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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샘

♣복음말씀의 향기♣ No4238 5월29일[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부활 제6주간 목요일]

작성자이경재 시지스 문도|작성시간25.05.29|조회수119 목록 댓글 0

♣복음말씀의 향기♣ No4238
5월29일[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부활 제6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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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를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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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방송미사**
https://youtu.be/1BYaR6A6Lvo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희 한장호 베네딕토 신부님 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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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동영상)
https://youtu.be/TNI1m2Q_B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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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사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이유>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순교의 길을 가야 합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순교를 말하면 누가 좋아할까요? 왜 죽어야 하는지, 죽는 건 고통은 아닌지 의아해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순교가 행복임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고통은 어디서 올까요? 부처님이 잘 보신 것 같습니다. 바로 집착에서 옵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바랄 때 지옥을 산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성경에서 부자 청년이나 롯의 아내를 생각해봅시다. 롯의 아내는 집착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자 청년도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집착의 고통에 대해 말합니다. 깊은 바닷속 인어공주는 인간 왕자를 열렬히 사랑하고 인간이 되어 그와 함께하고픈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이 집착적인 사랑 때문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내어주고, 걸을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끔찍한 육체적 고통을 감내합니다. 그러나 결국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이상적인 사랑과 특정 대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얼마나 큰 희생과 고통을 초래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 욕구가 다 채워지면 고통이 사라질까요? 그 고통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한. 왜냐하면 모든 집착은 생존과 연결되기에 생존에 집착하는 한 욕구에 집착하는 결과가 됩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영원한 삶에 대한 강한 집착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불로장생의 약을 찾기 위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동원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백성이 고통받았습니다. 정작 자신은 끊임없는 불안과 의심 속에서 살다가 영생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단순한 명상으로는 부족합니다. 어차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집착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까지 아깝지 않을 이유가 필요합니다. 목숨을 내어줄 이유는 사람 사랑의 의무입니다. 사랑은 목숨을 내어놓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의무가 될 때 결국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였던 자캐오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지 엘리엇의 ‘실라스 마너’의 줄거리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실라스 마너는 가장 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공동체에서 추방당하며, 약혼녀마저 그 친구에게 빼앗기는 아픔을 겪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과 절망에 빠진 실라스는 '래블로'라는 새로운 마을로 이주하여 오직 베 짜는 일에만 몰두하며 은둔자처럼 살아갑니다.

세상과 모든 교류를 끊은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자 삶의 목적은 밤낮없이 일해서 번 돈, 즉 반짝이는 금화였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사랑과 신뢰를 잃은 공허함을 금화를 세고 어루만지는 행위로 채우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실라스의 전 재산과도 같았던 금화 항아리가 도둑맞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삶의 유일한 의미를 잃고 깊은 절망에 빠진 실라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새로운 빛을 가져다줍니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밤, 아편 중독으로 죽어가는 한 여인이 실라스의 오두막 근처에 쓰러지고, 그녀의 어린 딸 '에피'가 불빛을 따라 그의 집으로 기어 들어온 것입니다.

처음 실라스는 금발의 아기를 보고 자신의 사라진 금화가 돌아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곧 살아있는 생명인 에피의 온기와 순수함에 점차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는 에피를 자신의 딸로 삼아 정성껏 키우기 시작합니다. 에피를 돌보는 과정은 실라스에게 잊고 지냈던 인간적인 감정과 사랑을 일깨웠습니다. 에피의 해맑은 웃음과 재롱은 그의 황금에 대한 집착을 서서히 밀어냈고, 그의 삶에 새로운 의미와 기쁨을 불어넣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에피를 통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에피는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고, 에피의 친아버지인 마을의 지주 고드프리 캐스가 뒤늦게 나타나 에피를 자신의 딸로 인정하고 부유한 삶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합니다. 고드프리는 과거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에피의 존재를 숨겼지만, 이제 후회하며 에피를 데려가려 합니다. 그러나 에피는 자신을 길러준 실라스 마너 곁에 남겠다는 확고한 선택을 합니다.

