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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성경,신앙 강좌

김혜윤 수녀님 - 신명기

작성자사랑 감사 기쁨|작성시간14.09.14|조회수94 목록 댓글 0

신명기

 

오늘은 5경의 마지막 책을 배우시겠습니다. 신명기는 구약 신학계에서 그다지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구약신학의 핵심이 될 정도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유다인의 전통사상의 핵심이 신명기적 사고라는 생각이 정착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람을 이해하려면 충효를 이해해야 하듯이 유다인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전통사상 신명기적 사고를 이해해야 된다는 것이 중요해졌던 겁니다.

 

신명기의 명칭을 살펴보면 히브리말로 엘레핫 드바림 인데 ‘이것들은 말씀들이다‘ 라는 뜻입니다- 왜냐면 모세의 유언으로 되어 있어서 그렇죠. 유언이 3개로 제공이 됩니다. 단순히 유언뿐 아니라 마지막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의 사건들이 나옵니다. 70인역에서는 ’두 번째 법‘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쓰이는 데 여기서 나온 것이 신명입니다.

 

(거듭신) -거듭해서 두 번째 얘기해 준다 는 뜻이죠. 저희가 유언을 할 때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생뚱맞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거듭해서 회고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명기는 모세의 일대기가 나오는 탈출기부터의 이야기를 거듭 얘기해 주고 있다고 봅니다. 또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에 나오는 법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기 때문에 두 번째 법이라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제가 민수기 들어가기 전에 모세5경에 등장하는 법전들을 소개해드렸는데 신명기법전(신명12-26)은 가장 먼저 만들어 졌다고 추정하고 있는 계약법전의 수정,증보 확장판 이라고 말씀 드렸어요. 후대에 맞게 재해석 하는 건데요. 재해석하는 법을 겉으로는 모세의 유언이라는 형식을 통해 포장되어 저희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구조와 간추린 내용을 말씀 드리면 크게 보면 유언이 3개가 등장하는데요. 첫 번째 연설이 11절에서 443, 두 번째 연설이 444절에서 2869. 세 번째 연설은 29장에서30. 그 다음에 부록으로 31장에서 34장입니다. 이 신명기는요, 저희가 담주부터 보게 될 역사서와 연결되어있는데요.

 

신명기라는 책의 계통, 즉 신명기 스타일로 역사서를 적어서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합니다. 이것들의 특징은 마지막에 부록이 있다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기에 ‘부록은 좀 덜 중요한 건 가보다. 그래서 중요한 이야기 끝나고 그냥 나중에 첨가 된 건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살아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전권자이시며 그러므로 하느님을 놓치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성서죠.

 

성서저자들은 어떻게 하면 그 내용을 잘 전달할지 고민하여 여러 책과 문헌에서 필요한 것을 가져와서 신명기를 만들었는데, 부록에 해당하는 내용은 어디에 삽입을 해야 될지 몰라서 남아있었고, 그렇다고 이것을 빼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이라 부록으로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신명기는 여러 법전들로 되어있지만 겉으로는 모세의 연설로 포장된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신명기는 앞의 민수기와 여호수아기와 연결되어있는데요. 민수기의 마지막 부분은 모압에서 마무리되었었거든요. 근데 신명기는 모압에서 행해진 모세의 연설입니다. 모압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서로 연결이 되어있는 거구요. 그 다음에 여호수아에게 후계자계승을 하면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죽게 되는데 그러면서 여호수아기가 시작이 됩니다.

 

