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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총장 신부님 서한 – 바로톨로메오의 복녀 안나 선종 400주년 기념

작성자작은꽃|작성시간26.06.12|조회수81 목록 댓글 3

 

2026년 총장 신부님 서한

바로톨로메오의 복녀 안나 선종 400주년 기념

 

(1626-2026)

 

 바로톨로메오의 안나 : 400주년

바로톨로메오의 복녀 안나 선종 400주년 (1626-2026)을 맞이하여 맨발 가르멜 수도회 총장 미겔 마르께스 신부

 

수도회의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수사들, 수녀들, 재속 가르멜 회원들에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026년 6월 7일 주일, 많은 나라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 일을 지내는 이 날, 교회는 400년 전 안트베르펜 (벨기에)에서 바로톨로메오의 복녀 안나가 “아무 소리 없이 죽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한 뒤 자신의 영혼을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맡겼음을 기억합니다. 400년이 지난 오늘, 그녀의 단순함을 특징짓는 이러한 숨은 삶의 열망은 가르멜과 온 교회 안에서 계속 빛나게 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바로 그 침묵의 겸손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시대에 깊은 울림을 주는 증언이 되게 합니다.

 

저는 단지 직무상의 의무를 수행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 400주년이 우리 수도회 전체에 참된 은총이 되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열망으로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저는 복자 안나를 연구하 데 평생을 바친 여러 사람의 글과 강의를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명료하면서도 상호 보완적이라고 느낀 두 분의 통찰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한 분은 수십 년 동안 수도회 역사와 복녀 안나의 삶을 학문적 엄밀성과 신심으로 조명해 온 우리 수도회 형제 율렌 우르키사(Julen Urkiza) 신부입니다. 또 다른 한 분은 몇 주 전 저에게 긴 편지를 보내온 젊은 역사학자 메르세데스 하우레기(Mercedes Jauregui)입니다. 그녀의 글 속에서 저는 단순한 학식을 넘어 더욱 값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복녀를 바라보는 새롭고 신선하며 깊은 애정이 담긴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가장 아름다운 통찰들 가운데 몇 가지는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I. 새롭게 되살려야 할 기억

 

성 바르톨로메오의 복녀 안나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위대한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운명을 겪어 왔습니다. 그녀는 때때로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만남의 장이 되기보다, 논쟁과 대립이 벌어지는 장으로 이용되곤 하였습니다.

 

최근 우리 수도회의 역사 연구에서도 그녀에 대한 평가는 두 극단 사이를 오갔습니 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데레사적 카리스마의 유일한 상속자이며 유일한 해석자로, 우리 어머니 성녀 데레사의 정신을 가장 정통하게 보존한 인물로 보았습니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이러한 평가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녀의 역할을 지나치게 축소하거나,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수도회 회헌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그녀가 취한 입장만을 기준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이 두 입장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기억과 명성에 해를 끼쳤습니다. 첫 번째 입장은 안나의 모습을 경직된 이미지로 만들어, 그녀의 갈등을 벌이던 한 진영의 깃발과 같은 존재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두 번째 입장은 그녀의 증언이 지닌 풍요로움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결국 수도회 전체의 카리스마적 유산을 빈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 온 바로톨로메오의 안나의 모습, 곧 금욕적이고 전통주의적인 영성과 연결된 인물, 순명을 단순한 복종으로 이해한 인물, 그리고 제도적 통일성을 엄격하게 수호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는 사실 부분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나 불완전합니다. 그리고 불완전하게 제시된 것은 결국 진실 자체를 왜곡하게 됩니다.

 

메르세데스 (Mercedes)가 제게 적절하게 지적해 주었듯이, “사람들이 받아들인 그 이미지는 바로톨로메오의 안나 자신이 아니라, 그녀의 몇몇 특징에 근거한 부분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더욱이 그 해석은 역설적으로 오늘날의 감수성과 더 잘 공명할 수 있는 다른 중요한 측면들을 그림자 속에 남겨 두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이 400주년은 우리를 한 가지 시급한 과제로 초대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녀에게 덧씌워 온 이미지와 해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복녀 자신의 저술과 삶 전체를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 요한 것은 새로운 안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참된 안나를 다시 발견하는 것입니다.