에피의 이러한 변함없는 사랑과 선택은 실라스에게 그 어떤 금화보다 값진 '참 행복'을 안겨줍니다. 그는 자신을 배신했던 과거의 기억이나 금화를 훔쳤던 도둑(던스탄은 이미 죽었지만)에 대한 증오, 그리고 에피를 버렸던 친아버지 고드프리에 대한 원망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에피의 사랑 안에서 그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운 존재로 완성됩니다. 

사랑에 대한 의무는 어쩔 수 없이 다가옵니다. 여기서 에피는 마치 한 알의 밀알, 혹은 성체와 같습니다. 이것을 키워내면서 실라스를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었고 집착이 사라지지 용서도 쉬웠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것이고, 그래서 순교하라는 것입니다. 순교는 사랑의 한 방법입니다. 따라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을 의무로 삼는다면 집착에서 자유로워져 결국 이 세상에서부터 자유롭고 행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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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가끔 축성을 부탁받습니다. 얼마 전에는 도넛 가게를 축성했고, 또 다른 날에는 헤어스파를 축복했습니다.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 그 사업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도넛 가게는 새벽같이 문을 열어 하루를 시작합니다. 땀 흘리는 이민자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입니다. 도넛 하나에도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를 축복하셨듯이 말입니다. 또 다른 곳은 새로 시작한 헤어스파였습니다. 문을 열자,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지친 이들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그 공간을 찾는 이들이 단지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 쉬어 갈 수 있기를 청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세상에서의 성공만 기억하려 합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기억하지만, 은메달리스트는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꽃밭을 가보면 다릅니다. 모든 꽃은 1등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색깔을 내며 피어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1등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고 넘어졌던 이도, 낙오자도, 슬퍼하던 이도, 모두를 품는 것이 신앙입니다. 저도 흔들렸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서품받고 나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IMF로 대출을 받기도 했고,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지금 꽃이 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열매 맺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흔들리면서, 비에 젖으면서 피어나는 꽃. 그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선교사가 없이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는 100년 동안 50년은 사제 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신유, 기해, 병오, 병인박해가 있었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박해와 시련이 있었습니다. 순교자도 있었지만, 배교자도 있었고, 밀고자도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의 뜨거운 피와 숭고한 신앙이 열매 맺었고, 오늘 한국 천주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꽃이었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피어난 꽃이요, 비에 젖으며 드러난 향기였습니다. 윤지충 복자는 조선시대 양반 출신으로, 유학을 공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주교를 접하면서 그는 전통 제사를 거부했고, 자신의 어머니 장례에서 신앙을 지켰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순교하였습니다. 함께 순교한 권상연 복자도 그의 동료였습니다. 당시엔 조선이라는 사회 자체가 거대한 바람이고, 믿음을 시험하는 장대비였습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순교자를 영웅처럼 여기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고민하고 흔들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과 충성 사이에서, 부모의 뜻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서, 전통과 진리 사이에서 그들도 아팠을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이 말씀처럼, 그들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심은 것입니다. 그들의 피는 씨앗이 되었고, 그 씨앗에서 우리는 지금 ‘한국 교회의 믿음’이라는 열매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도 바람이 있고, 비가 있습니다. 병으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꺾이지 않고, 흔들리면서도 살아내는 신앙인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순교의 향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리는 윤지충 바오로 복자와 동료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생명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처럼 생명을 내어놓지는 못하더라도, 오늘 하루 작은 선택 하나라도 하느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무례한 말 한마디를 참는 인내, 상대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연민, 그리고 기도 속에서 묵묵히 하느님을 기다리는 믿음.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삶도 “흔들리며 피는 꽃”이 됩니다. 그러니 조금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하느님은 흔들리며 피는 꽃을 누구보다 사랑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 시험을 통과하면 생명의 화관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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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의정부교구 김동희 모세 신부님]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무엇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황이십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께서 굳은 의지로 공의회의 문을 여셨다면,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1년 뒤 후임으로 선출되시어 공의회를 이어 나가 끝맺으심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현대화를 이루신 분입니다.