신명기라는 책의 특징을 좀 더 자세히 보자면 첫째, 유언이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듯이 신명기는 모세오경의 전체를 되짚어 마무리하는 결어적 기능이 있습니다. 반역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유언을 통해 많이 고발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이 모세가 당부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신명기가 완성되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편집자가, 저자가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총체적 역사에 대한 평가라고 봐야 한다는 점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모세가 생각해서 우리가 이래 하면서 쓴 모습이라고 보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성서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그 성서가 이야기하는 극중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것이 만들어지는 문헌의 자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의 유언에서 고발되거나 당부되는 것들은 단순히 정착되기 이전 고대의 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만들 때 당시 독자들의 의식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반역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광야 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만들어지는 그 후대까지 지속되어 있었고 그것을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투사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조금 더 예를 들자면 성경여행스케치라는 책을 쓸 때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는 주몽이었는데 시청률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사회가 공감하고 납득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공감하고 열광했던 주몽의 모습은 사실은 실제 주몽의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실제 주몽은 너무 옛날 사람이라 전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그 당시 영웅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대의 영웅으로 주몽을 주목 했었던 것인데 왜냐하면 이 드라마가 만들어질 무렵에 있었던 사회상을 피디나 작가들이 제대로 읽어내서 -지도자가 부재되고 정의가 실종된- 그 당시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염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담아서 주몽이라는 인물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2007년 그 당시 한국사회를 전제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성서도 똑같습니다. 성서도 모세 때 쓰여진 게 아니고 아브라함 때 쓰여진 게 아닌 거죠. 인류의 역사를 보면 문자 이전을 선사시대, 이후 시대를 역사시대라고 하죠. 역사시대보다 선사시대가 훨씬 더 길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부분 모세오경 때 언급했던 사건들은 문자등장 이전의 아주 고대시절인데 이때 어떻게 무엇을 기록해서 남겼겠습니까? 그래서 성서의 내용들은 굉장히 후대에 만들어진 거 라고 볼 수 있고,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것은 이 문헌이 만들어질 당시의 저자는 어떻게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를 이해했는지, 이것입니다.

 

즉 모세의 유언을 통해서 회고된 이스라엘의 모습은 저자가 만들어내는 이 문헌이 만들어질 당시의 회고된 모습이 반영된 것이다, 이렇게 보셔야 하는 겁니다. 이것은 뭐 구약은 말할 것도 없구요.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 각각의 공동체는 다른 보도를 하고 있거든요. 루카는 루카에 맞추어서 그 공동체가 예수님 사건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독자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소개할지 공동체에게 눈높이를 맞춰서 이 사건이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조차도 루카복음 에서는 ‘주님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이고 마태오 에서는 ‘당신 손에 제 영혼을 맡기나이다’ 이렇게 다르게 표현되거든요. 그래서 사건에 주목하기보다는 이 문헌이 만들어지는 시대의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것. 이것이 성서를 접근하시는데 굉장히 중요한 방식중의 하나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설교체로 법규를 만들어서 제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신명기에서는 놀랍게도 설교로 법을 전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신학이 창궐할 그 당시에는 연설이라는 독특한 의식 전달방법이 개발이 되었습니다. 사회 안에 지도층이 형성되면서 그들의 연설이 붐을 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연설문이라는 것이 대중적으로 유행을 하게 됩니다. 신명기에서 64절에서 7절이 특히 중요한데요.

 

제가 민수기 설명드릴 때 법전 소개 드리면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이것을 말씀드렸는데요. 이것은 사실 신명기 64절에서 7절에 대한 신약성경의 인용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신명 6,2-7). 신명기가 워낙 중요해서 예수님도 가장 큰 계명을 얘기하실 때 신명기를 인용하신 겁니다.

 

그런데 신명기 64절이’들어라 이스라엘아~‘ 이렇게 시작되죠? 연설문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신학이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당시 유행했던 방식이라고 보셔도 무방하실 것 같습니다. 요즘에도 각 교구마다 올해의 슬로건을 만듭니다. 이런 슬로건의 대부분이 예수님 말씀에서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냐하면 말씀이나 연설이 가지는 현장감 때문에 일반적인 평서문보다 슬로건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기 좋은 것이죠.

 

또 여러 가지 법전들 중에서도 십계명이라는 중요한 법전이 탈출기에 한 번, 신명기에 한 번 등장하는데 동일한 순서대로 전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 개신교, 동방교회, 유다교의 십계명이 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어디에서 가져오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신명기를 설명하면서 실제사건의 보고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후의 문헌이 만들어지는 시대상이 반영된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렸고 또 성서에는 한가지 사건에 대해서 두 세가지 충돌되는 사건도 발생이 됩니다. 이런 말씀도 드렸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성경의 무류성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서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무류라는 것은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류하다 라고 저희가 고백하고 있는 건데 아까 말씀 드린 것만 보아도 십계명이 탈출기 것이 맞는지, 신명기 것이 맞는지 헷갈리니 이게 오류가 없다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듭니다. 그렇죠? 모세가 직접 한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도 또한 성서말씀은 실제사건에 대한 보도라고 들었는데 그럼 그게 다 진실이 아니라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일단 성경라는 책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3가지로, 제가 정의를 통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근데 문제는 하느님이 육성으로 말하셔서 받아쓰게 한 적이 없는데 잘 들리지 않는 그분의 말씀이 어떻게 인간에게 전달되었을까? 2. 인간저자가 기록하게 하셨다. , 특정 저자를 선별하셨다. 3. 인간저자는 성령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즉 하느님의 감도를 통해서 기록했습니다.

