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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샘

♣복음말씀의 향기♣ No4626 6월20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작성자이경재 시지스 문도|작성시간26.06.20|조회수46 목록 댓글 0

♣복음말씀의 향기♣ No4626
6월20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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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를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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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방송미사**
https://youtu.be/n54bFCwYT_U
[의정부교구 강명호 마르코(도래울성당 주임) 신부님 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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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주님 나라는 그분의 힘, 그분의 자비와 사랑으로 건설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걱정의 바탕에 어떤 감정이 존재하는지 묵상해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먹을 양식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마실 음료가 없으면 어쩌나? 내 편안한 안식처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내가 더 나이 들어가면서 병고가 찾아오면 어쩌지? 내가 지금 버티고 있는 무대에서 밀려나면 어쩌나?

결국 우리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 그 가장 근저에는 나란 존재의 소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수시로 등장하는 하느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과 반드시 쌍으로 붙어 다니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항상 함께 하겠다!

정녕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세상 재물이 사라지는 것,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지상의 평화와 안녕이 붕괴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우리 영혼 구원과 관련된 두려움입니다.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인간의 근심과 걱정,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 그분의 자비와 사랑으로 건설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공포심이나 불안한 마음과 더불어 찾고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의 마음 안에는 이미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시기에, 그는 이미 하느님 나라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육체와 재물 자체를 단죄하거나 의식주의 필요성을 부인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분께서 제자들과 오늘 우리 각자를 향해 특별히 경고하시는 바는 목숨과 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요 탐욕입니다.

매일의 안정적인 의식주 해결을 위한 경제적 기반은 더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침입니다. 미래를 위한 재물의 축척도 어느 정도여야지, 너무 지나칠 때 인간은 재물의 노예가 되고, 언젠가 그 지나친 재물이 오히려 큰 재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진정으로 추구할 보물은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나라요, 그분의 다스림입니다. 내일에 대한 지나친 근심 걱정을 모두 말끔히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고 나머지는 한없이 자비하신 하느님의 두 손에 우리들 인생을 몽땅 맡겨드리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자체 해결해 버리고자 기를 쓰면, 그분께서 활동하실 여지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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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동영상)
https://youtu.be/33ZSULEpr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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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중에 성체 영하지 말기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급소를 찌르는 말씀을 단호히 선포하신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마태 6,24.34 참조)

나는 오늘 이 말씀을 한 가지 초점으로 좁혀 묵상하려 한다.곧, 근심하며 성체를 모시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을 근심하는 그 마음이, 아버지께서 생명처럼 내어주시는 유산의 맛을 우리 입에서 앗아 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명백한 말씀을 교묘히 비틀며 산다. "신부님, 돈이 있어야 하느님 일도 하고 이웃도 돕지요. 넉넉히 채워주시는 것도 축복 아닙니까?"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하느님과 돈이라는 두 주인을 한 손에 움켜쥐려는 탐욕이다.

거룩한 성체를 모시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주식 창을 열어 한숨짓고, 집값이 내려갈까 밤잠을 설친다. 온전히 의탁하라는 말씀은 현실 모르는 옛이야기로 치부하고, 제 입맛대로 "적당한 타협"이라는 덧칠을 해 버린다. 하느님의 법을 제 탐욕에 맞추어 뜯어고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이를 날카롭게 보여 준다.

농부 바흠은 "땅만 넉넉하면 악마도 두렵지 않다"는 탐욕에 사로잡힌다. 마침내 그는 한 부족에게서, 해 뜰 때 출발하여 해 지기 전에 제자리로 돌아온 만큼의 땅을 모두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규칙은 단 하나,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흠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욕심을 부리다 그 한계를 넘기고 만다. 지는 해를 보고 미친 듯이 달려 가까스로 출발점에 닿았으나,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는다. 탐욕의 대가로 그가 얻은 땅은, 시신을 묻을 두 평 무덤이 전부였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하신 그 선을 넘어 제 식대로 달리면, 영혼이 이렇게 피를 토하며 죽는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내일 걱정을 하지 말라 하셨는가. 탈출기의 만나 사건이 그 알레고리를 환히 밝혀 준다.