공의회 진행이 순조롭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전례문의 모국어 사용, 현대 세계의 교회, 평신도 사도직, 주교들의 단체성, 교회 일치, 다른 종교와의 관계 등 민감한 주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끈기와 지혜로 공의회를 이어 나가 교회의 쇄신을 이끄신 개혁가이십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친 뒤 문헌을 반포하는 데 그치시지 않고 그 결의 사항을 곧바로 실행해 나가셨습니다. 지역 주교들에게 교황에 대한 자문 권한을 부여하는 세계 주교 시노드를 제도화하셨고, 대다수가 유럽 출신이었던 추기경단을 제삼 세계 출신에까지 확대하여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을 구현하시고자 노력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대주교가 한국 최초로 추기경에 임명되었지요.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대화의 교황’이시기도 합니다. 교회 일치를 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하셨고, 또 최초로 국제 연합(UN)에서 전쟁 반대를 연설하셨습니다. 처음으로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타고 외국을 방문하시기 시작하여 오대륙을 모두 방문한 교황이라고 해서 ‘순례자 교황’으로도 불리십니다. 어려서부터 수줍음 많고 몸도 허약해서 신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집에서 다니셨던 분이 우리 교회를 위하여 아낌없는 수고를 하신 것이지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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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요한 12,24-26: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오늘은 한국천주교회의 초기의 순교 복자들 124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리는 날이다. 떼르뚤리아누스 교부는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다.』(호교론 50,13) 했듯이 이분들은 참으로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씨앗이 된 분들이다. 지난 2014년 8월 16일 서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시복되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절) 우리 순교자들은 모두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한 알의 밀알이었다. 그 밀알이 죽음이라는 행위를 통해 다시 살아나 많은 열매를 맺었다. 오늘의 한국천주교회의 모습으로 열매를 맺었다. 순교자들의 피는 이렇게 열매를 맺은 것이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25절). 이 말씀의 의미는 이렇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자신의 삶에 대해 과도한 욕망에 빠짐으로써 자기를 파괴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이러한 집착에서 자유로우며 진정으로 하느님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다.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위해 우리 자신을 이겨 나가야 한다. 순교자들이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늘 하느님의 뜻 때문에 자신을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26절) 그분을 올바로 섬기려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다.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그분이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1요한 2,6 참조) 오늘의 순교 복자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분을 닮도록 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으며, 당신의 죽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위해 가장 큰 사랑을 드리셨다. 우리가 지금 순교 정신을 산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것같이 나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끊고 나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실현하며 그분을 체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분의 길을 가지 못하면서 그분을 따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삶으로 순교자들을 기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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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4-26)

1) 조선에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진 일은, 마태오복음에 있는 ‘진주 상인의 비유’와 똑같습니다.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 13,45-46)

기존의 학문이나 종교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조선의 학자들은, 새로운 학문인 ‘서학’에서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고, 그것이 단순한 학문적 진리가 아니라 ‘구원의 진리’ 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그 진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들의 순교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목숨을 바친 일, 즉 “육신의 목숨을 바쳐서 영혼의 목숨을 얻은 일”입니다.

동시에, ‘복음’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선포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입교했고, 순교자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글자 그대로 밀알 하나의 죽음 덕분에 많은 열매를 맺는 일이 된 것입니다.

2) 순교는 덜 중요한 것을 버려서 더 중요한 것을 얻는 일, 또는, 허무한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버려서 영원한 것 하나만 차지하는 일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19-21)

사실 안 믿는 사람들도,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일은 누구나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라는 말씀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따라가는 법이라는 뜻입니다. ‘권력’을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보물로 생각하는 사람은 권력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재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재물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신앙인은, 권력이든지 재물이든지 간에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은 모두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바라보지 않고, 영원한 생명 하나만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안 믿는 사람들은 신앙인들을 비웃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참으로 허무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3) ‘밀알 하나의 비유’ 말씀은, 원래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그렇지만, 이 비유는 모든 순교자들의 죽음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밀알 하나를 땅에 심는 일이 그 밀알을 죽이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밀알 하나가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씀은, “겉으로 보기에는 밀알 하나가 죽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땅에 심어지는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땅에 심어진 밀알은 죽어버린 밀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으려고 준비하는 씨가 됩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죽음도 죽음이 아니라,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는, “열매를 맺지 않는 씨는 존재 가치가 없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열매를 맺지 않는 씨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서 생을 마치는 것은 곧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순교는, 그 자신에게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열매를 얻는 일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영원한 생명’이라는 열매를 얻도록 인도해 주는 일이 됩니다.>

