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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문학에 대하여

작성자사랑 감사 기쁨|작성시간20.10.20|조회수510 목록 댓글 0
묵시문학에 대하여

서 론

묵시문학이란 종말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서술하는 문학양식의 하나이다. 예언자들의 시대가 끝난 뒤, 예언자들의 전승을 이어받은 새로운 문학양식이 바로 유다 묵시문학이다. 유다 묵시문학은 구체적인 박해의 상태에서 고통받고 있는 당대의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신앙을 북돋아 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정경으로 인정된 다니엘서가 바로 가장 오래된 유다 묵시문학의 한 예이다. 여기서 다니엘서의 저자 역시 기원전 2세기에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극심한 종교박해로 인해 신앙이 흔들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하는 현실을 기초로 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즉 하느님의 충실하심, 그리고 그분께서 앞으로 이루실 구원업적을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에 투영하는 양식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요한의 묵시록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 역시 기원후 1세기 말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잔인한 박해 시기에 갓 탄생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앙을 격려하고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기 위해 쓰여진 교회의 서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요한 묵시록은 유다 묵시문학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지만, 이를 그의 가장 핵심적인 잣대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 비추어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약의 요한 묵시록의 독특성을 볼 수 있다.
결국 묵시문학이라는 것이 구체적인 시대의 산물이요, 구체적인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유다 묵시문학 중에서 정경으로 인정된 구약의 다니엘서와 신약성경의 요한 묵시록의 역사적 배경과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본 론


1. 묵시문학 개요


1) 이스라엘의 시간관과 역사관
유다 묵시문학의 태동과 성격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유다인의 역사의식, 즉 구약성경의 역사관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지중해 문화권 내에서 두 문화가 역사관을 확립했는데, 그 주인공인 이스라엘과 그리스의 역사관은 판이하다.
그리스의 시간관, 역사관은 회전적 의미로 이해된다. 즉 年이라든가 世紀라는 것은 동일한 사건들을 끊임없이 재생시키면서 회전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이란 전혀 생겨날 수가 없다.
그러나 반대로 이스라엘의 시간관과 역사관은 직선적으로 이해된다. 즉 시간과 역사는 점진적이고 목적을 향해 그리고 최종지점을 향해 항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역사는 하느님이 설정한 시발점 즉 천지창조로부터 시작하고, 이렇게 시작된 역사는 하느님이 정한 계획에 따라 진행된다. 그리고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는 곧 세상의 주인이고 심판관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서술의 내용과 중점은 세상과 인간들에 대한 하느님의 역사이다.


2) 예언서와 묵시문학의 태동
예언자는 이러한 역사 안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개입한다. 예언자는 역사 안에서 役事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인간들에게 계시하면서, 동시대인들로 하여금 현재 속에서 인생을 풍요롭고 충만하게 이끌어갈 사명을 띠고 있다. 그래서 묵시문학에서는 주로 역사의 종말의 진행 과정, 종말의 시기 계산, 후세 등의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예언자가 선포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무엇보다 먼저 현재 상황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예언자가 제시하는 종말과 미래는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한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특히 시련과 고통의 상황에서 백성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계획과 그분의 계획이 완성될 마지막 때를 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신앙인들을 위해 마지막 때(종말)를 덮어 가리고 있는 베일을 벗겨주시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 때 예언은 묵시 또는 계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묵시문학은 구약의 예언문학에서 출발한 성경의 매우 독특한 전통에서 연유한다. 예언자들의 신탁에 대한 일종의 재해석(re-interpretatio)으로 규정할 수 있다. 또 묵시문학은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성경과 성경주변 문학에서 나타나고 있으며(다니 7-12장 참조), 그 문학의 선구자들로는 에제키엘, 요엘, 즈가리야와 이사야 24-27장의 저자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묵시문학은 다니엘서가 시초이다.
그런데 여기서 종말론(Exchatologie)과 묵시론(Apokalypse)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종말론은 세상은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것을 단순히 단정하는 것이고, 묵시론은 이렇게 끝나는 세상이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끝나는지를 서술하는 것이다.
또한 유다 묵시문학은 정치적인 관점 혹은 인간 역사의 관점에서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처절한 민족의 역사, 즉 억압받는 한 민족의 소산물이다. 그들의 투쟁은 현세적 차원에서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의 싸움을 말한다. 따라서 그들의 신앙은 과장되어 기록되었고, 책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들이 꼭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에 차서 역설하고 있다. 이 약속이란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셔서 모든 이민족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백성으로 세우신다는 것이다.