하느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날마다 만나를 내려 주시며 한 가지 율법을 주셨다. "아무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마라."(탈출 16,19 참조) 그러나 내일 굶을까 두려워진 사람들은 이를 어기고 만나를 몰래 숨겨 두었다.

그 결과를 성경은 이렇게 전한다. 거기에 구더기가 끓고 악취가 풍겼다.(탈출 16,20 참조) 바로 여기에 오늘 묵상의 심장이 있다. 만나는 날마다 내려 주시는 아버지의 양식이요, 훗날 내어 주실 성체의 예표다.

내일을 걱정하여 만나를 움켜쥐는 행위는, 나를 먹이시는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가장 지독한 불신이다. 그리고 그 불신은 양식을 썩혀 버린다. 어제의 만나는 더 이상 양식이 아니라 구더기였다.

이것이 곧 우리 이야기다. 근심을 품고 성체를 모시는 것은, 어제의 만나를 숨겨 두는 일과 같다. 성체는 본디 영혼의 양식, 아버지께서 오늘 내게 내려 주시는 하늘 만나다.

그런데 내일의 주식과 집값과 노후를 근심하며 그것을 모시면, 그 거룩한 양식의 맛을 우리는 도무지 느끼지 못한다. 근심이라는 구더기가 성체의 단맛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같은 성체를 모셔도, 어떤 이는 하늘의 생명을 맛보고 어떤 이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한 채 돌아선다.

양식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그것을 받는 마음에 근심이 끓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예전에 본 한 영상이 그 마음을 절절히 보여 준다.

고등학교 삼 학년 수험생들에게 물었다.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이냐?" 아이들은 저마다 즐거운 꿈을 적어 냈다.

이어서 물었다. "네 수명이 딱 일 년 남았다면, 그 일 년 동안 꿈을 이루겠느냐, 아니면 오억 원을 받겠느냐?" 아이들은 하나같이 답했다. "당연히 제 꿈이 중요하지요."

이번에는 그 아이들의 아버지들을 불러 똑같이 물었다.
아버지들의 꿈도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가족과 떠나는 배낭여행, 시골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아내와 사는 것.
그런데 "당신의 수명이 일 년 남았다면, 꿈과 오억 원 중 무엇을 택하겠느냐?" 묻자,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답했다. "당연히 오억 원입니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돈을 아내와 자식에게 남겨 주고 싶습니다."

보라, 바로 여기에 오늘 복음의 비밀이 있다.
아이들은 제 꿈을 근심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목숨과 맞바꾸어 남겨 주려는 그 유산을 가벼이 여긴다.

그러나 아버지는 제 꿈을 접고 제 목숨까지 팔아서라도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려 한다. 자식이 제 꿈만 바라보며 근심할 때, 아버지가 생명처럼 건네려는 그 유산의 값을 자식은 알지 못한다.

우리가 꼭 그러하다. 우리는 내일의 내 꿈, 내 안위, 내 계획을 근심하느라, 아버지께서 당신 외아드님의 목숨과 맞바꾸어 우리 손에 쥐여 주시는 유산 ― 곧 성체 ― 의 값을 알아보지 못한다.

세상의 죄 많은 아버지도 자식을 위해 제 꿈과 목숨을 돈과 바꾼다. 하물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어떠하신가. 당신께서는 하나뿐인 아드님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그분의 살과 피를 성체로 먹여 주신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유산이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32 참조) 아들까지 내어 주신 분께서 우리의 내일을 안 챙기시겠는가. 그러니 내일을 근심함은 단지 소심함이 아니라, 이 위대한 부성애를 짓밟는 교만이다. 근심하며 성체를 모심은, 아버지께서 목숨으로 물려주신 유산을 받으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하고 외면하는 자식의 불효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참 일꾼들은 굶주림의 위협 앞에서도 이 유산을 끝까지 신뢰하였다.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 수녀의 일화가 그러하다. 어느 날 고아원의 쌀이 바닥나고 재정도 텅 비어, 당장 내일 아이들이 굶게 될 형편이었다.

