온기가 아직 손끝에 머물러 있는데,
어르신이 장례식장으로 떠난 침대는 어느새 차갑게 비어 있었습니다. 그 텅 빈 공간을 마주하던 순간, 밀려오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화장실로 달려가 한참을 울었습니다.
식사도 거른 채 붉어진 눈을 훔치는 저에게, 선배들은 '남자가 그렇게 마음이 여려서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하려느냐'며 다그치듯 말했습니다. 이별 앞에 무덤덤해지는 것이 이 업의 숙명이라지만, 저는 그 담담함의 선배들이 도리어 원망스러웠습니다. 닷새 뒤, 식당에 놓인 박스에는 자녀들의 정성이 담긴 떡과 수박이 "그동안 어머니 진심으로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어르신의 영면을 기원하며 그 마음을 삼켰습니다.
이후로 참 많은 어르신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켰습니다. 대부분은 그저 잠을 자듯 곱고 평안한 모습으로 세상의 짐을 내려놓으셨지요. 그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언젠가 나 역시 이 길을 떠나게 되겠구나, 하는 서늘하면서도 담담한 깨달음 말입니다.
버드나무는 가지를 꺾어도 다시 새잎을 틔우지만, 사람의 일생은 단 한 번뿐인 소풍입니다.
오늘 창밖에는 비가 내립니다.
이런날 무거운 이야기 올려드려 죄송합니다.
이 공간 안팎에서 묵묵히 어르신의 삶을 지탱해주시는 선생님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의 따뜻한 손길에 깃든 노고와 건강을,
이 비 내리는 오후에 마음 깊이 기원해 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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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가을엔(서울) 작성시간 26.06.21 여자 샘이신줄요
그런대 남자샘 이셨군요
그런대도 어찌 그리 세심하고
따스함이 묻어 나는지요.
그 아름다움 마음들은
또 어디에서 이렇게 끝없는 샘물처럼 솟아 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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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이성산(경기) 작성시간 26.06.20 저도 결이 고운 여선생님인줄 알았어요 문장과 문맥이 심성만큼이나 곱다고 여겼거든요
아참 남자분들은 나이들면 여성화 된다는 말을 실감해 봅니다 -
작성자김춘임 작성시간 26.06.22 매번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