3) 유다 묵시문학의 특징 및 유형
이같은 유다 묵시문학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유다 묵시문학은 예언자들이 선포한 메시지들을 현실이라는 새로운 각도에서 재투영함으로써 그 메시지들이 지니고 있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묵시문학은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종교사상의 하나이다.
(2) 묵시문학이 중요 내용으로 삼는 역사는 이스라엘과 그 인접 민족들간의 역사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세계사를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묵시문학은 곧 멸망할 세계와 하늘로부터 내려올 세계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선과 악의 투쟁 등 많은 이원론적 사고가 있는데, 대개 이 사고가 페르시아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그밖에 당시 널리 전파되어 있던 고대 바빌론(앗시리아)의 천체숭배사상, 특히 ‘일곱 별들’이 크게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
(3) 묵시문학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악마의 지배하에 있는 현세에 곧 가공할 마지막 순간이 도래하며 그 징조가 미리 나타나게 된다. 메시아적 재앙이라 불리우는 이 징조들은 임박한 종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았다. 재앙이 극에 달하고 시간이 그 마지막에 이르면 하느님의 개입이 시작되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예정하신 일들을 다음과 같이 이 차례로 이루실 것으로 보았다.
a. 죽은 모든 사람들이 무덤으로부터 부활하여 하느님과 메시아가 좌정하고 있는 심판대 앞으로 나아가 대령해야 한다.
b. 그때에 그들의 행위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 낭독된다.
c. 이 심판으로 영원한 구원 혹은 영원한 단죄가 선언되며 이것은 영원히 번복될 수 없는 선고이다.
d. 이 심판이 끝나면 하느님께서는 구세계 대신 신세계를 시작하시어 착한 이들을 그곳에 살게 하시며 하느님 자신도 그들과 그곳에서 영원히 사실 것이다.
(4) 이러한 역사의 경과를 묵시문학의 저자들은 비밀리에 주어진 계시, 즉 꿈같은 탈혼상태나 환시 속에서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봄으로써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묵시문학 저자들은 이 계시를 표상과 비유를 통해 글로 표현하였다. 또 일반적으로 문헌 속에서 자신을 감추고 선대의 위대한 위인들의 이름을 빌어 그들의 입을 통해 역사의 결과를 예언케 하였다.
(5) 이렇게 묵시를 받게 된 구약의 위인들은 그들의 기록을 봉인하여 두었다가 기록된 재앙들이 실제로 일어나게 될 때 비로소 그 봉인을 떼어 읽도록 보관해 두었다. 그러므로 이제 묵시문학서에 기록된 내용을 사람들에게 공개하여 박해시기에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려는 것이다. 비록 묵시문학의 표현 방법이 기이하기는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유대인들의 신앙을 표현한 것이며 동시에 그들에게 희망을 불러 일으켜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묵시문학적 요소는 이미 구약성경 말기에 단편적으로나마 발견되고 있다. 예를들면 즈가리야서와 이사야 24-27장, 그리고 가장 오래된 것으로 다니엘 7-12장이 있다. 이밖에 많은 묵시문학서들이 저술되었는데, 이것들은 구약성경 정경 밖의 외경으로 현존하고 있다. 그것들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디오피아語의 에녹서 : 제1에녹서(the Ethiopic Book of Henoch)
이 책은 ‘에녹의 묵시록’(the Apocalypse of Henoch), 또는 ‘제1에녹서’(The First Henoch)라고도 불린다. 초대교회 교부들도 이 책을 알고 있었으며, 외경 중 가장 중요한 문서의 하나이다. 이 책의 특징인 메시아 사상은 신약성경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메시아는 ‘선택된 자’, ‘사람의 아들’이라 불리고 그 先在性, 우주적 지배, 메시아에 의한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의 도래 등이 설명되고 있다. 이 책은 기원전 164년 이후에 씌어졌다고 추정된다.
(2) 요벨의 책(The Book of Jubilees)
소창세기로 불리어 온 이 책은 창세기 1 - 탈출기 12장까지의 유다교적 해설로 유다교의 역사관에 입각해서 구세사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거역하고 안식일, 축일, 새해, 요벨의 해 등을 거룩히 지내지 않았고, 할례나 이방인들과 야합하지 말라는 규정을 무시해 왔지만, 결국은 참회하여 하느님께 귀의하고 하느님도 그들의 마음속에 할례를 베풀어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메시아 시대가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3) 12 족장의 유언(the Testaments of the Twelve Patriarchs)
이 책은 야곱의 아들인 12족장의 유언을 모은 것으로 창세기 49,1-27의 야곱의 유언과 비슷한 형식으로 엮어져 있다. 또한 신명 33장의 모세의 축복과도 유사한 데가 있다. 여기서는 요셉을 이상적인 인물로, 지도적인 인격자로 보고 요셉의 유언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대략 기원전 2세기경의 작품으로 본다.
(4) 솔로몬의 성영(The Psalms of Solomon)
외경 가운데 유일한 시편이며 바리사이적 입장에서 쓴 18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메시아관은 주목할 만하고, 정경 제2이사야에 묘사된 것과 비슷하게 온 세상에 구원을 가져올 메시아에 관해 말하고 있다. 기원전 48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5) 모세의 승천기(The Assumption of Moses)
이 책은 모세의 승천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모세의 유언을 주로 담고 있다. 그러나 책 끝이 갑자기 끊어진 점으로 보아 본래 원문에는 모세의 승천에 얽힌 이야기와 대천사 미카엘과 악마가 모세의 시체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운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고 본다. 이 책은 기원후 6-30년경의 작품으로 저자는 바리사이파 사람으로 추측된다.
(6) 이사야의 순교와 승천기(The Martyrdom and Ascension of Isaiah)
이 책은 ‘이사야의 순교’(1,1-2a. 6b-13a; 2,1-3,12; 5,1b-14), ‘이사야의 환시’(3,13b-4,18), ‘이사야의 승천’(6,1-11,4) 등 세 책의 합본이다. 이 중 ‘이사야의 환시’와 ‘이사야의 승천’은 그리스도교가 엮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7) 시빌의 신탁(The Sibylline Oracles)
Sybyl이란 무당이란 뜻으로, 이교의 여예언자를 말한다. 이 책에서 주목할만한 내용은 ‘예루살렘 멸망, 79년 폼페이시가 묻힌 베주비오 화산의 분화, 네로 황제, 티투스 황제, 하드리아노 황제 등에 관한 언급’과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열망하는 종교적 역사관’이 피력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시빌의 신탁은 셋째권(기원전 150년 이후), 넷째권(기원후 80년), 다섯째권(기원후 2세기) 등이 있다.
(8) 슬라브語의 에녹서 : 제2에녹서(The Slavonic Book of Henoch)
슬라브어 사본으로 남아 있는 이 책은 ‘에녹의 秘書’, ‘제2에녹서’라고도 불리운다. 내용은 이디오피아어의 에녹서와 비슷하다. 이 책은 초대교회에서 널리 인용한 흔적이 있고, 대략 기원후 30년 이후에 씌여진 것으로 본다.
(9) 에즈라 2서(The Second Book of Esdras)
이 책은 에즈라 1서의 속편이 아니고 기원후 1세기 말경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세 중(81-96), 즉 요한의 묵시록이 엮어진 시대에 나온 묵시문학 작품이므로 시대적으로 신약에 가까운 것이지만, 유다교의 입장에서 에즈라의 이름을 빌어 씌여졌기 때문에 구약 외경의 한 권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있고, 1부(1-2장)와 3부(15-16)는 그리스도교인 편집자가 가필한 것으로 보이고, 2부(3-14장)는 일곱 가지 환상에 관해 말하고 있다.
(10) 시리아어의 바룩 묵시록(The Syriac Apocalypse of Baruch)
에즈라 2서와 같은 시대에 쓰여진 묵시록으로 정경 중에 바룩서가 있기 때문에 ‘제2바룩서’라고 부른다. 이 책은 7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내용은 기원후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후 고난과 절망 속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메시아 시대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리고 용기를 북돋우려 했다. 기원후 9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1) 그리스어의 바룩 묵시록(The Greek Apocalypse of Baruch)
제3바룩서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바룩의 천상계 여행을 이야기하는데, 제1천에서 제5천까지 여행한 대목에서 중단되고 있다. 내용은 유다교의 입장에서 씌어진 것이지만, 최후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피인 포도주에 관해 언급한 점으로 미루어, 그리스도교 측에서 손질한 흔적도 볼 수 있다. 기원후 2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2. 다니엘서에 대하여