사람들은 빚이라도 내자며 발을 굴렀지만, 수녀는 타협하지 않았다. "걱정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먹이실 것입니다." 그러고는 성당에 들어가 도리어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다음 날 아침, 도시의 파업으로 학교에 배달되지 못한 수천 인분의 빵과 우유가 수녀원 앞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근심이라는 마귀의 속삭임에 한 치도 타협하지 않고 아버지의 약속에 우직하게 순명할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온전한 섭리로 응답하신다.

근심을 내려놓은 손이라야, 아버지의 유산을 가득 받아 쥘 수 있다. 신앙은 내 현실에 맞추어 하느님의 말씀을 가위질하는 일이 아니다. 돈과 하느님을 한꺼번에 섬기려는 영적 간음을 이제 그만두어라. 성체를 모시러 나아갈 때, 내일의 주식과 집값과 노후의 모든 불안을 그 자리에 내려놓아라.

근심을 품은 채로는, 아버지께서 생명으로 빚어 주신 그 유산의 단맛을 결코 맛볼 수 없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에 목숨을 걸어라. 나를 위해 아드님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믿고 우직하게 순명할 때, 비로소 우리의 빈손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풍요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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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2023년 ‘Chat GPT’가 세상에 나왔을 때입니다. 컴퓨터가 사람과 대화하는 기능을 보여주었습니다. 복잡한 프로그램을 몰라도 친구와 대화하듯이 질문하면 컴퓨터가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이제 ‘검색의 시대’가 저물고 ‘대화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인공지능과 함께 어느덧 3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도움을 받은 것은 ‘번역’이었습니다. 한국어 강론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든 작업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부탁하면 실시간으로 제가 하는 번역보다 더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번역을 보여주었습니다. 교구의 공문이나 영문으로 오는 메일도 실시간으로 번역해 주었습니다. 저는 번역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었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 계획과 일정 정리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여행 계획을 질문하면 교통, 숙박, 장소를 정리해 주었습니다. 사목에도 도움을 받습니다. 성경 말씀을 찾아 주기도 하고, 제가 쓴 글을 요약해 주기도 합니다. 지도 대신 내비게이션, 운전 대신 자율 주행이 있듯이 인공지능은 이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2029년이 되면 ‘에이전트 인공지능’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인공지능이 질문에 응답하는 수준이라면, 앞으로의 인공지능은 ‘비서’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기업의 임원에게는 부속실이 있습니다. 부속실 직원은 임원의 일정을 정리하고 필요한 자료를 준비합니다. 앞으로의 인공지능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병원 예약도 대신해 주고, 건강 관리도 도와주고, 은행 업무도 처리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분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기 마련입니다.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개인정보와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기술은 늘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칼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해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상속에 대해서 미국은 한국과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상대적으로 덜 하는 것 같습니다. 잘 키워주고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것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식들도 부모의 재산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독립하면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식이 재산으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만난 이민 2세대들도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재산은 부모님의 것이니 부모님이 알아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재산을 자녀에게 남길 수도 있고, 기부할 수도 있고, 여행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선택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세상의 재물을 많이 물려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더 귀한 것을 물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부모님께서는 말보다 삶으로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부모님은 건강하게 사시다가 하느님의 부르심 속에 선종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봅니다. 자녀들에게 부모의 신앙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신앙 교육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릇과 같습니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되고, 보석을 담으면 보석함이 됩니다. 돈과 성공만 담으면 불안과 경쟁으로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믿음과 희망을 담으면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먼저 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인공지능은 편리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자동차와 좋은 집도 삶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돈도 필요합니다. 건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우리 삶 안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영혼입니다. 편리함이 커질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많은 정보를 얻을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겨야 할 것은 단지 재산이 아니라 신앙의 유산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붙들어야 할 것도 단지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이라는 그릇 안에 무엇을 담고 살아가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가장 먼저 담을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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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 걱정하지 마라”(마태 6,25). 예수님께서는 권위 있는 어조로 인간의 가장 깊은 불안을 들추어내십니다. “목숨”은 먹고 살아야 하는 구체적 생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낙관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불안으로 삶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삶에 대한 염려는 삶을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축소시켜 버립니다.