4)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는, “현세의 인생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착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혹시라도, “사는 동안에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죽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는 없는가?”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그럴 수는 없다.”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이 바로 “두 가지를 다 가질 수는 없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나서 부활로 가셨습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 외에는 없습니다.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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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삶과 죽음>

요한 12,24-26 (그리스인들이 예수님을 찾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삶과 죽음>

죽는


사는
죽음

죽은



죽음

죽이는


살리는
죽음

죽어가는


살아가는
죽음

죽음으로
끝나는


삶을
넘어서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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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밀알이 되어>

‘봄에 씨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수고와 땀없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열매를 희망하는 만큼 지금 여기서 노력해야 합니다.

열매는 최선을 다한 후 따라오는 선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풍요로움도 그에 걸맞은 정성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그 선물의 소중함을 받아들이려는 수고의 몫은 우리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묵은 나는 죽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이기적인 나‘에서 죽고, ’영적인 나‘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내 뜻을 이루거나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따르는 것에, 모두를 걸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됩니다. 사랑과 헌신은 희망을 이룹니다.

시편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126) 희망을 오늘 여기서 살아냄으로써 기쁨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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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124위 시복식미사 강론 전문 (2014,8,16)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영광>

오늘은 잊었던 감격을 일깨우는 날이 되기를 희망하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을 다시 묵상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성 바오로는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의 영광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 신앙의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당신과 결합시키시어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셨고, 그분의 승리는 또한 우리의 승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안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승리를 경축합니다. 이제 그분들의 이름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이름 옆에 나란히 함께 놓이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저는 그분들에게 공경을 드렸습니다. 이 순교자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환희와 영광 속에서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함께 참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승리를 우리에게 선사하셨음을, 순교자들은 성 바오로와 함께 증언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순교자들의 승리, 곧 하느님 사랑의 힘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 한국 땅에서, 교회 안에서 계속 열매를 맺습니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이처럼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복자 바오로와 그 동료들을 오늘 기념하여 경축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여명기, 바로 그 첫 순간들로 돌아가는 기회를 우리에게 줍니다.

이는 한국의 천주교인 여러분이 모두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하여 지켜나가기를 촉구합니다.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 안에서, 한국 땅에 닿게 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민족,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적 호기심과 종교적 진리의 탐구를 통해 촉발되었습니다.

복음과 처음으로 만난 한국의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더욱더 많이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에 대한 무언가의 깨달음은 곧 주님과의 만남으로 이어져, 첫 세례들과 더불어 충만한 성사 생활과 교회적 신앙생활에 대한 열망, 그리고 선교 활동의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전통적인 사회적 신분의 차별과 상관없이, 믿는 이들이 모두 한마음 한 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던 초대 교회의 삶(사도 4,32 참조)에서 영감(靈感)을 받아, 한국의 신자 공동체들 안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평신도 소명의 중요성, 그 존엄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저는 여기 있는 많은 평신도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리며, 특별히 날마다 삶의 모범으로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화해시키시는 사랑을 가르치는 그리스도인 가정에 저의 인사를 전합니다.