1) 문학적 유형
다니엘서는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인 1-6장에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후반부인 7-12장에는 다니엘이 보았고 천사가 해석한 일련의 환상들이 담겨있다.
고대에 다니엘서의 가치는 다양하게 평가되었다. 팔레스티나의 히브리어 경전은 다니엘서를 성문서에 포함시켜 에스델서와 에즈라서 사이에 배치시키고 있으나, 70인역이나 그밖의 그리스어 번역본들은 이를 후기 예언서로 취급하여 에제키엘서 다음에 배열하고 있다. 여기서 다니엘서를 예언서로 볼 것이냐? 아니면 구약의 새로운 문학양식인 묵시문학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발생된다.
마태오 24,15에서 다니엘은 그리스도 시대에나 있게 될 사실들에 관해 예언하는 예언자로 소개한다. 요세푸스 역시 다니엘이 미래의 사건에 관해 예언했을 뿐 아니라, 그 성취 시기까지도 말했다는 의미에서 다른 예언자들을 휠씬 능가한다고 주장했다.
다니엘서를 양식비평적 방법에 의해 분류할 때 대개 일반적 묵시문학의 한 예로 보고, 에녹서, 12 족장의 유언, 바룩서 등과 같은 책들의 범주에 넣는다. 그러나 웰취(A.C. Welch)는 이 책들에는 다니엘서에 전혀 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다니엘서를 다니엘의 선배들에 관점으로부터 해석하는 것이 그의 후계자들의 관점으로부터 해석하는 것보다 더 현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니엘서와 이스라엘의 위대한 예언자들의 차이점은 사실 예언적 가르침이 후기에 맞도록 발전 변화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벤첸(A. Bentzen)이란 학자는 다니엘서를 예언적 묵시문학 전승에 한정시키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다니엘서의 저자를 일반 유다교 주류의 범주에 넣으려고 노력한 히톤(E.W. Heaton)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에 의하면 다니엘서의 저자는 집회서의 저자인 예수스 벤시라와 비교되고 대조되는 사람이며, 집회서 39,1-5이 다니엘서의 이야기로 발전된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다니엘서를 지혜문학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길은 다니엘서 자체가 이미 고유한 독특성을 갖고 있는 문학작품임을 인정하고, 이것이 빌어와 단장한 것들, 즉 초기 예언문학, 지혜문학, 시편 등의 다양한 원천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다니엘서를 계승한 후기 묵시문학서들의 특징들도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예언서와 묵시문학의 연관성 그리고 묵시문학의 태동을 볼 때 다니엘서는 예언서의 전통을 이어받은 새로운 문학양식, 즉 묵시문학의 유형에 포함되는 가장 오래된 책으로 볼 수 있다.