새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삶의 자세를 보여 줍니다. 새는 씨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않지만, 하늘의 아버지께서 먹이시지요. 여기서 초점은 노동을 부정하며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먹이고 입히는 주체가 누구인지 묻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6,27)라고 물으십니다. 불안과 걱정은 우리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 삶을 소진할 뿐입니다.

이방인들과는 다르게 제자들은 참된 것을 찾아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6,33)을 찾아야 합니다. 그분의 의로움은 마태오 복음서의 황금률이 정확히 알려 줍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7,12)

신앙은 주어지는 오늘을 건네받는 태도입니다. 오늘, 우리 삶은 나의 노력이나 걱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시고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입니다. 누군가가 먹고 입는 문제로 힘들어한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의 의로움을 우리 서로가 챙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어지는 오늘을 걱정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아야겠습니다. 적어도 먹고 입는 것 정도는 걱정하지 않게 서로 챙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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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마태 6,24-34: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신다(24절). 재물은 인간을 종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마음의 노예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재물이 마음을 지배할 때,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노예가 된다.”(De Civitate Dei, 10,13 요약)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을 두려워하거나 섬기지 말고, 그것을 올바르게 관리할 줄 아는 주인이 되라고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하늘의 새와 들꽃을 예로 들어,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30절)라고 말씀하신다. 자연은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을 보여 주는 거울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자연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선을 베푸시려는 신비로운 방법이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마련하셨음을 믿는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Homiliae in Matthaeum, 62,1 요약)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우리가 먼저 하늘의 가치와 의로움을 추구할 때, 필요한 것을 더해 주신다.(33절)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33절) 인간의 궁극적 선은 하느님과의 관계와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데 있다. 일상의 필요와 세상의 재물은 부차적이며, 하느님께 대한 신뢰 안에서 충분히 공급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영혼의 구원과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 모든 인간 활동의 최상 목표이며, 물질적 필요는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충족된다.”(Summa Theologiae, II-II, q.188, a.2 요약)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34절)라는 말씀은 불필요한 미래 걱정을 내려놓고, 현재 하느님께 의지하라는 초대이다. 마음이 하느님께 향할 때, 우리의 일상적 필요와 영적 필요 모두가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재물이나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느님을 주인으로 삼고 세상의 재물은 종으로 삼는 삶이 신앙인의 삶이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우리 마음과 행동을 조율하라는 신학적·영성적 가르침이다.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늘의 보물과 의를 우선하며, 하느님 안에서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길이다. 우리가 매 순간, 재물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주인으로 삼는 삶을 선택할 때, 모든 필요와 걱정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손안에 맡겨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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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늘 사랑이 먼저이지요>

마태오 6,24-34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세상 걱정과 하느님 나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늘 사랑이 먼저이지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사는 것이
먹는 것보다
먼저이지요

먹기 위해 사는 듯한
사람이 많더라도

사람이라면
먹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먹어야지요


사랑하는 것이
사는 것보다
먼저이지요

살기 위해 사랑하는 듯한
사람이 많더라도

사람이라면
살기 위해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기 위해 살아야지요


사는 것보다 먼저인
사랑하는 것이
사는 것보다 다음인
먹는 것보다
먼저이지요


사랑이
먼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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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온전히 의탁하라>

일상을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남모르는 걱정을 하고 산다. 사실 모두가 근심 걱정을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엇을 걱정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걱정해 봤자 아무 소용 없는 걱정을 하는 어리석음은 그만둬야 하겠다. 

한 통계에 의하면,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란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라고 한다. 즉 96%의 걱정이 쓸데없는 걱정이다. 

시편 저자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37,4-5).하였다. 결국 믿음을 가진 사람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모두가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이는 주님께 의탁하고, 믿고 맡기며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는 주님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다. 아무리 걱정해도 해결되지 않는 걱정거리에 매이면 걱정거리만 커진다.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안에 있고, 주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공중의 새나 들판의 꽃들조차도 하느님의 안배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특별히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만물의 영장’이다. 이 인간이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셨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맡겨야 함은 당연하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이러한 물음은 인간적인 걱정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도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헛된 일이 된다.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아야 한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 의탁하고 섭리에 맡기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5,7).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하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의 영원한 생명의 약속으로 희망을 주신 좋으신 주님께 대한 감사로 오늘을 살아야 하겠다. 

