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이른 새벽 눈을 뜨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에 강물처럼 흐르는 평화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처럼 고요한 세상의 아침 속으로 소리 없이 흔적도 없이 찾아오시는 주님, 당신이 주시는 평화를 느끼며 당신이 허락하신 삶을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몇 해 동안 살아온 날들은 측량할 수 없이 깊고 어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처럼 두려웠습니다. 한 조각 빛도 느낄 수 없는 황량한 광야 한 가운데 발가벗겨진 맨 몸으로 홀로 던져져 뼛속 깊은 곳까지 스미는 처절한 외로움과 숨이 끊어질 듯한 목마름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한 줄기의 가느다란 희망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하느님은 볼 수가 없고 희미한 음성조차 들리지 않았으며,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기력도 없는 듯 하였습니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서서히 말라비틀어져 시들어버리기 직전의 여린 목숨 줄기만 겨우 남아있을 뿐 무엇을 먹으려는 욕망도 살아보겠다는 작은 의지도 남아있지 않은 듯 하였습니다. 뜨겁게 고동치던 심장도 식어가고 그 울림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어서 거친 광야의 끝없는 어둠을 깨울 수 있는 힘을 내기가 버거웠습니다.
뇌하수체의 이상으로 몸 속 호르몬 체계가 비정상이 되어 찾아온 쿠싱병(Cushing Syndrome)때문에 몸 여러 군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멀쩡하던 몸에 고혈압이 왔고, 갱년기를 한참 지난 여인들보다 심하게 뼛속 칼슘이 빠져 나와 멀쩡하게 걷다가 무엇에 걸린 것도 아닌데 힘없이 넘어져서 얼굴을 갈고 팔꿈치를 깨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지나면 망가진 호르몬 작용으로 야기된 우울증 때문에 삶까지도 망가질 수도 있다고 주치의가 염려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가족들과 신앙생활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상가에 투자했던 것이 문제가 발생하여 매달 수백만 원의 원리금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아내와의 갈등도 커졌고 끝날 줄 모르는 법적 소송으로 소중한 시간과 돈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음식과 생활을 잘 다스려서 호르몬 불균형을 치료해보겠다고 주치의의 수술 권유를 물리치고 2년 이상을 고집도 부려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골다공증이 심해져 급기야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상황에 이를 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세브란스 병원에서 뇌하수체 수술을 하였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둘째 아들은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에 선천성 진주종 중이염으로 인공고막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끝날 줄 모르는 고통의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치 엘리야가 머물던 광야처럼 숨쉬는 것들과의 소통도, 생명을 지닌 미물들의 온기도 모두 떠나가 버렸습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 앞에서 앞으로 몇 년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아 백성들의 삶이 힘들게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왕을 분노하게 만들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된 상황에서 현재 있는 곳을 떠나 요르단 강 동쪽 어딘가에 혼자 숨어 지냈을 때, 광야와 같은 곳에서 홀로, 숨어서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로 지낼 때 이처럼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엘리야의 오늘을 만들었던 그 모든 것이 그에게서 완전히 떠나버린 것처럼, 이전에 나를 만들었고 나의 즐거움이며 행복이었던 모든 것들이 나를 영원히 떠나버린 것인가요.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나를 남기고 모든 것이 떠났을 때, 삶은 시들어 버렸고 모든 원의(原意)는 사라져 삭막해졌고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해보려는 마음까지도 추운 겨울날 가늘게 떨고 있는 나뭇가지처럼 말라 비틀어져 버렸습니다. 내 속의 내장 구석구석까지 마치 몇 년 동안의 가뭄 뒤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단 하나의 생명의 싹이 자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에게 “가거라, 그리고 숨어 지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도 들을 수 없었기에 새벽이 올 줄 모르는 깊은 어둠 속에서 썩은 냄새 나는 몸으로 끊어지지 않는 숨 줄기만 홀로 잡고 그저 있었을 뿐입니다. 눈물샘도 물기 없이 말라버려 백 년 동안의 가뭄으로 갈라진 호수 바닥처럼 변했습니다. 누구에게 내가 살아 있노라고 말할 의지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광야에서 홀로 엘리야는 그냥 있었습니다. 기대도, 소망도, 질문도 없습니다. 뭔가를 해야하는 의무도 없습니다. 그냥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있는 것을 불안해하며 어떠한 역할이나, 임무, 기능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크릿 시내에서도 엘리야는 존재하는 것 외에 달리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엘리야 예언자의 인생 여정에 놓인 첫 번 째 거처였던 것입니다. 영원토록 이어질 것만 같았던 어둔 밤 속에서 나도 엘리야처럼 그렇게 홀로 있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 시간이 내겐 ‘바닥’으로 내려가고 뒤로 물러나고 모든 걸 ‘밖에 남겨두는’ 시간이었나 봅니다.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습니다.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내라. 물은 그 시내에서 마셔라. 그리고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1열왕 17,2~4)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하느님에 의해 ‘고립’되었습니다. 아브람처럼 엘리야에게도 하느님으로부터 ‘출발’이 선포됩니다. 하느님이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느님이 보여주실 땅을 향해 가라고 하셨던 것처럼 엘리야도 하느님에 의해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엘리야에게 ‘어둔 밤’의 시작이기도 하였습니다.
