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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그분과 함께

오늘의 복음묵상

작성자사랑방|작성시간11.11.09|조회수9 목록 댓글 0

2011년 11월 9일 수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에서 칙령을 발표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별궁이었던 라테라노 궁전을 교회에 기증해 대성전으로 사용하게 했다. 이후 교황들은 이곳에 거주했으며, 대관식과 착좌식도 이곳에서 거행했다.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이었다.


☆☆☆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요한 2,13-22)

 

 

말씀의 초대

 물이 귀한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샘은 하느님의 능력과 생명력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새로운 시온, 그곳에 세워진 성전 밑에서 새 샘이 흐르는 것을 본다. 새로운 성전인 예수님의 몸,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영원한 생명의 물을 예표하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쫓아내시며 성전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신다.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건물로서 성전을 거룩하게 보전하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적 성전으로 거룩하게 받아들이는 행위와 같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성전을 주님께서 현존하시는 신비의 심장부로 묘사합니다. 하느님의 집 오른쪽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그 물이 바다로 흘러가면 바다가 살아나고 강으로 흘러가면 강마다 생물이 넘쳐납니다.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푸르게 살아나고 새 과일이 주렁주렁 열립니다.
성전에서 샘솟는 물이 흘러나와 마치 초록 물감이 번지듯 그 물이 닿는 곳마다 푸르게 살아나는 모습은 상상만 하여도 행복해집니다. 교회는 이렇게 세상에 푸른 생명을 주는 곳입니다. 교회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파랗게 희망이 돋아나고 사랑의 열매가 맺히는 따뜻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곳곳에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은 예로부터 하느님의 거룩한 현존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성전은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 생명과 사랑의 가치들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곳입니다. 성전에서 샘솟는 이 물이 흘러 닿는 곳마다 죽어 가는 세상이 생기를 찾아 되살아납니다. 오늘날 강도 산도 모든 것이 잿빛 콘크리트로 변해 가는 세상에, 성전은 생명의 샘이 되어 흐르는 곳마다 푸른 생명으로 살아나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
신앙인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그들의 삶이 닿는 곳마다 어둠을 빛으로 바꾸고, 죽음을 생명으로 살아나게 합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절망을 희망으로 일어나게 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성전은 아름다운 신앙인들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영적인 샘이 됩니다.

☆☆☆

 다윗 임금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그곳에 ‘계약 궤’를 모십니다. 이로써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 도시가 됩니다. 다윗은 이곳에 성전 건립을 추진하였고, 아들 솔로몬 임금이 기원전 957년에 완공시킵니다. 그리고 계약 궤를 안치해 둔 장소를 “지성소”라 불렀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올리브 나무로 만든 두 천사가 ‘계약 궤’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파괴됩니다. 그리고 백성은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50년의 유배 생활을 종식시킨 이는 페르시아의 임금 고레스였습니다. 그는 잡혀 왔던 유다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고, 성전 재건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전은 복구되지만 초라하였습니다
.
로마 시대가 되자 헤로데 임금은 성전을 화려하게 재건합니다. 이후 성전 광장은 집회 장소가 되었고, 상인들과 환전상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유다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도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그러나 독립 운동이 거세지자 로마는 성전을 파괴해 버립니다. 정신적 구심점을 제거한 셈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서쪽 벽(통곡의 벽)의 일부입니다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 당신이시라는 말씀입니다. 
 

☆☆☆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복음의 핵심입니다. 성당 안에서까지 세상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다시 읽어 봐야 합니다. 기도의 순간에도 ‘걱정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면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 봐야 합니다. 성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걱정’은 실제로 접어야 합니다.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는지요? 누구나 나름대로 문제점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성당에서만은 걱정이 아니라 ‘감사’를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삶의 ‘아홉’이 걱정이고 감사는 ‘하나’뿐이더라도, 그 하나를 붙잡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드리는 행위가 마음을 여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면 실제로 감사할 일이 생겨납니다. 걱정하면 걱정거리는 더 커 보입니다. 시각이 ‘삶을 바꾸는’ 것이지요. 찬양과 감사를 위해 성전이 존재하는 것이지, 두려움과 근심에 젖으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걱정이 떠나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상상도 하지 않고’ 감실 앞에 앉아 있는 훈련을 해 보십시오. ‘무념무상’의 연습입니다. 생각을 비울 때 영혼은 비로소 소리를 냅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어디에 있든 고요한 몸이 됩니다. 마음이 어수선하면, 성전 안에서까지 짜증이 나고 정신이 어지럽습니다.