“주님, 저희가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 온전히 의탁할 때 영원한 새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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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즉,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가을이 좋은 계절이라는 뜻일까요? 당연히 가장 좋은 계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어원은 당나라 시인 두심언(杜審言)이 지은 시 ‘증조관기(贈趙管記)’에 등장하는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라는 구절에 유래한다고 합니다. 그 뜻은 가을 하늘이 높고 변방의 말이 살이 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좋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좋은 계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힘든 시기를 의미합니다.

당나라와 국경을 마주했던 흉노족은 가을만 되면 말을 타고 쳐들어와 곡식을 약탈하고 노략질을 일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북방 변방에 사는 당나라 사람들은 가을만 되면 언제 흉노가 침략할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결국 ‘가능 하늘이 높고 변방의 말이 살이 찐다’라는 말은 흉노가 쳐들어올 시기가 되었으니 경계하고 대비하라는 말입니다.

그 누가 ‘천고마비’를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까요? 하지만 원래는 가장 걱정되는 계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향한 노력이 필요하고,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지혜를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특히 세상을 살아가며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 하느님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온갖 걱정을 하며,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라고 하십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의 종은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섬김에 있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느님과 재물을 적당히 양립시키는 타협을 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물질이 주는 가짜 안정감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걱정하다’라는 말은 ‘마음이 나뉘다, 찢어지다’라는 어원을 가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걱정은 하느님을 향해야 할 신뢰가 세상의 불안으로 인해 여러 갈래로 찢어지고 흩어진 영적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모으는 방법을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라고 하십니다. 당연히 우리 일상의 필요를 무시하고 정당한 노동을 폄하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 대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걱정 없이 기쁘게 사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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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24-34)

1)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라는 말씀을, 하느님과 재물이라는 두 주인이 있다는 말씀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재물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그것을 하느님 위치에 올려놓고, 하느님처럼 섬기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재물을 섬긴다는 말은,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이 아닌 것을 하느님 위치에 올려놓고 섬기는 것은 모두 우상숭배입니다. 따라서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에도 신앙생활보다 세속 생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마치 시간이 날 때 하는 취미생활처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재물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사회생활도 하긴 해야 하는데, 그래도 신앙인은 세속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신앙인으로서 살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2) “걱정하지 마라.”는, “집착하지 마라.”라는 뜻입니다. 살다보면 어떤 걱정스러운 일이 생길 때가 있고, 그럴 때에 걱정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걱정이 지나쳐서 숨이 막힐 정도라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마태 13,22)

우리는 어떤 걱정거리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걱정하더라도 하느님을 믿어야 합니다.

<걱정되니까 더욱더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걱정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나를 걱정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하며 걱정하는 것을, 눈앞에 놓인 많은 음식들 가운데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하는 것과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만일에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하는 이웃이 옆에 있는데도, 그 이웃을 외면한 채, 음식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3) 26절의 “너희는 그것들(새들)보다 더 귀하다.”라는 말씀은, 우리 입장에서는 “너희는 솔로몬보다 더 귀하다.”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 왕보다 나를 더 귀하게 여기신다.”라고 믿는 것이 우리 모두의 믿음입니다.

27절의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라는 말씀과 34절의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라는 말씀은, 야고보서에 있는,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에 연결됩니다.

한 줄기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을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신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1베드 1,23-25) 허무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들과 함께 허무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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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내일 걱정은 내일에“>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것들 중에서 부정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요. 하나를 놓고 한 사람은 긍정적인데 비해 한 사람은 부정적인 경우가 있지만 그 결과의 차이는 엄청 큰 것입니다.

마침 현대 건설의 회장을 맡았던 고 정주영과 박정희 대통령과의 일화에서긍정(肯定)의 힘이 얼마나 놀랍고 세계적인 현대건설의 위치를 만들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2011.01.20 ‘매일 경제 명사 초청 강의’에서 유승렬 SK주식회사 대표이사가 했던 인용 이야기입니다.

1975년 여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다.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 오십시오. 만약 정사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포기(抛棄)하지요.”