나의 ‘어둔 밤’은 엘리야 선지와는 달리 하느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 듯 보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느님으로부터 인도된 고독뿐이었던 크릿 시내에서 까마귀로부터 먹을 것을 공급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를 돌보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도움 앞에서 엘리야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있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심지어 남편을 잃고, 자신과 아들이 먹을 음식도 하나 없는 과부에게 의지하여 살도록 엘리야는 보내어집니다. 사렙타 마을의 과부에게는 당장 먹을 구운 빵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밀가루 한 줌과 병 밑바닥에 아주 조금 남아있는 기름 몇 방울 뿐이어서 땔감을 주어다가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고 아들과 함께 죽으려는 마음 뿐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가난한 과부에게 엘리야를 보내며 그가 엘리야를 돌보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스스로 하루를 넘기기 힘든 과부가 엘리야의 삶을 책임지게 하시다니 몽매한 인간 편에서는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엘리야에게 ‘어둔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도 ‘어둔 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새벽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사라진 지도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유다의 브에르 세바에서 시종을 남겨두고 하룻길을 더 걸어 광야에 이르러 싸리나무 아래에서 죽음을 청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떠들썩한 일과 열정으로 살았지만 자기 자신을 잃었습니다. 많은 힘을 쏟아 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자신을 내주었지만 성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싸리나무 아래로 들어간 엘리야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지치고, 마지막에 와 있고, 어둠 속으로 파고들고, 침대 속으로 기어들고, 아무것도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 그런 모습…
어둠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나의 영혼도 엘리야처럼 싸리나무 아래에서 깨어나지 않을 깊은 잠 속으로 빠지고 싶은 유혹도 있었습니다. 기도보다는 하느님에 대한 원망으로 지내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살아보고자 하는 몸부림을 쳐야겠다는 절박함도 사라진 듯 그냥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방법이었나 봅니다. 지난 날 자신감으로 살아왔던 나를 내려놓고 땅 바닥보다 깊은 수렁으로 나를 낮출 수 밖에 없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깨져야 하는 밤이었습니다. 더 많이 깨어지고 깨끗이 씻겨야 하는 투쟁의 날들이었습니다.
싸리나무 아래서 잠든 엘리야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그를 흔들면서 말합니다. “일어나 먹어라.” 엘리야가 깨어보니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머리맡에 놓여있습니다. 그야말로 하느님께서 “나는 너를 다시 삶으로 돌아가게 할 힘이다. 너에게 새로운 미래를 선사할 힘이다. 너와 함께 가는 힘이다. 나는 네 옆에 있다. 나의 손길을 받아라. 나는 너의 천사이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의 목소리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기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밤의 깊은 어두움의 끝은 어느 날 문득 찾아왔습니다. 작년 10월 말, 평생 기도와 믿음의 삶을 사셨던 장인께서 아흔 세 해를 끝으로 하느님께 돌아가셨습니다. 건강과 경제 문제로 불효한 것에 대한 회한으로 사흘 동안 빈소를 지키며 기도와 눈물로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6년 동안 지속되어오던 고통이 내 몸에서 일순간에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을 느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구운 빵과 물 한 병을 머리맡에 갖다 놓고 엘리야를 깨우던 날처럼 깊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하느님의 빛이 나를 강렬하게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온 하느님의 새벽은 도둑처럼 그렇게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년 동안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인 손실을 안겼던 투자 건은 법적인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 2월부터 정상적인 임대료가 통장에 입금되기 시작했습니다. 통장에 첫 달 임대료가 입금되자마자 기쁜 마음으로 성당 사무실로 찾아가 몇 년 동안 중단했던 교무금을 책정하고 1,2월 두 달치 교무금을 납입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의 인공고막 수술 이후, 수년 동안 해오던 정기 검진을 위해 지난 2월 24일 서울대 병원을 찾았을 때 주치의로부터 인공고막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서 청력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더 이상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알렐루야!
그리고 3월 26일 뇌하수체 수술 후 정기검진에서 주치의 선생님은 그 동안 약으로 다스려왔던 부신피질 호르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완치가 어려운 병이라서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분류된 쿠싱병이 기적처럼 깨끗하게 치료된 것에 놀라시는 주치의 선생님의 눈빛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며칠 전 누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동생들이 보고 싶네. 3월 28일 토요일 우리 집에서 저녁식사 함께 할까?” 내가 물었습니다. “누구누구 연락했나요?” 누님이 대답했습니다. “동생들에게 모두 다 연락했지.” 수년 전부터 서로의 오해로 인하여 불편하게 지내왔던 5남매의 화해를 알리는 즐거운 신호가 부활을 앞두고 힘차게 울린 것입니다.
닫혀있던 보가 터지고 가두어둔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어둔 밤의 끝을 여는 새벽이 열리는 순간 온몸을 비쳐오는 주님의 은총의 빛으로 눈이 부실 지경이 되었습니다. 긴긴 어둔 밤의 끝에서 벅찬 가슴으로 새벽을 맞이하며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희망의 삶으로 변해갈 미래를 기대하며, 변함없이 곁에 계시며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고난을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주, 나의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찬미합니다.
알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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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최진영(제오르지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4.13 감사합니다. 여러 형제 자매님들의 기도의 힘으로 지낸 것 같습니다. 진정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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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홍보분과 작성시간 15.04.13 형제님의 엘리아의 40일 묵상글을 보며 많은 어려움속에서 하느님을 믿으며 생활하심이 보입니다
형제님의 기도가 응답 되었음을 봅니다 ,
주일 미사때 가족이 함께 미사에 참례 하는모습도 아주 좋아보입니다 ^^* -
답댓글 작성자최진영(제오르지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4.13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나누어 주시는 위로가 큰 힘이 되고 교회 안에서 주시는 주님의 은총의 크고 위대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늘 관심을 갖고 기억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와 사랑을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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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먼지 작성시간 15.04.14 형제님의 글을 읽으니 주님의 함께 하심에 저도 모를 눈물이 납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형제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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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최진영(제오르지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4.14 고맙습니다. 한끼 식량도 없어서 죽음을 기다리는 과부가 엘리야까지 돌볼 수 있게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재매님과 가정에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