 

II. 진정 중요한 일치는 획일성이 아니라 사랑의 일치

 

율렌(Julen) 신부는 바로톨로메오의 안나가 데레사 가르멜의 일치를 열정적으로 수호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1585년부터 1592년까지의 회헌을 둘러싼 갈등의 시기와 이후 플랑드르 지역의 어려운 상황과 같은 분열의 순간들 속에서 안나는 구조적 일치, 공동 규범에 대한 순명, 그리고 교계 질서에 대한 충실성을 옹호하였습 니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편의 때문이 아니라 성녀 데레사로부터 받은 유산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에 실천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나가 수호한 일치는 위에서 강요된 일치, 혹은 냉랭한 획일성에서 비롯된 일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엮어진 일치였고, 일상 안에서 실천되는 애덕으로 이루어진 일치였습니다.

 

그녀 자신이 기록하였고, 율렌 신부가 풍부한 자료를 통해 입증했듯이, 그녀의 일치에 대한 수호는 신비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곧 그녀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녀는 그 현존을 데레사와 모든 자매 안에서도 발견하였습니다.

 

안나는 맹목적으로 순명하는 여인이어서 일치를 수호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녀는 일치가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 곧 카리스마와 형제애, 그리고 물려받은 유산을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일치를 수호하였습니다. 바로 이 차이가 모든 것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놀라울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밖으로 눈을 돌려 보면, 오늘날의 문화는 개인을 의미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체를 세우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안나가 제시하는 일치의 모델, 곧 획일성이 아니라 사랑으로 엮어진 일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도전적이며, 동시에 더 절실하게 필요한 메시지가 되고 있습니 다.

 

또한, 수도회 내부를 바라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을 지닌 우리 수도회 안에서 안나의 모습은 논쟁과 대립의 장이 아니라 만남과 화해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안나는 경계의 사람이었고, 카리스마의 확장을 위해 자신을 내어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전쟁과 긴장, 그리고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결코 자신의 정신과 영혼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를 가든지 형제적 사랑을 심고 가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발을 디딘 모든 곳에서 사랑은 분열보다 강했고, 형제애는 갈등보다 더 큰 힘이었습니다. 따라서 안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일치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III. 섬세함과 감수성 : 그녀의 성덕의 잊혀진 접착제

 

바로톨로메오의 안나는 전기나 대중적인 소개 자료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사실 매우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섬세함 (delicatezza)과 감수성(sensibilità)입니 다. 이는 단순한 성격이나 기질의 특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깊은 차원 의 것으로, 그녀 삶의 모든 요소를 하나로 엮어 주고 일관성을 부여하는 핵심적인 실입니 다. 만약 섬세함과 감수성이 없었다면, 그녀의 일치에 대한 수호는 강요된 획일성으로 변질 되었을 것이고, 그녀의 봉사는 단순한 기능적 역할이나, 더 나아가 맹목적인 복종으로 전락 했을 것입니다.

 

안나는 영적으로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저술을 읽어 보면, 동료 수녀들에게 얼마나 세심하고 부드럽게 말했는지, 인간 심리 를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 그리고 수련자들을 지도할 때 규율과 사랑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말을 할 때도 매우 신중했습니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 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오래 숙고하였습니다. 병든 자매를 돌보아야 할 때면, 마치 그 자매 가 자신의 온 세상인 것처럼, 곧 그리스도 자신인 것처럼 헌신하였습니다. 침상을 깨끗이 정돈하고, 필요하다면 밤새 곁을 지키며, 상대가 필요를 말하기도 전에 미리 살폈습니다. 어떤 때에는 작은 눈길 하나와 미소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상대가 영적 어둠을 지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 걸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안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똑같은 섬세함으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녀가 남긴 방대한 서간집은 아마도 이러한 감수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일 것입 니다. 자매들과 제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어조, 각 사람의 구체 적인 상황에 기울이는 세심한 관심, 사소한 일들까지 기억하는 놀라운 배려는 모두 그녀가 소통을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돌봄의 행위로 이해했음을 보여 줍니다.

 

메르세데스는 저에게 우리 둘 다 결코 잊지 못할 한 가지 일을 상기시켜 주었습니 다. 그녀는 제가 세비야의 한 병원에서 회복 중이던 앙헬레스 원장 수녀에게 전화를 걸었던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마지막 시기에 단지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여러 차례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축복을 전해 왔습 니다. 이에 대해 메르세데스는 그것이 자신에게는 “형제애와 사랑 그리고 자비의 위대한 표현”으로 보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데레사 성녀가 사랑의 가장 참된 표지로 알아보았던 섬세함이며, 십자가의 성 요한이 평생을 실천했 던 섬세함입니다.” 이 말을 읽으며 저는 그녀가 저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동시에 안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을 제게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상적인 삶이 된 섬세함이었습니다.