정주영 회장이 물었다. “무슨 얘기입니까?” "1973년도 석유파동으로 지금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 하는데그 돈으로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가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일을 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그래요, 오늘 당장 떠나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5일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대꾸했다.
“무슨 얘기요?”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뭐요!”

“또 뭐요?”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고요”

“물은?”

“그거야 어디서 실어오면 되고요.” 

“50도나 되는 더위는?”

"천막을 치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되고요.“

박 대통령은 부저를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임자, 현대건설이 중동에 나가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와줘!”

정 회장 말대로 한국 사람들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일을 했다. 세계가 놀랐다.

달러가 부족했던 그 시절, 30만 명의 일꾼들이 중동으로 몰려나갔고 보잉 747 특별기편으로 달러를 싣고 들어왔다.

사막의 횃불은 긍정(肯定)의 횃불이다. 긍정(肯定)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긍정(肯定)은 천하를 얻고, 부정은 깡통을 찬다.

또 우리가 많이 들어 왔던 명언이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아무리 좋은 여건이라도 스스로 노력하고 개척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도 달리 어떻게 하실 수 없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와 연결시킬 수 있는 말이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라는 고어가 있습니다.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라는 뜻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천지를 만들어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하신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만들어 주셨어요?

사람에게 좋은 것이 이 세상에 다 널려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그 사람은 많은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느님을 믿고 아무 걱정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마태 6,25)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하늘의 새도 먹여 살리시고 들에 핀 나리꽃도 꾸며주시는 사실을 들어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지하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쓸 데 없는 걱정을 안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걱정하지 마라.”(마태 6,31)

그래서 사람은 이 좋은 세상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고 전적으로 하느님 뜻에 맡기며 사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또 의심을 갖고 사는 사람은 주님께서도 표현하셨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는 사실 부정적으로 살아갈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휘말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겨자씨만한 하느님께 대한 신앙만 가지고 있다면 좋은 것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천진한 어린이처럼 하느님 앞에서 모든 것을 맡기며 기쁘게 지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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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님]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대상이 결국 우리를 다스리고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반복되며 귓가에 맴도는 주님의 말씀은 “걱정하지 마라.”입니다. 이 말씀의 근거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녀들을 잘 아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곧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분께서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당신 자녀들의 어려움과 고통, 눈물과 아픔을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의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우리에게 몸소 마련해 주시며 우리를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 대한 굳은 믿음입니다.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소중한 아드님마저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환호송처럼,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유한 자녀들이고, 하느님께서는 ‘임마누엘 주님’으로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것입니다. 이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님을 더욱 닮아 가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이며 주님의 종 다윗에게 전해진 시편의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니”(시편 89[88],29)라는 말씀은 하느님 아버지의 귀한 자녀인 우리를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날마다 무거운 수고와 힘겨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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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어떻게 사는 사람이 신앙인일까?>

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신앙인의 길일까? 어떻게 사는 사람이 신앙인일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신앙인은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그렇습니다. 신앙인은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신 한 분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곧 자기 자신을 섬기거나, 물질과 재능이나 기능 등의 피조물을 섬기거나, 자기의 판단이나 주장이나 자신의 뜻을 섬기지 않고, ‘주님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사실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우상 숭배요,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일이요, 모독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실 ‘섬김’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 하는 신원과 정체성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주님께 속하여 주님을 믿고 섬기는가, 아니면, 다른 피조물이나 자기 자신에 속하여 자기 뜻과 생각을 주인처럼 섬기고 섬기는가 하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진정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주님께 속해 있고, 하느님 나라에 속해 있음을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둘째로, 신앙인은 ‘걱정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이는 당연히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신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의탁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신앙인은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마태 6,33) 사람입니다. 곧 자신의 성취나 자신의 편리나 이기, 자신의 의로움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그 모든 것에 앞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 찾기’를 삶의 본질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곧 그 모든 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선사되어 와 있는 것을 찾는 일입니다.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이 이미 우리 가운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인의 삶을, 두 주인을 삼기지 않으며, 하느님께 의탁하고, 자신을 걱정하지 않으며, 하느님 나라와 의로움을 먼저 찾는 삶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누구를 섬기도 있는가? 참된 주님이신 하느님인가? 자기 자신이나 자기 생각이나 물질인가? 