 

세상에서 보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추정되는 책이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유다교나 그리스도교나 하느님의 말씀인 것 같은 책을 선별을 해야 했습니다. 이 많은 책들 중에 도대체 하느님께서 성령의 영감을 주셔서 당신 말씀을 기록하게 한 책이 어떤 책인건지..

 

그래서 우리는 구약성경 중에서 46권만 선별해서 이것만이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셔서 인간 저자들이 기록하게 하신 겁니다 라고 교회가 결정했습니다.. 나머지는 하느님 말씀이 아니라 인간 혼자 기록한 책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외경이라고 하죠. 그리고 신약에서도 27권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과 외경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저자가 기록했다는 겁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영감을 받는데, 성화같은 데서 보면 빛이 내려와서 탈혼 상태에서 기록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런 것은 상징적인 것이고, 우리의 신앙은 정신줄 놓게 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신앙체험 하면 초월적인 빛과 천상적인 분위기를 상상하시는데 그런 것을 강조하다 보면 이성적이지 않은 부분들 비현실적인 것들이 신앙체험인줄 알고 착각하시는 경우가 많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반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초 이성주의 입니다. 이성을 넘어서는 부분까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성을 사용해도 하느님은 그것을 넘어서 존재하는 분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그 영역까지 하느님과의 합일, 하느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살아가는 것이 저희 신앙이죠.

 

저희가 신앙의 해를 지내고 있는데 특별히 제13차 세계대의원 주교회의가 있었거든요 근데 이때 주교님들과 교황님께서 강조한 것은 신앙과 과학의 연대성입니다. 준비가 안된 과학자들이 신앙을 과학과 반대된 것으로 보지만, 그렇지 않으며, 신앙과 과학은 충분히 대화하고 함께 공존하면서 상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더구나 신학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과학의 발달은 하느님이 함께 하실 때 은총으로 주어지는 결과물이거든요. 그래서 과학이나 합리적인 것과 반대되는 반 이성주의가 아니라 초 이성주의라는 거고요.

 

그리고 지금의 나의 현실을 무엇보다도 적합하게 정확하게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다. 요한복음 말씀이시죠. 여기에 보면 진리라는 말이 뭐냐하면 현실이라는 거예요. 현실을 제대로 읽을 때 우리가 자유로워진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현실을 읽을 때 대부분이 느끼시는 게 뭐냐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적겠구나. 하느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구나. 이걸 파악하게 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기록하는 인간저자는 정신줄 놓은 상태에서 뭔가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을 전적으로 동원합니다. 그래서 그런 소재와 방식과 문학장르와 정치적 상황과 이런 모든 것들을 깊이 숙고하고 고민하고 연구해서 그래서 성서 본문들이 나오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고민과 숙고 안에서 하느님은 그냥 방치하고 계셨던 게 아니라 하느님의 영이 함께 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서 저자들의 의식은 그들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었고 하느님의 영이 함께 들어와서 이런 신학적 결과물을 내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부분은 제가 언젠가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계시헌장이라는 1962년부터 1965년에 진행되었던 2차 바티칸 공의회 결과물에서 이미 제시되어있는 내용입니다.

 

계시헌장 11항과 12항에 주목하셔서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것은 제 책 성경여행 스케치 202페이지부터 207페이지까지 소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제가 계시헌장 11항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을 저술하는 데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선택하시고 자기의 능력과 역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활용하신다. 하느님께서 몸소 그들 안에 또 그들을 통하여 활동하시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또 원하시는 것만을 그들이 참 저자로서 기록하여 전달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영감 받은 저자들, 또는 성경 저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은 성령께서 주장하신 것으로 여겨야 한다.