 

바로톨로메오의 안나는 감수성과 섬세함, 그리고 부드러움의 혁명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혁명가였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에게 정반대를 요구하기 때문 입니다. 세상은 감수성을 약함으로 여기고, 그것이 우리를 취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안나는 자신의 부드러움을 힘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흐름에도,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도 거슬러 올라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타인에 대한 감수성은 점점 더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금 감수성 안에서 급진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냉담함의 벽이 아니라 사랑의 벽으로 자신을 보호해 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차가운 방어막이 아니라 활짝 열린 우리의 두 팔이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IV. 봉사와 단순함 : 작은 것의 힘

 

안나의 봉사에 대한 소명은 그녀 삶의 가장 잘 알려진 측면이지만, 동시에 가장 쉽게 오해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녀의 봉사가 결코 체념이나 수동적 순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안나는 평수녀(laica)로 서원하였고, 공동체 안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고 가장 조용한 자리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원장 수녀들로부터 특별한 신뢰와 존중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수련장이었던 성 예로니모의 마리아 수녀는, 조용히 봉사하는 사람들 안에 숨어 있는 것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안나 안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비범할 만큼 풍요로운 내적인 삶이었습니다.

 

안나의 특별함은 그녀가 이러한 봉사의 자세를 결코 잃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검은 베일(종신 서원)을 받고 가대 수녀가 된 후에도, 나아가 원장과 설립자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나는 공동체 안에서 가장 낮은 직무도 수행하였고, 가장 높은 직무도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자리에서든 똑같은 봉사의 정신으로 살아갔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복음적 자유입니다. 이것이 성녀 데레사가 말한 “진리 안에서 걷는 것 (camminare nella verità)입니다.

 

오늘날에는 봉헌생활 안에서도 사람과 사물의 가치를 가시성과 명성으로 평가하려는 유혹이 존재합니다. 직책, 출판물, 프로젝트, 문화적 활동과 같은 것들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곤합니다. 그러나 안나는 매우 데레사적이며 동시에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를 세워 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녀의 삶은 영적 성직주의 (clericalismo spirituale)의 모든 형태에 대한 강력한 교정이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종종 잊히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덧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안나는 결코 무지한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그녀의 저술과 시가 특정 분야에 대한 세련되고 선택적인 지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교부 문헌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전통적인 성인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topos agiografico), 곧 그녀가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우게 되었다는 사실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입니 다. 기적에 가까운 개입으로 글을 배우게 된 무학(無學)의 평수녀라는 이미지는, 실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성인전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전형적인 서술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안나는 의도적으로 단순함을 드러내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단순함이야말로 복음에 가장 가까운 언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지식을 감추었던 것은 단지 당시 사회적 분위기나 시대적 압력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자아(ego)를 섬기는 지식이 독이 되지만, 사랑을 섬기는 지식은 애덕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V.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 : 그녀 영성의 중심

 

율렌 신부는 풍부한 사료와 문헌을 바탕으로 바로톨로메오의 안나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체험입니다. 이것은 그녀 영성생활의 핵심이며, 더 나아가 그녀 삶 전체의 중심 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며 기쁨을 주셨습 니다. 그녀의 가장 큰 소망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바라보시고 결코 당신의 시선을 거두지 않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녀 데레사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녀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것 역시, 창립자 성녀를 통해 느끼고 경험했던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레사 성녀가 임종을 맞이하였을 때, 안나는 앞으로 어떻게 이 살아 계신 그리 스도와 현존 안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를 깊이 염려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안나가 단순히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in) 살아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 그 자체(la)를 살아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임마누엘, 곧 신약 성경이 계시해 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으로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녀에게 이 현존은 정지되어 있는 어떤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역동적이고, 소통하며,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실존적인 현실이었습니다. 이 현존은 하느님의 은총이 무상으로 베푸는 선물이 었지만, 동시에 안나가 충실하게 간직하고 보존해야 할 영적 현실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현존으로 그녀 삶의 모든 것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현존에서 영혼들에 대한 갈망이 흘러나왔고, 교회를 위한 열정이 흘러나왔으며,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흘러나왔습니다. 또한, 사랑 때문에 고통을 감내할 힘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 “사랑은 십자가를 찾는다. 그 안에서 자신의 갈망을 쏟아붓기 위하여. 그 갈망은 강하고 진실하며 십자가를 갈망하며 굶주려 있다.” 안나에게 십자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가장 위대한 표현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부인 교회에 사랑의 입맞춤을 주셨습니다. 십자가라는 혼인 침상 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영혼들을 위해 피의 혼인을 거행하셨습니다.