또한 여기 있는 많은 사제들에게도 특별한 인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헌신적으로 행하는 직무 수행을 통해, 지난 세대의 한국 천주교인들이 일구어 온 풍요로운 신앙의 유산을 지금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그리고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시고 지켜 주시기를 간청할 때, 아버지께서 우리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기를 청하지 않으셨다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시어 세상 안에서 거룩함과 진리의 누룩, 즉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순교자들이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이 땅에 믿음의 첫 씨앗들이 뿌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교자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따를 것인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당신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라는 주님의 경고(요한 17,14 참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 됨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이것은 박해를 의미했고, 또 나중에는 산속으로 들어가 교우촌을 이루게 됨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을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즉 재산과 땅, 특권과 명예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그들의 진정한 보화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매우 자주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음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해 타협하고,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정신에 순응하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 위에 최우선으로 모시고, 그 다음에 이 세상의 다른 온갖 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원한 나라와 관련해서 보아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또한 순교자들은 그들의 모범으로, 신앙생활에서 애덕의 중요성에 관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 증언의 순수성이었고,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동등한 존엄성을 지녔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대의 엄격한 사회 구조에 맞서는 형제적 삶을 이루도록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을 분리하는 데 대한 그들의 거부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형제들의 필요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에게 뻗치는 도움의 손길로써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요구하시며, 그렇게 계속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는다면, 우리는 순교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그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오늘의 이 경축을 통하여, 이 나라와 온 세계의 헤아릴 수없이 많은무명 순교자들을 마음에 품고 기리고자 합니다. 특별히 지난 마지막 세기에,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그분의 이름 때문에 모진 박해 속에서 고통을 받아야만 했던 이름 없는 순교자들을 기리며 기억합니다.

오늘은 모든 한국인에게 큰 기쁨의 날입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 순교자들이 남긴 유산, 곧 진리를 찾는 올곧은 마음, 그들이 신봉하고자 선택한 종교의 고귀한 원칙들에 대한 충실성, 그리고 그들이 증언한 애덕과 모든 이를 향한 연대성, 이 모든 것이 이제 한국인들에게 그 풍요로운 역사의 한 장이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靈感)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전구와 더불어 모든 한국 순교자들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온갖 좋은 일과 믿음 안에서, 또 한결같이 거룩하고 순수한 마음과 사도적 열정 안에서 항구함의 은총을 받아, 사랑하는 이 나라에서부터 아시아 전역을 거쳐 마침내 땅끝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증언하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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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신우식 토마스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어 가는 씨앗’을 통하여 추수철에 많은 결실을 내는 이야기는 복음서에 자주 나옵니다.(마태오 복음 13장 3절-9절 / 마르코 복음 4장 3절-9절 등 참조)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이를 부활과 영원한 행복에 적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코린토 1서 15장 35절-44절 참조)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목숨을 바쳐 많은 이에게 자신의 신앙을 증언한 순교자들의 모범은 ‘땅에 떨어져 죽고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103위 순교 성인들과 오늘 기념하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의 동료 순교자들은, 테르툴리아누스 교부가 말한 대로 ‘교회의 씨앗’임이 틀림없습니다.

순교자들은 박해자들의 온갖 회유와 궤변에도, “하늘과 땅, 천사와 사람,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요 위대한 아버지이신”(5월 29일 성무일도, 독서 기도, 제2독서) 하느님을 결코 배신할 수 없음을 담대하게 밝히며, 죽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루카 21,15)로, 소중한 목숨을 바쳐 자신들의 신앙을 끝까지 증언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의 신앙 앞에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도 이 세상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도록 용기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증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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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님]

사람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바라는 예수님을 만들어 냅니다. 잘못된 신앙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돌아가심으로써 세상에 생명을 주셨는데, 우리는 죽어 가는 길을 살고자 하는 길과 대척점에 놓고 늘 죽음을 회피하고는 합니다.

김영민 교수가 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라는 칼럼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테지요.

김영민 교수는 살고자 아우성치는 우리 한국 사회가 죽음의 문화에 무참히 갇힌 이유를 역설적이게도 죽지 않으려는 오만과 탐욕의 결과로 봅니다. 오히려 죽었다 생각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살려고 바둥대다 보면 서로를 죽이게 됩니다. 서로 움켜쥐려고 애쓰다 보면,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미워 보이고 심지어 해치고 싶은 마음까지 가지게 될지 모릅니다. 밀알이 되어 죽어 가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살리는 일이라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우리 나라의 수많은 순교 성인들의 생애가 그러할 것입니다.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 세상의 생명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굳이 어려운 일을 찾기보다 지금 나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여유를 지녔으면 합니다.

