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며 우리는 흔히 “모든 것은 주님께서 하셨고,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 고백이 자신의 선택과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겸손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에 대한 ‘오해'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이끄실 때 결코 강제로 끌고 가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구원 역사는 하느님의 일방적인 독주가 아니라, 인간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을 닮은 ‘자유의지’를 부여하셨고, 그 자유를 결코 침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 나라에 ‘초대’하신 것이지, 우리의 결정권을 빼앗아 구원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의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이 조종하는 기계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을 존중하시며, 우리가 당신의 초대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응답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성모 마리아의 ‘피아트(Fiat)’, 이것은 선택의 위대함입니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의 사례에서 이 능동적 응답의 정수를 볼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성령으로 인한 잉태를 예고했을 때, 마리아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답한 것은 하느님의 조종에 의한 수동적 굴복이 아니라, 마리아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닥칠 위험과 고통을 인지하고도, 하느님의 계획에 동참하겠다고 내린 주체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이 자유로운 결정이 있었기에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모친이 될 수 있었고, 인류 구원의 협력자로서 ‘천주의 모친’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의 위대함은 단순히 선택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선택에 자신의 온 존재를 던져 응답했다는 데 있습니다.
참된 겸손은 하느님의 은총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은총에 협력하는 나의 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으십니다.
구원의 길을 걷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동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지만, 그 길을 실제로 걷기로 결정하고 발을 내딛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은 나를 내던져두는 숙명론이 아니라, 하느님의 초대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의지로 기꺼이 “예”라고 답하는 능동적인 자세입니다.
우리가 자유의지로 내린 그 선택들이 모여 비로소 하느님 나라의 잔치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은총은 하늘에서 내려오지만, 그 은총이 이 땅에서 열매 맺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살아있는 응답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