 

이처럼 안나가 깊이 살아낸 그리스도 중심적 영성은 그녀 주변 사람들에게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훗날 추기경이 된 Pierre de Bérulle 입니다. 안나와의 교류는 그의 영성 생활과 신학적 사상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Oratorio di Gesù1) 의 설립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더 나아가 간접적으로 17세기 프랑스 가톨릭 쇄신 운동에 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역사가 Jean Dagens 역시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습니다 : “안나는 프랑스 가톨릭 쇄신의 역사 안에서, 아직까지 역사가들이 그녀에게 부여하지 못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따라서 이 400주년 기념은 우리 수도회가 겉으로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살던 시대와 주변 세계를 변화시켰던 이 여인의 역사적 영향력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VI. 400주년을 위한 실천적 제안들

 

이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그리고 많은 지혜와 애정을 담아 제게 보내 주신 여러 제안들을 바탕으로, 이 400주년을 보다 풍요롭게 살아가기 위한 몇 가지 실천적인 제안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가 사용하는 안나의 이미지에 주의를 기울입시다. 오랫동안 안나의 노년기 초상화만이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물론 그 그림들은 아름답고 따뜻한 느 낌을 줍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전통적인 소개 방식과 결합되면서 안나에 대한 다소 경직된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수도회는 이 외에도 매우 아름다운 여러 초상화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고비아에 보존되어 있는 젊은 시절의 초상 화에는 둥근 얼굴의 젊은 안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녀를 농촌의 여인으로, 혹은 데 레사의 제자로 묘사한 판화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미지는 안나의 인격과 삶의 또 다른 측면들을 발견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둘째, 그녀의 갈등보다 우정과 관계를 더 강조합시다. 안나는 수많은 소중한 인간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녀는 세페다의 데레사 (예수의 성녀 데레사), 성 예로니모의 마리아 수녀, 풍투아즈, 투르, 안트베르펜의 수련자들, 예수의 안나, 그라시안 신부, 예수의 토마스, 그리고 이사벨라 클라라 에우헤니아 공주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녀의 태도는 놀라울 만큼 친근하고 밝았으며 기쁨에 넘쳐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품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겼고, 매우 깊고 강한 우정을 형성하게 하였습니다.

 

셋째, 그녀의 저술을 신중하게 선별하여 소개합시다. 순명과 겸손에 관한 유명한 문구들만을 반복적으로 인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그것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것들은 안나에 대한 다소 경직된 이미지와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가장 내면적인 모습 부드러움, 정서적 깊이와 사랑을 보여 주는 글들을 발굴해야 합니다.

 

1) Oratorio di Gesù는 16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피에르 드 륄(Pierre de Bérulle) 추기경이 설립한 가톨릭 사제들의 사도적 삶의 공동체(Congregazione dell'Oratorio di Gesù e di Maria Immacolata)를 의미합니다. : 출처는 구글 검색 : Oratorio di Gesù

 

특히 짧고 직접적이며, 한 장의 이미지나 SNS 게시물에 담을 수 있는 문구들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별다른 설명 없이도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안나를 소개해 야 합니다.