2) 역사적 배경
다니엘서는 여러가지 역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가 지난 4세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기억이 흐려지고 왜곡되었을 때 대중들의 관점에 따라 이 글을 썼기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정확한 역사를 기술하려는 것이 아니고 전쟁중인 동료 유다인들에게 종교적인 메시지를 선포하려는 것이었다. 즉 가장 혹독한 시련 중에도 야훼께 충실할 때 하느님에 의해 보상받고 구원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러한 내용을 기술하게 만든 역사적 상황을 우선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앞서 세계사적 사건 중 가장 결정적인 사건 중의 하나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활동이 유다사상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은 사실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아마 그 이유는 이 사건을 해석할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유다교와 헬레니즘의 충돌이 문제화된 것은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기원전 175-163)의 통치부터이다. 셀레우코스 4세의 동생인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마녜시아(Magnesia) 전투 이후 볼모로 로마에 끌려가서 헬레니즘에 매료되어 돌아온 사람이다. 프톨레마이오스 5세로부터 취해진 에피파네스란 별명에서 볼 수 있듯, 그는 현현한 형태의 신을 자처했던 사람으로, 셀레우코스 왕조의 전통을 강조함으로써 그 자신을 올림피아의 제우스로 숭배하게 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로 인해 유다인이 고통을 겪게 된 것은 정치적으로 그의 이집트 원정에 기인한다. 안티오코스 4세는 에집트 원정으로 많은 돈을 소비했고, 또 유다가 중요한 병참지역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권을 위해 유다의 희생을 강요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한 박해를 떠나 에피파네스가 문화적, 종교적 강제 수단을 동원한데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전승되어 온 민족제의가 새로운 국가제의로 그리고 레위적인 질서가 헬레니즘적인 삶의 양식으로 대치되면서 안티오코스 3세에 의해 보장된 종교자유가 제거되었다. 결국 기원전 167년 율법을 지키는 유다인들을 억압하고 헬레니즘적인 의식을 도입하도록 했다(1마카 1,44-53; 2마카 6,1-9).
이 정책의 추진자는 아테네 출신의 원로였다(2마카 6,1). 이 국가제의에 의하면 예루살렘의 번제제단 위에 올림피아 제우스 신의 제단이 세워졌고, 매달 25일에는 그곳에서 희생제사가 거행되었다. 그런데 25일은 에피파네스의 생일로 경축되었기 때문에 이 제물은 그에게 바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에게도 국가제의에 참여하도록 강요되었다(2마카 6,8).
이러한 국가제의 정책의 본래의 목적은 이 전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치하에 있었던 팔레스티나에 대한 통치권을 안티오코스와 그의 신들이 장악하게 되었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려는 것이었다.
이미 기원전 5세기부터 외래 문명에 대한 유다인의 바른자세를 놓고 유다인들이 분열하게 되었지만, 결국 안티오코스 4세에 와서는 생과 사의 문제로 부각되었다. 그래서 율법에 충실한 열심한 이들(하시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안티오코스 4세는 악독한 박해를 서슴지 않았다. 마카베오기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했고, 이 순교의 실상이 다니엘서의 저자로 하여금 침묵을 깨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계획을 선포하게 만들었다.

3) 저자 문제
유다 묵시문학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가명성으로 다니엘서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다니엘이라는 이름이 권위를 이 책에 부여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다니엘이 포로시대에 바빌론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 책의 증언 외에는 그에 대해 알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다니엘서를 저술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헬레니즘의 생활양식과 유다인들에게 강요된 폭정에 대해 심한 반발을 느낀 하시딤 가운데 한 명이라고 본다. 그리고 에제키엘서에 의하면 다니엘은 전통적으로 신심깊은 이스라엘 사람이고(14,14.20; 28,3) 라스 샤므라 문학에서는 전설적인 영웅이다.
이 저자의 목적은 셀레우코스의 공격적이고 위압적인 정책으로 소멸될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신앙에 다시 불을 붙이고 박해에 직면해서라도 양보를 모르는 충실성으로 유다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저자 문제에 있어서 로울리(H.H. Rowley)의 견해는 매우 괄목할 만하다. 그에 의하면 본래 마카베오 시대에 한 익명의 저자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박해로 고통받던 사람들을 위해 2-6장의 이야기를 아람어로 썼고, 그 이후에 역시 아람어로 된 7장이 첨가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 저자가 성격상 다르나 마찬가지 위기적 상황과 관련되어 종말론적 환상을 쓰게 되었는데, 이 때 그는 이것을 성스러운 언어인 히브리어로 썼다. 그리고 그는 이 두 부분이 동일한 저자의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이 이야기들 안에 나오는 다니엘이 쓴 것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이 책이 익명인 것은 이 책의 단일성을 나타내기 위한 한 표시이지 독자를 속이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적 방법에 있어서 다니엘서의 익명의 저자는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것처럼 쓰는 방식, 즉 당시의 지각있는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사후 예언’의 방식을 택한다. 그리하여 현재를 바빌론 시대에 에언하는 형식으로 말한다.