 

제 말이 아니라 교회의 말씀이시죠. 하느님께서 인간저자를 선택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기록하게 하셨다라는 건데 그들이 총동원한 많은 소양들은 저자들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장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된다 라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가톨릭 교회를 굉장히 보수적인 교회로 이해를 하고 계시는데, 그런 보수성을 가진 교회라도 성경에 대해서 볼 때는 이런 문학적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부분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12항 이거는 예전에 같이 읽었던 부분이지만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계시헌장 12- 성경 저자들의 진술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문학 유형‘들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본문에서 역사적, 예언적, 시적 양식 또는 다른 화법 등 여러 양식으로 각각 다르게 제시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5경을 제가 설명 드리면서 신화라던가 설화라던가 전담에 대한 양식도 소개해 드렸고 법조문 또한 소개해드렸습니다. 나중에 예언서 가면 신탁이라는 또 다른 양식이 등장하거든요. 그리고 역사서로 가면 역사라는 그 시대에 유행했던 양식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양식들을 고려해서 성서를 읽으셔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성경해석자들은 성경 저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그 시대와 문화의 여러 조건들에 따라 당시의 일반적인 문학 유형들을 이용하여 표현하려 하였고 또 표현한 그 뜻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 저자가 글로써 주장하고자 한 것을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널리 쓰이던 그 지방 고유의 사고방식, 언어방식, 설명 방식 그리고 사라믈이 상호 교류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방식들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계시헌장12)

 

이것에 덧붙여서 제가 좀더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서는요, 안보이시는 하느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 하느님이 살아계시고 지금 우리사회 안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임을 계시하고 있는 책입니다. 계시는 ‘열 계’에 ‘보일 시’를 쓰죠. 그래서 열어서 보여주는 책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교를 한마디로 표현하라 이러면 계시종교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계시야말로 그리스도교를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는 겁니다. 휘장에 가린 것처럼 잘 안 보이시는 그분을 만나서 사귀고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을 고백하려면 휘장을 제쳐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것을 레벨라시오라고도 합니다. 이 ‘벨’이 뭐냐 하면 베일이예요. 즉 휘장입니다. 베일을 걷어줘야지만 하느님이 열어서 보여진다는 거죠.

 

그런데 이 계시가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성경을 통해서 휘장이 열려진다는 거예요. 그 다음은 성전. 교회의 거룩한 전통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들이 문헌화되어서 제시되는 문헌들 이런 것들이 계시의 통로죠.

 

그런데 성경을 보면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에 제작이 되기 때문에 예를 들어 모세 5경은 기원전 13세기부터 제작이 되지만 최종 완성되는 것은 5세기 거든요. 800년동안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후대 법전이 뒤죽박죽으로  앞부분에 삽입이 되기도 하고 뒷부분에 삽입되기도 하고 이렇게 굉장히 산발적으로 편집이 된 책입니다. 차곡차곡 만들어진 게 아니지요.

 

그런데 이때 당시 사람들의 사고 방식. 아까 생활방식 이런 것들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했는데요. 당시 고대인들에 의하면 세상은 평평하고 여기에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창공이 만들어지고 뭐 이런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지구는 동그랗고 동그란 지구는 이렇게 창조되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우리에게는 맞는 말인데 당시 사람들은 그 시대 사고방식으로 거짓말! 이렇게 하는 겁니다.

 

만약에 불과 한 20여년 전에 누군가 앞으로는 전화기를 각자 가지고 아무데서나 전화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러면 대부분 거짓말! 그런 게 가능하겠어?’ 이렇게 생각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시대마다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은 일정부분 고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이런 분이시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이런 부분을 얘기하기 위해서 그 시대 통념을 그대로 가져와서 쓴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주 초기 전승들에 의하면, 당시 윤리관은 하느님이 열심히 산사람에게 주어지는 결과라고 보는 게 부였습니다. 십계명 설명드릴 때 그 당시, 아내를 얻으려면 자기 재산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부분을 주고 사와야 되기 때문에 자기 재산 중에 제일 비싼 게 아내가 되고 그래서 재물과 여성을 함께 연결해서 얘기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남편을 부를 때 주인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말씀도 드렸구요. 왜냐면 사가지고 오는 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 같은 상황에서 보면 말이 안되지만 그 시대 결혼관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맞춰서, 유다인들의 사고방식을 전제해서 구약성경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우리 식으로 이상하다고 해서 이것을 폄하한다고 했을 때 합리적인 평가방법이 될 수 없다는 거죠

 

국민교육헌장이라는 문헌이 있죠. 초등학교 중학교 때 외워서 시험 보셨던 분들 매우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보면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조국의 얼을 되살리고.. 이렇게 나오거든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갖고 태어나셔서 완수하셨는지요? 지금 젊은이들이 보면 참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것을 끊임없이 세뇌시켰던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젊은이들이 국민교육헌장을 폄하한다고 했을 때 저희가 그다지 기쁘게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이 문헌은 50,60,70년대 당시 시대적 배경이 설명되어야만 제대로 이해되는 문헌이거든요. 성경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불과 몇 십년 전의 일도 해석이 필요한데 하물며 몇 천년 전에 만들어진 그 당시 윤리관, 전쟁관은 어떻겠습니까?