 

넷째, 안나를 단지 “성녀 데레사의 동반자이자 간호자”로만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며, 그녀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나는 데레사 성녀의 죽음 이후에도 매우 풍부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녀의 영성적 깊이는 독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데레사를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데레사의 카리스마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남, 녀 수도자와 재속회원 모두가 그녀를 널리 알리는 일에 참여하기를 권 고합니다. 포스터 제작, 홍보 자료 준비, SNS 콘텐츠 제작, 소규모 독서 및 연구 모임 등 수 작업이든 디지털 작업이든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다양한 환경 속에 안나의 정신을 조금씩 심어 놓는 훌륭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작은 씨앗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그 가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룹에 이러한 일을 맡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각자의 공동체 안에서 안나를 알리는 새로운 전달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Associazione degli Amici di Anna di San Bartolomeo (바로 톨로메오의 복녀 안나 친구들 협회)2) 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 단체는 수십 년 동안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나를 잊고 한쪽으로 밀어 놓았 을 때에도, 이들은 그녀의 기억을 살아 있게 지켜 왔습니다. 수도회 전체를 대표하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함께 바로톨로메오의 안나의 풍요로운 기억을 새롭게 되살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안나와 수도회 초기의 다른 중요한 인물들을 기억 하듯이, 바로톨로메오의 안나 역시 우리 기억 속에서 새롭게 살아나야 합니다. 이 400주년은 데레사의 유산을 계속해서 보존하고, 그것을 우리 삶 안에서 진실하게 살아내도록 초대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살아 있는 불꽃을 다시 지피는 일입니다. 바로 그 불꽃이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바로톨로메오의 안나를 사로잡았고, 하느님 사랑에 완전히 매료되게 하였던 불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데레사 가르멜 가족 여러분, 저는 개인적인 고백으로 이 편지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메르세데스가 제게 그 편지를 보냈을 때, 저는 세비야의 “데레사 수녀원”에 계신 앙헬레스 원장 수녀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한 자매에게 필요한 것이 단 한 가지뿐일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을 바라봐 주는 것, 섬세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 주는 것, 깊이 귀 기울여 들어 주는 것, 그리고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25년 11월 26일 시노드 홀에서 수도회 장상연합회(USG)회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현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Associazione degli Amici di Anna di San Bartolomeo : 이탈리아의 Associazione degli Amici di Anna di San Bartolomeo(바로톨로메오의 복녀 안나 친구들 협회)는 가톨릭 신앙 단체로, 가르멜회 수녀이 자 성녀 바로톨로메오의 복녀 안나의 삶과 영성을 보존·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협회는 그녀의 영적 유산을 기념하고 현대 신자들에게 그 신앙적 의미를 알리는 활동을 중심으로 한다.

 

오래 참고 인내하며 경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생각과 감정을 깊이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질로, 곧 하느님의 불타는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이의 관계가 거룩한 유대로, 은총의 통로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삶의 신비를 발견하고 전달해야 합니다.”

 

바로톨로메오의 안나는 평생 동안 바로 이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봉사하였 고, 동행하였으며, 돌보았습니다. 편지를 썼고, 병든 자매들을 간호하였으며, 필요를 미리 살폈습니다.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고, 섬세하게 교정하였습니다. 일치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일치를 수호하였고, 모든 자매 안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녀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도 갈등이 있었고, 의심이 있었으며, 영적인 어두운 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성인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복녀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살아 있는 인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극히 거룩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 기념하는 이 400주년이 안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녀의 증언이 우리 마음을 흔들어 깨우기를 바랍니다. 그녀의 섬세함이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를 바 랍니다. 그녀가 사랑 안에서 살아낸 일치가 우리가 아직도 지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녀가 체험한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진리를 다시 일깨워 주기를 바랍니다. 안나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 “하느님의 현존에서 멀어지는 것은 물고기를 물 밖으로 꺼내는 것과 같다. 하느님의 현존은 우리의 환경이며, 우리의 생명이다.”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께서 “부엌 냄비들 사이에서도 거니신다.”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로톨로메오의 안나는 바로 그 냄비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신비적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4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도 그녀에게서 배우기를 희망합니다.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아 저는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바로톨로메오의 안나가 우리에게 물려준 친교와 감사, 그리고 일치의 정신을 잘 간직하고 키워나가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어머니이신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정신이며, 우리의 아버지이자 형제인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여러분 모두에게 저의 축복과 형제적 사랑을 보냅니다.

 

안트베르펜 (벨기에)

2026년 6월 7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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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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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작은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6월 7일 바로톨로메오의 복녀 안나 선종 400주년
    총장님 서한
    모세 신부님께서 번역하셔서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귀한 선물 보내주셔서 감사드리며
    미주 가르멜 가족과 공유합니다.
  • 작성자붓꽃연필 | 작성시간 26.06.12 귀한 자료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작은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마주 감사드리며
    우리 주님 성심의 사랑 담뿍 내려 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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