4) 저술 연대
편집 연대 문제는 저자 문제와 긴밀히 연결된다. 다니엘서의 저자를 전통적인 견해, 즉 다니엘이 그의 생전에 아니면 죽은 직후에 최종적 형태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가 겪은 역사적 경험들과 환상들은 모두 진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때 다니엘서의 저술시기는 바빌론 유배 시대까지 거슬러 갈 수 있다. 그러나 저자 문제에서 살펴 보았듯이 다니엘서의 저자는 안티오쿠스 4세 때의 하시딤의 일원임에 분명하기에 실제 저술 연대는 훨씬 후대인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다니엘서가 마카베오 시대에 익명의 저자에 의해 저술되었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저술 연대에 대한 비평적 견해는 그리스도교의 주도적인 교리에 특별히 반대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이며 기원후 3세기의 사람인 포르피리우스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다니엘서를 안티오쿠스 4세 시대에 저술된 것으로 보고, 다니엘서의 저자는 곤경에 처한 동시대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다니엘서의 본문 내용을 통해 구체적인 저술 연대를 규명해 볼 수 있다. 우선 기원전 190년경의 작품인 집회서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사이에 다니엘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집회 48,22; 49,7-8.10) 다니엘서는 그 이전에 저술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한편 저자는 기원전 167년 12월 7일에 있었던 성전 침해사건(11,3)과 열심한 유다인들의 죽음(11,34)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가 유다인을 박해하던 왕의 죽음(164년 가을)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는 반면 성전 정화사업(164년 12월 14일)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니엘서는 기원전 164년에 완성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래서 대개의 학자들은 다니엘서가 대략 기원전 165/164년경에 저술된 것으로 본다.

5) 신학적 중심사상
다니엘서의 신학적 중심사상은 유다 묵시문학의 중심사상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대략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신앙과 종교생활에 있어서 다니엘서는 옛전승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당시의 문제점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는 안티오코스 4세의 헬레니즘화와 유다 종교박해로 인해 이교의 다신사상이 밀려들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유일신 사상을 통해 죽음도 불사하는 신앙의 위대함이 높이 찬양되고 있다(3,5; 14,29). 그러면서 경건한 유다인들, 하시딤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룬 예외적인 성과를 강조하고 있고, 이들을 타락한 사회의 구원자로 제시한다. 더 나아가 이방인 왕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고백토록 한다. 이러한 경향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율법을 준수케 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느님에게로 이끌어들이면서 계약의 백성안에 합류시키려는 보편적 구원사상의 기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둘째, 역사를 통해 하느님은 당신의 신비스런 계획을 실현하신다는 사상이다. 이는 성경의 역사관을 반영한 것이자 이스라엘의 고유한 시간관에 기인한다. 인간의 역사는 그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죄의 신비이며, 하느님과 천사들로 구성된 친화세력과 이방제국들로 구성된 적대세력이 대립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역사는 최후심판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그리고 각 시대의 길이는 하느님의 명령에 의해 결정된 예정 시간표를 따라 간다고 본다.
셋째, 하느님을 거스르는 이방인들 뿐만 아니라 유다인들에게까지 미치는 하느님의 징벌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희망을 말한다. 그 희망이란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모든 민족 위에 뽑아 세우실 것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다니엘서의 저자는 이러한 하느님의 숭고한 부르심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응답과 자세를 강조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을 단련시킬 시련을 우선 감수해야 하며(11,35; 12,10), 바로 이런 의미에서 현재 겪고 있는 박해는 ‘장차 올 나라’를 앞당기는 중대한 기회로 본다(7; 12,1-4).
그리고 그 나라가 오면 ‘이 책에 기록된’(12,1) 남은 자들만이 그 나라의 기쁨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니엘서는 구약성서에서는 처음으로 개별적인 부활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한다(12,2-3). 이는 율법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든 보상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의 표현이다. 이로써 다니엘서는 예언자들의 신학과 신약의 메시지를 일치시키는 업적을 이루어 낸 중대한 작품으로 인정된다.
결국 다니엘서는 하느님이 그의 왕국을 가져오게 될 최후의 행동을 증거한다는 의미에서 그 이전의 구원사와 연결될뿐 아니라 하느님이 자신의 위대한 행동에 대해 믿음과 실천으로 응답하도록 창조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게 한다는 사실은 신학적으로 중요하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그들이 아무리 단편적인 특징만을 보여주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 자신이 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다.

3. 요한 묵시록에 대하여

1) 유다 묵시문학과의 비교
요한 묵시록은 신약의 묵시문학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유다 묵시문학과의 연속성 및 단절성을 지니고 있다. 즉 유다 묵시문학서들이 예언자들의 짤막한 말 대신에 여러 종류의 표상들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게 요한 묵시록 역시 계시와 환시가 여러 모양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유다 묵시문학의 저자들이 꿈과 계시를 통해 세계 역사의 종말까지 바라본 것처럼 묵시자 요한은 황홀경 속에서(1,10; 4,1) 탈혼상태에서(17,1이하; 21,9이하)에서 계시를 받았다.
그러나 묵시자 요한은 자기가 체험한 꿈이나 묵시만을 단순하게 전하지 않고, 그가 전승에서 전해받은 자료와 소재를 이용하여, 그것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거양되셨으며 또 재림하실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과 연결시킨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교적인 것으로 승화시켰다.  요한이 이렇게 새로운 의미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언의 특은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예언자적 전권을 갖고 교회에 대하여 말씀의 봉사자로서 인정받던 인물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유다 묵시문학과 다른 구체적인 차이점들을 본다면 유다 묵시문학은 일반적으로 가명을 사용하여 저자 자신의 이름을 감춘다. 즉 선대의 위인들의 권위를 빌어 말하고 저자 자신은 그 뒷자리에 자리한다. 그러나 요한은 그렇지 않다. 그는 묵시록 첫머리부터 자신의 이름을 서슴없이 밝히고 동시에 즉시 교회에 직접 제시한다(1,11; 2-3장 참조). 따라서 요한의 묵시 내용은 유다 묵시문학에서처럼 봉인되어 있을 필요도 없이(22,10 참조), 곧 예언적 말씀으로서 교회에 넘겨진다.
그리고 요한은 신비스런 표상들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설명하지 않고 종말의 사건들만을 제시한다. 이 종말의 사건들이란 ‘그리스도의 재림’, ‘심판’ 그리고 ‘새로운 하늘고 새로운 땅의 창조’까지를 포함한다(4-22장 참조). 그런데 이 마지막에 있을 사건들의 순서는 하느님의 계획 속에서 이미 확정된 것이므로 요한에게 있어서 구약성경의 언어만이 적합한 표현방식일 수 있었다.
결국 신약의 요한 묵시록의 저자 역시 구약(유다) 묵시문학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으며, 마지막 때에 대한 초대교회의 신학적 확신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그래서 요한은 묵시문학의 주제인 ‘주님의 날’을 이중적으로 수식한다. 이날은 그리스도의 부활사건과 그분의 최상주권을 지적한다. 보편적이고 찬란한 현시의 날(Parousia), 곧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날을 지적하고 있다. 이 두 날의 긴장감 속에서 교회의 때가 전개된다. 그러므로 요한 묵시록은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종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교회의 서적이다.