이것만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음을 생각하는 여유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세워 놓은 탐욕을 없애고 다른 이와 함께 나눌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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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한국 천주교회는 진리에 목마른 학자들의 연구와 깨달음, 인생의 참된 행복을 맛본 초기 증언자들의 순교 열정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자랑스러운 한국 교회의 뿌리를 생각하면, 103위 순교 성인은 물론 지난 2014년 시복되신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그분들의 신앙을 우리 삶의 현장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순교는 가장 소중한 목숨을 바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생명을 버릴 수 있다면, 두 가지 가능성뿐입니다.

지금의 내 생이 죽음 이후에 다시 보상을 받아 새롭게 살아갈 기회를 줄 것이라는 환생에 대한 믿음이거나,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아가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환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죽음을 가볍게 여기거나, 실패한 인생의 재도전의 기회쯤으로 생각하려는 풍조가 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런 생명의 순환과 환생을 믿지 않습니다. 환생은 세속적 행복을 절대시하고, 나의 행복의 기준을 이기적인 욕망에 가두는 현실 세계의 모순을 그대로 반복하는 환상일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되살아난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가 세상에서 겪어야 할 또 다른 지옥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실 속에서 영원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와 죽음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믿는 사람만이,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고 그분을 위해 목숨을 내놓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없는 또 다른 환생을 꿈꾸기보다, 하느님 안에 사는 참된 평화를 희망했기에 순교자들은 목숨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순교자들이 가졌던 열정이 오늘 우리에게 절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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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아이들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말하지만, 어른들은 그에 반해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어느 물리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억력이 감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뇌의 도파민 분비 감소로 인해, 또한 새로운 경험 감소 등의 이유가 있다고 들었지만, 이 물리학자가 말한 ‘기억력 감퇴’라는 말이 제일 크게 와닿았습니다. 기억나지 않으니 하는 일 없이 시간만 지난 것 같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많은 것을 쉽게 기억합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기억하기에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고 생각하는 분, 그래서 한숨짓는 분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기억에 남을 일을 많이 하자.’

잊어 버려도 많은 일을 한다면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말하는 사람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억에 남을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속도를 자기가 정할 수 있다는 것도 은총이 아닐까요? 그만큼 기억에 남을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 일보다 편하고 쉬운 일만 하려고 합니다. 자연히 기억에 남지 못하고 시간만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낄 뿐입니다. 그렇다면 기억에 남을 어떤 일을 만들어야 할까요?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순교자들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의 동료 순교 복자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충분히 기억에 남길 만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것보다 주님의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삶, 세상의 영광보다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좇는 삶, 이런 그들의 삶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야 함을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순교자들이 보여주셨던 신앙의 모범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기억에 남아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신앙의 선조들 덕분에 편안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순간의 만족만을 위한 삶,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드러내는 삶이 아닌, 자기 모두를 주님을 위해 내어놓을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억에 남을 일을 하는 삶,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삶을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과연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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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죽는 밀알이 되자!>

오늘 복음(요한12,24-26)은 '당신을 찾는 그리스인들에게 죽는 밀알이 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스 사람 몇이서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청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요한12,23)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4-25)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인 124위 순교 복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이들을 시복하셨습니다. 124위는 가경자의 단계를 끝내고 복자품에 오르신 분들이며, 지금은 성인품을 향해 나아가고 계신 분들입니다.

124위 복자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 하느님과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으신 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걸어가신 분들,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함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는 죽는 밀알이 되신 분들, 자기 목숨을 미워하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124위 순교 복자들은 우리의 희망이며, 우리의 모범이십니다. 우리도 지금 여기에서 죽는 밀알이 됩시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밀알,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 됩시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돌아가신 이정숙사비나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하느님 체험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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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언젠가는
우리도 하나의
밀알처럼 기꺼이
죽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죽어야 할 대상은
욕심으로 가득찬
우리자신입니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입니다.

나의 뜻이 죽어야
하느님의 뜻이
생명의 길이 되어
활짝 열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시간은
나의 뜻을 
내려놓는 
거기에서
시작합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자신을
하느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은

우리자신이
너무 커져버린
것입니다.

자아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드러낸
이들이 바로
이땅의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자들은
열매를 맺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신 
분들입니다.

죽는 밀알처럼
하느님의 열매를
맺는 우리들의
일상이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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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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