혹 그렇게 하느님을 업신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또 나는 지금 무엇을 근심하고 걱정하고 바라고 있는가? 누구에게 의탁하고 있는가? 자기 자신인가? 진정 나는 모든 일에 앞서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분의 의로움을 찾고 있는가? 대체 누구의 기쁨이 되고자 하는가? 자신의 기쁨인가? 하느님의 기쁨인가?

주님! 
제 생각과 편리, 이기심과 자애심에 떨어져,  피조물을 섬기는 우상 숭배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자신을 채우느라 당신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나라와 당신의 의로움이 저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당신만이 저의 주님이시오니, 당신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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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 · 샘 기도>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

주님!
제 생각과 편리, 이기심과 자애심에 떨어져, 한갓 피조물을 섬기는 우상 숭배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재물을 섬기느라, 저 자신을 섬기느라, 주인이신 당신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제가 아니라 당신이 재물의 주인이요, 저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있다가도 없어질 것이 아니라 진정 있는 것, 이미 선물로 준 당신의 나라와 의로움을 찾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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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전교수도회 김종오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오. 6,34)

내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불완전한 우리가 지나치게 다 알려고 하는 욕망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알려는 최초의 인간처럼 하느님의 몫을 탐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일에 대해서 다 알 수 없습니다. 경험이 주는 지혜는 살리지만 결과는 모릅니다. 머리카락 숫자도 모르는 우리는 무지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너무 알려고 해서 탈이 납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하느님의 영역을 우리가 침범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내일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우리의 영역은 오늘뿐입니다. 하느님은 오늘만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내일은 하느님의 영역인데 우리가 그 경계선을 넘어서 생기는 고통입니다. 그 고통이 걱정과 불안입니다. 걱정과 불안은 우리가 경계선을 넘어 주님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신호입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우리의 욕구를 지나치게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꿈을 내일 이루기 위해 오늘 노력하지만, 내일은 여전히 하느님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내일은 우리의 꿈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희망으로 채워진 곳입니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과 동상이몽을 꿉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연약한 우리가 겪었던 아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지금은 과거가 된 그 아픔을 아무도 오늘 다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긴 우리의 상처는 똑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하는 지혜의 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을 남기기도 합니다.

비록 연약한 인간이기에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상처로 두려움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걱정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는 하느님께 이미 바쳤고, 미래는 하느님의 손에 있으며, 우리 삶은 오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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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6,34ㄱ)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

오늘 복음(마태6,24-34)의 제목은 '하느님이냐, 재물이냐'이고,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6,24)하시면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6,34)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새들이나, 들에 핀 나리꽃들을 눈여겨보고 그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지켜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하찮은 피조물들까지도 보살피시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마태6,25)고 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3)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어떻게 다가오셨는지요? 우리가 오늘 복음을 어떻게 알아들여야 하는가? 하느님만 믿고 단순하게 아무 걱정하지도 하지 않으면서, 땀도 흘리지 않으면서 놀면서 먹고 마시는 '무위도식(無爲徒食)'하라는 말씀인가?

오늘 복음이 이런 경종을 울리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런 역설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지금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으로. '선물로 주어진 현재(present)의 시간에 충실하라'는 말씀으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성소, 곧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으로.

'잠'은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는 충전의 시간입니다.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니, 잠시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매일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오늘에 최선을 다하도록 합시다!

"우리농은 흙사랑, 땅사랑, 물사랑, 생명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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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 6,34)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삶은 언제나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이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오늘도 하느님의 것이고,
내일도 하느님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오늘의 삶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초대하십니다.

내일을 염려하기보다
오늘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신뢰와 희망으로 바뀝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지나온
수많은 날들도 
우리의 힘만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걱정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을 소모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 자신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을 온전히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을 살아갈
힘과 은총을 
주십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는 것은
하느님 사랑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은총의 하루하루를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며
감사로 살아가는
오늘 되십시오.

내일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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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묵상글 나눔합니다■
[이름,본명,지역(본당),축일,연령,연락처]를 문자로 보내주세요.
010-3284-9295 | 카톡ID jijiv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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