2)역사적 배경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저술된 묵시록은 순교자들에 대한 격려처럼 표출되고 있다. 즉 묵시록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박해와 곤경 중에 있을 때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쓰여졌다. 당시 교회를 절멸시킬 위험으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의 박해를 들 수 있다.
최초로 교회에 혹심한 박해를 가한 로마 제국의 황제는 단연 네로이다. 그는 64년 로마 대화재 때 민중봉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화재의 책임을 로마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뒤집어씌워 교회 박해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를 능가하는 대규모의 박해가 도미티아누스 황제 통치(81-96) 말년에 자행되었다. 도미티아누스의 박해는 로마시에만 한정되었던 네로의 박해를 휠씬 뛰어넘은 것으로 거의 정신 이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또한 그는 황제숭배를 극도로 강요하였다. 사실 로마인들은 황제가 죽은 후나 생존시에 그를 신격화하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으나,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에게 ‘주님, 신’이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그리고 신에게와 마찬가지로 황제에게 바쳐지는 의식과 경배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적법성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 이를 거부해야만 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당연 박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리스도교인은 황제숭배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기득권을 누리며 보장될 삶을 살 것이냐, 아니면 로마법을 위반하여 순교할 각오로 우상숭배를 거부할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묵시록의 저자는 당시 초대교회에서 사용되던 전례적 형식을 사용해 하느님만이 유일하신 주님이시고 그분께만 영광과 권세가 있다고 선포한다. 이러한 묵시록의 전례적 내용들은 권력의 권한과 한계를 초월해서 무제한적인 권력행사를 합법화시킨 전체주의에 대해 집요하게 항거하는 저항의 외침임과 동시에 신앙의 절규인 것이다.