좋은 습관을 몸에 익혀야만 합니다. 그러면 나쁜 습관은 저절로 고쳐집니다. 그러니 성당에선 언제나 선한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상상도 없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성전은 이렇듯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장소입니다. 그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기에 엉뚱한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장사하지 말라고 해서 ‘좋은 목적으로 물건 파는 것’까지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당에서까지 세상일과 세상 번뇌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채찍을 만드시어’ 장사하는 이들을 몰아내셨습니다. 우리 역시 잘못된 습관은 과감히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을 성전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도 성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성당에서만큼은 착하고 선한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성전

-강영구  신부-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대에게

사도 바울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1고린3,16-17)

성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대리석이나 금은보화가 아닙니다.
대리석으로 지어 금은으로 장식한 성전일지라도
강도들이 드나들면 ‘강도의 소굴’(마태21,13)이 됩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성전을 만듭니다.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돈과 재물, 지위와 명예, 지식과 학식 따위가 아닙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값비싼 명품과 고급 화장품 그리고 귀금속 장신구로 자신을 치장한 사람이 드나드는 성전이 아름다운 성전이 아닙니다.
맑고 밝은 가난한 마음, 온유하고 자비로운 마음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하느님은 돌로 지은 건물 안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드나드는 성전이 아름다운 성전이 됩니다.

예수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 예수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 자비의 손길을 체험합니다.

당신도 하느님의 성전입니다.(一明)

 

기도 없는 성전은 건물이다.

-박상대신부-

 

  오늘 전세계 가톨릭교회는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기념한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324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274-337) 황제가 세웠고, 실베스터 1세 교황이 축성하여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주교좌성당으로 삼았다. 대성전에 인접한 라테라노 궁전에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역대 교황들이 거주하였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그 후 "전세계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머리" 라는 명칭으로 베드로좌에 대한 전세계 교회의 존경과 일치의 표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12세기부터는 세례자 요한의 대성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후 수세기를 걸쳐 화재, 지진, 약탈로 말미암아 훼손된 부분을 복구하였고,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이 대대적으로 증축하여 "가장 거룩한 구세주 예수"께 성전을 봉헌하고, 11월 9일을 봉헌축일로 확정하였다. 오늘날 교황은 성목요일 주님 만찬미사를 이곳 대성전에서 집전한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에 뒤지지 않을 만큼 웅장한 성전이다. 우리고 오늘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지낸다고 해서 대성전의 건축물을 놓고 기념하거나 축하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주교좌성당을 중심으로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일치를 기원하고 기념하는 축일이다. 오늘은 곧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 신비체요,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의 축일인 셈이다. 이 축일에 우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성전 정화에 관한 복음을 듣게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성전 정화는 네 복음서 모두가 전하고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공관복음서들이 이를 예수님의 공생활 말기에 있었던 사건으로 전하고 있는 데 비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에 두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수님의 성전정화사건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발생했던 간에 그 내용은 같다. 요한복음사가는 이 사건을 예수님의 공생활 서두에 둠으로써 성전정화의 의미가 공생활 시작과 큰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예수께서 의로(義怒)와 열정으로 정화하시는 예루살렘성전은 이스라엘의 종교와 삶의 모든 것이었다. 그 안에 계약의 궤가 모셔져 있었고 이는 야훼 하느님의 현존과 그들의 선민(選民)과 구원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성전의 참된 상징은 장사꾼들의 지나친 상혼(商魂)에 가려있었고, 그 뒤엔 제사장들의 권력과의 결탁이 있었으리라. 이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한 사역(使役)의 시작에서 예수님은 빗자루를 손에 들었다. 이는 유다교를 말끔히 청소하기 위함이다. 구약(舊約)을 폐기하고 신약(新約)을 세우시기 위함이다. 무슨 권한으로 정화행위를 하느냐(18절)는 유다인들의 비난에 맞서, 예수님 스스로가 "새로운 성전"임을 암시한다.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세우시기 위하여 이제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것이다.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 스스로가 새로운 성전이 되신다는 것은 유다인들은 물론이고, 제자들까지도 나중에 가서야 알게된다.

 

  신약의 참된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지어 바치는 건물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몸이다. 신약의 성전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 자신들의 몸이다. 물론 신앙의 공동체가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며 성체성사를 거행하기 위하여 함께 모이는 성당 또한 하느님의 성전이다. 성전은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곳이다. 성전은 무엇보다 기도하는 곳이다. 기도가 없는 성당은 성전이기보다 하나의 건물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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