 

성서에서 보면 전쟁에서 야훼 하느님이 승리하신 다음에 상대편의 애기들이나 가축까지 다 몰살시킵니다. 이것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워요. 어떻게 부녀자들과 애기들까지 죽이냐. 근데 당시에는 어떤 의식이 있었냐면 하느님 말고 다른 신을 섬겼을 때 그 신 때문에 그 전체가 부정을 탔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부정탄 숟가락 하나라도 우리 공동체에 들어오면 우리공동체도 부정을 탄다는 이런 의식이 당시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애기들을 다 죽이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거죠. 우리 식으로 당시 여러 가지 관습들이라던가 시대정신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성서에 보면 예를 들어 저희가 탈출기라는 책을 공부할 때 유명한 사건이 바다건너는 사건입니다. 탈출기 1421절부터 22절에 제시되어있는데요.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탈출 14/21-22)‘모세가 바다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시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다. 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지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익숙하신 부분이죠? 그런데 예민하게 읽으신 분들은 여기서 한 가지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충돌된 보도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첫 번째 21절에서는 밤새도록 바람이 불어서 마른 땅이 드러나는 거예요. 그런데 22절에서는 그게 쫙 갈라져서 좌우로 벽이 되어주는 겁니다. 바다가 갈라지는 장면을 서로 다르게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도 의아하시죠. 아니 이 중요한 사건에서조차 통일된 말씀이 나오지 않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 이건 어쩌면 좋은가.

 

성서는 바다가 주인공인 책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시 문학기법은 내가 얘기하려는 한가지에만 초점을 맞추면 그 다음 조연들, 부차적인 것들은 얼마든지 각색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실제 사건의 보도다 아니다 이렇게 보는 사람은 그 당시로서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몰라서 넘어간 게 아니라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지만 충돌이라고 보지 않는 거예요. 왜냐하면 바다가 바람으로 마른 땅이 드러나건, 아니면 쫙 갈라져서 벽이 되건 이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주체는 야훼 하느님이라는 것. 그분께서 해방시켰다라는 이 사실은 동일하게 보도되는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계시하는 것이 목적이고 이것이 맞는다면 21절에서 이랬다 22절에서 저랬다 이런 충돌을 아주 대놓고 보여주는 겁니다. 왜냐면 이걸 충돌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서에서 보면 10계명이 두 번 등장하는데 이게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리고 이런 것을 판가름 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이 중요한 법전이 2번나오는거 알고 있고 충돌된다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 십계명의 핵심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풀어내기 위한 장치들이라는 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떠한 오류도 없기 때문에 겉으로 봤을 때 서로 충돌되니까 오류 같지만 사실은 하느님을 계시한다는 측면에서는 전혀 오류가 없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는 겁니다. 사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보시면 이런 충돌되는 보도들, 뭔가 비합리적인 내용들, 비과학적인 내용들, 비 윤리적인 내용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그런데 이 책이 저희에게 구원인 이유는 이런 충돌 들을 대충 무마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라는 거. 그분이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거. 그분이 구원자고 해방자시라는 거. 이런 거에 대해서는 요만큼도 충돌되는 본문들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성서를 무료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신앙이 깊으신 분이고 제가 성경여행 스케치를 진행할 때 여기에 대해서 질문하신 적이 있어요.  그 때 신자 분들이 민감하게 많이 궁금해하시는구나생각했고 이걸 모르면 성서를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움이 있으시다 생각해서 이 부분을 제일 먼저 강조해야겠다 하고 책에서도 더 보강해서 말씀 드리고 그랬습니다.

 

이제 저희가 역사서를 배우게 되는데 이 역사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책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책이라면 저희가 경전으로 읽을 필요가 없죠. 이스라엘 역사라고 본다면 충돌되는 내용이 너무나 많이 나와요. 그래서 근본주의에 대한 내용들 그런 것들은 역사서에서 제가 다시 한번 소개해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신명기라는 책에서 결어부분이 있지만 이 결어는 모세 당시 이야기가 아니라 후대상황이 반영됐다라는 것. 그리고 여러 법전들이 나오는데 여기서 충돌되는 문제들이 나왔을 때 이거는 성서자체에 제작이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라는 것. 그래서 충돌됐다라고 보시기 어렵다는 것 이런 부분들을 말씀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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