3) 저자 문제
묵시록은 저자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단지 네번에 걸쳐 자신을 요한이라 부르고 있는데(1,1.4.9; 22,8-9), 이 요한이란 이름 역시 그 당시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단번에 요한복음의 저자인 제베데오의 아들 사도 요한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옛 교부들의 기록을 보면 묵시록의 저자를 ‘제베데오의 아들’이며 ‘사도인 요한’이라고 명백히 언급하고 있다. 묵시록에 언급된 요한을 사도 요한과 동일시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전승은 2세기 중엽 팔레스티나 출신인 성 유스티노의 증언이다. 그는 <Tryphone과의 대화>에서 “우리들 중의 하나요, 그리스도의 제자 중의 하나인 요한이라고 칭하는 자가 그에게 맡겨진 계시 속에서 우리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천년간 살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는 묵시록 20,4-6에 대한 암시이다. 유스티노 교부는 130-135년 사이에 에페소에 체류했는데, 에페소는 요한이 묵시를 받은 장소인 Patmos섬과 마주 보이는 육지 도시이다. 그러기에 유스티노 교부의 증언은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도 요한을 묵시록의 저자 요한과 동일 인물로 보는 서방교회의 증언은 무라또리 정전목록, 이레네오 등이며, 2세기 중엽부터 묵시록을 정전으로 취급했다. 동방교회는 서방교회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끌레멘스와 오리게네스(2-3세기)를 빼고 대부분의 교부들은 묵시록에 대해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묵시록이 정전 취급을 받게 된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의 공적에 의해서이다.
동방교회에서 묵시록을 배척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적으로 묵시록 20,2-7의 천년왕국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서 기인하는 이단들을 반대하기 위해서 그 근거로 제시되는 묵시록을 배척했다. 그리고 에우세비우스 주교는 정치적인 이유로 묵시록을 배척했다. 그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용신학자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이 건설한 대로마 제국이야말로 지상의 하느님 나라라고 보았는데, 묵시록에 의하면 하느님 나라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나라로 서술되고 있기에 정치적 측면에서 거부되었다.
그리고 오리게네스의 후임교수가 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의 견해 또한 중요하다. 에우세비우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디오니시우스는 묵시록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 아니라 열심하고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요한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서 요한복음과 묵시록을 비교 연구한 결과 두 서적의 성격, 문체, 구조가 서로 다른 것을 지적했다. 즉 디오니시우스는 요한복음의 특징적인 단어들, 예를들면 성령, 빛, 진리, 하느님의 사랑, 靈神 같은 단어들이 묵시록에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묵시록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 아닌 그 당시 교회의 원로인 다른 요한(同名異人)이라고 보았다.
이 외에도 묵시록의 저자가 사도 요한일 수 없다는 근거로는 묵시록에서 인자는 원수들을 쳐부수기 위해 다시 와야 하는,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이시고, 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통치를 이룩하는 데 반기를 들고 있는 정치적인 권력인데 비해, 요한복음이나 서간들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반대로 이미 오신 분이시다. 그리고 묵시록의 저자 스스로 사도들과 예언자들을(18,20) 구분하는 곳에서 자신을 예언자들의 범주에 넣고 있고(22,9), 어느 곳에서도 사도로서의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요한 묵시록의 저자 문제는 미해결의 문제로 확정되기보다는 개방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래서 브라운(Brown) 교수는 “묵시록은 최소한 요한과 같은 환경권에서 아니면 요한 공동체에 의해서 저술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4) 편집 장소와 연대
요한은 그의 묵시록 서두에서(1,9) Patmos섬에서 묵시를 받았다고 서술하는데, 이것이 꼭 묵시록이 Patmos 섬에서 저술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소아시아 지방의 일곱 도시 내용을 잘 아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1,11; 2,1-3,22), 저자는 소아시아 지방에 살던 사람으로 볼 수 있다.
편집 연대 문제에 대한 교회의 전승은 일치하지는 않으나 대개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세 말기에 쓰여졌다고 본다. 이레네오는 “묵시록은 도미티아누스의 통치가 끝날 무렵인 거의 우리 당대에서 멀지 않은 때에 출판되었다”고 증언하는데, 이에 따르면 편집 연대를 96년 경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요한 사도가 에페소 주교로 있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 말년에 Patmos 섬으로 유배당했다고 전해준다. 뻬따우스의 빅토리아누스(305)역시 묵시록에 대한 첫번째 라틴어 주석에서 “요한은 도미티아누스에 의해 Patmos 섬으로 추방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증언은 에페소 주교였던 유스티노의 의견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편집 장소 및 연대 측정에 있어서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 외에 묵시록 자체의 내용을 통해 보더라도 묵시록이 대략 1세기 말에 편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묵시록 13장에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자신을 하느님으로 섬기라고 강요하는데, 바다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지리적으로 서쪽에서 왔다는 것, 즉 로마에서 왔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순교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것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짐승과 짐승의 초상(스스로 신격화한 황제)을 섬기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20,4). 이러한 표현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집정 말기에 교회가 당한 수난과 박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5) 주석 원칙
신약성경 중에서 묵시록 만큼 주석에 어려움을 주는 책도 없다. 묵시록은 신비에 둘러싸인 책으로, 이 신비를 해석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런 주석원칙으로 대략 네 가지 방법론을 들 수 있다.
(1) 世末史的 註釋方法
가장 오래된 해석방법으로, 초대교회에서는 이 해석법을 따라 묵시록에 세상 종말의 역사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 해석법 중의 하나는 하느님의 나라가 결정적으로 오기 전에 그리스도가 성인들과 함께 이 지상에 천년왕국을 세우고 주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았다(20,2-6 참조). 하지만 묵시록에서의 천년이란 자의적 의미보다는 상징적으로 충분한 기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느님 및 그리스도의 주권이 지상에 즉 인간 역사에 미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 敎會史와 世界史的 註釋方法
이 해석법에 의하면 묵시록 안에 교회사와 세계사의 연대, 사건, 인물 등이 세말까지 낱낱이 예언되어 있따는 것이다. 이 설은 옛날부터 중세, 현대에게까지 계속되며, 주로 광신적인 종교인들에 의해 지지받고 있다. 그리고 자주 전혀 근거없는 공상적인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3) 時代史的 註釋方法
이 해석법은 현대 역사연구 방법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해석법에 의하면 요한은 묵시적 상징 표현을 사용해서 결국 자기 당대의 시대상을 서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론에 너무 집착할 때 묵시록 전체를 단순히 당시 시대상에만 국한시킬 위험성이 있다. 사실 묵시록이 근본적으로 의도하는 것은 한정된 시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해서 앞으로 닥쳐올 세상 종말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4) 傳承史的 註釋方法
이 해석법 역시 20세기 역사학에서 사용하는 방법론을 적용한 것이다. 이 해석법에 의하면, 묵시록에 나오는 신비스런 상징들은 요한의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가 물려받은 전승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승의 출처로는 구약성경, 유다 묵시문학, 그리스 천문학, 옛 바빌론 및 소아시아 지방의 秘敎와 神話 등으로 본다. 그러나 요한은 이러한 자료들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계속해서 부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5) 오늘날의 註釋方法
오늘날에는 묵시록을 주석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네 가지 주석원칙(방법론)의 장점들을 선택, 종합하고자 한다. 즉 묵시록에 전승요소(표상들)가 있다는 사실은 전승사적 주석방법에서 찾아야 하고, 요한이 무슨 의도로 이 표상들을 사용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또 묵시록의 저자는 당대의 실정을 고려해서 수난당하고 있는 교회를 도우려 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밝히는 것은 시대사적 주석방법의 도움을 빌어야 한다. 다음으로 요한이 근본적으로 의도한 것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셨고 또 성취하실 세말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미 세말의 시작이고, 세말은 현실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묵시록은 앞으로 일어날 역사적 일들을 시대순으로 미리 적어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악의 세력과 늘 오고 있는 하느님 나라와의 쉴 새 없는 대결을 여러 표징을 통해 서술한 것이다. 이러한 점은 세말사적 주석방법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가지 주석방법의 장점들을 통해 묵시록의 올바른 의도와 신학을 밝혀낼 수 있다.

