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은 지금 올해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겠네요.
이른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졌습니다.
잠을 포기하고 일어나 (수풀) 효재 마리아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아니... 무슨 유전자 검사도 아닌데?
멀리 이 미국에 사는 저희 부부의 일상과 거의 95%의 일치를 봅니다.
5%의 차이는 조용한 수풀님네 보다는
나보다 잔소리가 조금 늘어난 가밀로씨
(전립선 때문에 3달에 한 번,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는 남자)에게
제가
(이제 여성 호르몬은 줄어 들어 남성스러워지는 여자)
잔소리 좀 하지 말라! 고 잔소리를 하는 중! ㅎㅎ
서로의 잔소리가 그리워지는... ㅠㅠ
수필가 유병숙님의 글 '우리들의 이야기'를 옮겨 봅니다.
* 우리들의 이야기
- 유병숙 -
남편은 위암 투병 중이다.
건강 검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암은
예상보다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수술 전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항암제로 인한 울렁거림은 날로 심해졌다.
식사 때마다 사투를 벌였지만 토해내기 일쑤였다.
구토가 시작되면 나는 얼른 밥상을 치우고 음식 냄새를 지웠다.
투약이 거듭되자 남편은 체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탈진한 환자를 싣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난생처음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남편은
검사를 받으려고 엉거주춤 일어서다
갑자기 허물어지듯 쿵, 하고 쓰러졌다.
도움을 청하려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급히 소생실로 옮겨졌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은 암 케어 병동에 입원했다.
병동은 만원이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국민 35명 중 1명이 암 환자란다.
닥치고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암 판정 후 우리의 일상은 태풍을 만난 듯 출렁였다.
의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다가도,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 걸까? 의구심이 솟구치곤 했다.
이제 환자들과 병상을 나란히 하고 있으니
오히려 마음의 풀랑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옆 병상의 환자는 50대 남자였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러 항암제를 투여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의사는 포기하지 말고 또 다른 항암제를 써 보자며 달랬다.
망설이는 말들이 오갔다.
절로 귀가 그쪽으로 쏠렸다.
남해에서 온 그들 부부는
서울에 연고가 없어서인지 찾아오는 방문객도 뜸했다.
환자의 부인은 피오줌을 수시로 비워내었다.
갑작스런 입원이라 했다.
날씨는 하루하루 차가워지고 있었다.
늘 무표정이었지만 오가다 마주치면 살짝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한 식경이나 보이지 않았다.
보온병에 물을 받으러 배선실에 갔다가
울먹이며 통화하는 그녀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무거운 목례를 건넸다.
말 없는 위로가 우리 사이에 기류처럼 흘렀다.
건너편 병실에선 자주 통곡 소리가 들렸다.
환자가 위독해지면 1인실인 그 병실로 옮겨졌다.
소위 임종 방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병실은 채워졌다 비워지길 반복했다.
때론 복도까지 울음바다가 되었다.
환자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치며 우는 이,
잘 가시게나 인사하는 친구,
벽에 기대고 우는 딸,
하염없이 복도를 걸으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남자도 있었다.
가족끼리 큰 소리로 싸우기도 했다.
가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가슴을 쓰리게 했다.
하루는 그 병실에서 흘러나오는 담담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아빠, 생각나? 나는 아직도 생생한데…."
가족들은 절체절명의 시각임에도
의연하게 추억을 나누고 있었다.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 있다고 했던가...
듣다 보니 눈물이 목젖을 밀어댔다.
남편의 침상으로 다가앉았다.
잠든 남편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거친 숨결이 느껴졌다.
그의 아픔이 내 명치끝으로 전해졌다.
그가 아프니 거짓말처럼 나도 아팠다.
눈을 뜬 그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타들어 가듯 새까맣게 변한 손이었다.
굳고 딱딱해진 손바닥은 군데군데 허물이 벗겨지고
벌건 속살이 드러났다.
그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바싹 마른 얼굴에 주름이 깊어졌다.
입술에는 피고름이 잡혔다.
남편이 어눌해진 목소리로 아무 이야기라도 좋으니 해보란다.
"당신 목소리, 참 듣기 좋아! "
하는데 귀를 의심했다.
말이 조금이라도 길어질라치면
잔소리 좀 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쏘아붙였던 그였다.
이이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평소 말이 많다는 타박까지 당했는데
막상 멍석을 깔아주니 말문이 막혔다.
정색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참으로 어색했다.
무슨 대단한 스토리를 꾸미려는 것도 아닌데
머릿속이 하얀 게 도무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아라비안나이트'가 떠올랐다.
세헤라자드의 천일야화가 부러웠다.
이야기라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급한 마음에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늘어놓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남편은 나의 두서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전에는 듣는 둥 마는 둥 늘 흘려듣곤 했던 내 푼수 같은 이야기를
그는 참을성 있게 경청하며 몇 마디 맞장구까지 쳤다.
병실에서 쓰는 물품은 구내 편의점에 다 비치되어 있어 편리하다고,
쉼터에서 어린 환우들을 돕는 바자회가 열렸는데 꼬마들 옷을 천 원에 판다고,
대한외래에 들어선 빵집의 빵이 제법 비싼데도 늘 줄을 길게 늘어선다고,
즉석에서 끓여주는 어묵 국물이 끝내준다고,
'빼빼로데이'가 곧 다가온다고,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은행나무 잎이 곱게 물들었다고,
친구가 보내온 쿠폰 선물로 받아온 커피가 맛있다고,
오는 길에 로또도 한 장 사 왔다고,
노을이 오늘따라 아름답다고,
수술할 수 있는 당신은 이 병동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번 시작한 이야기는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갔고
날이 갈수록 낙엽처럼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되풀이되는 야근으로 피곤에 절어 지냈던 그는 얼마 전 은퇴했다.
가까스로 한시름 돌리던 차에 다가온 병마는
그야말로 청천병력이었다.
두근거리며 짜나가던 여행 계획도 모두 무산되었다.
돌이켜보면 젊은 날 우리는
연이어 병석에 누운 시부모님의 병간호와
집안의 대소사를 견디며 종종거렸다.
바람벽에 선 듯 암담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늘 쫓기듯 서로 눈도 맞추지 못한 채 내달려온 세월이었다.
생사를 달리고 있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우리 둘만의 푸근한 시간이 찾아온 지도 모른다.
문득 순간의 꽃을 만난 듯 한 날 한시가 다 감사하게 다가왔다.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
마치 이 세상에서 보호자는 단 나하나뿐이라는 듯,
그렇게 모든 걸 나에게 맡기고 있다.
먼 훗날
"그때는 그랬지!"
웃으며 돌아볼 날이 올까?
울컥 까닭 없는 속울음이 올라왔다.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도 나도 해맑게 웃었다.
우리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 !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jangme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1.01 늙으면 두고 보자! 했던 아내들이 정말 두고 본 댓가를 단단히 치르게 했다네요. ㅎㅎ
헤어지지 않고 살았다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거겠지요.
이제는 친구가 되어 살면 됩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친구가 없기 때문에...
글라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
작성자olive 작성시간 25.12.31 잔소리가 그리워 질까봐 ,, 보내고나서 잘해줄걸 하고 후회될까봐 요즘은 한번더 챙겨주고 따뜻한말을 건네봅니다
서로가 더 아프지않음에
감사하며ᆢ
남편도 십년전 대장암진단을 받고
투병하였으나
다행히 치료도 잘받고
특별히 크게 고생은
덜한듯합니다
물론 본인은 힘들었겠지만^^
보기엔 건강해보이니
약체질인 제가 곁에서
지켜주기도 수월하긴했지요
화가 복이 된다고
생활습관이 달라지고
규칙적이되니
예전보다 건강해진듯하여
감사한마음뿐 입니다
연말을 보내며
점차 세월이 흐르니
주변인들의 부고소식에
많은 생각이 교차됩니다
가사방 식구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답댓글 작성자jangme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1.01 힘든 시간 잘 이겨내시었으니 이제부터는 고마운 날들이 되겠지요...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건강을 지켜주니 전화위복이 되셨습니다.
이제는 하루가 새로운 날입니다.
Olive 님 가정에 축복의 새해가 되시기를 빕니다.... -
작성자베네딕타저요 작성시간 25.12.31 아픔을 견디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요?
마음으로 응원이 얼마나 힘이 되리오마는 기도안에서 나눔이 힘이되고 위로가 되길요....
예수님 사랑이 우리 모두 다독이시니
어떠한 고통이라도 견디고 치유되길 기도합니다
새해엔 영육간에 더 건강하시고
행복한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랑합니다 💜 💕 ❤️ -
답댓글 작성자jangme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1.01 아픔을 받아 들이는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 주시기를 빌지요.
저요님도 프란치스코 형제님도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세요.
늘 감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