6) 내용 및 신학 사상
묵시록은 전체 2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게 보아 세 부분과 결론으로 나뉜다.
제1부 : 1-3(극히 인간적인 교회)
제2부 : 4-21,8(당대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교회)
          4-11(민족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교회)
          12 -21(전체주의적 권력에 직면해 있는 교회)
제3부 : 21,9-22,5(하늘에서 내려온 교회)
결 론 : 22,6-21
전체적으로 묵시록의 내용을 개괄하면, 이미 서두에서 묵시록의 저자는 그리스도의 현시를 받아 이를 전할 사명을 받았다(1,19). 그래서 그는 소아시아 지방의 일곱 교회에 서간 형식으로 그 내용을 전하고 있다. 우선 고난받는 일곱 교회를 격려하고 그들을 위로한다(2,1-3,22). 이어 현실적으로 전체주의적 박해에 직면한 교회에 다가올 현세의 종말과 내세의 도래에 대해 이야기한다(4,1-22,5). 그런데 장차 닥쳐올 일은 일곱번 봉인한 밀서를 개봉하는 장면과(5,1-8,1) 일곱 나팔을 불어서 일어나는 장면(8,2-11,14), 일곱 잔을 쏟아서 일어나는 장면(15,1-16,21)에 집약되어 있다. 이어 하느님과 사탄의 세말전투에 대해 이야기하고 새로운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시현으로 끝을 맺는다.
묵시록에서 제시되는 교회는 수난과 박해 중에 있는 교회이다. 즉 신앙의 시련기에 사고 있는 공동체를 향해, 시련을 이기고 하느님께 의지할 때 하느님의 계획에 의해 교회의 구원이 실현될 것이다. 이것이 묵시록이 당대의 교회에 주는 위로이자 희망의 메시지이다.
그런데 묵시록에서 말하는 위로와 희망이 박해받는 1세기 당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박해받는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현세의 고난이 전부가 아니라, 그 위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세속적 권력이 횡횡하고 하느님께서 침묵하고 계신 것같지만 사실은 영원 속에서 하느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 즉 시간과 영원도 하느님, 그리스도께 순종한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충실성을 견지할 때 동시에 현존하는 악과의 끊임없는 영적 투쟁 속에서 하느님이 나라가 우리 안에 다가올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스라엘이나 교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곳으로, 요한 묵시록의 보편적 구세사에 대한 관점을 읽을 수 있다.
묵시록의 저자가 세말의 사건들을 현시를 통해 서술하고 있는 것은 인간 이해력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사실 세말의 사건들은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늘 다가오고 있는 신비적인 실재이다. 유한한 인간의 사고로, 제한된 인간적 표현양식인 언어로 이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묵시록의 저자는 정상적인 인간의 논리를 뛰어넘는 종말 사건을 서술하기 위해 표상과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표상과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데는 당대의 박해 상황에 따른 위험 요소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결 론

이상에서 묵시문학에 대한 개괄적 이해와 함께 유다 묵시문학의 대표적 작품인 다니엘서와 신약의 대표적 묵시문학서인 요한 묵시록을 살펴 보았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묵시록이라는 문학 유형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위치와 가치 그리고 그의 신학적 관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묵시문학을 대함에 있어서 묵시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미리 가져야만 그 참 뜻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묵시록은 구체적인 시대, 구체적인 대상을 향해 쓰여진 책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이고 영원한 시대와 그 시대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한히 개방된 실재이다.
그러므로 묵시록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그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오늘날의 상황이 다니엘서나 요한 묵시록이 나온 시대처럼 혹독한 박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저자들이 말하고자 한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순응과 그분의 뜻에 충실할 때 구원될 것이라는 사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즉 신앙의 회의를 느끼고, 자신의 편리를 위해 신앙이 짐으로 느껴지며, 종교자유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신앙인이라는 것을 증거하기를 꺼리는 현대의 상황에서 묵시록의 가치는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묵시록 안에서 우리는 생동하는 신앙,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신앙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죽기까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정점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비 속에서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불리운 모든 그리스도인은 묵시록의 교훈을 본받아 충실한 신앙과 확고한 신념을 통해 다가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동참하도록 지금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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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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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K.H. 셀클레/ 김영선 외역, 신약성서입문, 분도 출판사, 1987.
4. 박찬용 편, 요한의 묵시록 주해, 성바오로 출판사, 1988.
5. 안병철, 성서 못자리 5, 기쁜 소식, 1992.
6. E. 샤르팡티에 외/ 안병철 역, 묵시록, 가톨릭 출판사, 1991.
7. 한국 교회사 연구소 편, 한국 가톨릭대사전, 1985.
8. 기독교 대백과사전 간행위원회 편, 기독교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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