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십(10)의 상징 : 완전함, 전체를 나타내는 수
우리나라에서 전화번호 2424는 이삿짐 센터에서 인기가 있다.
숫자가 갖는 의미 때문이다.
숫자를 세고 계산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 관한 기록 만큼이나 오래됐다.
숫자는 개수를 나타내는 문자이다.
숫자 역사를 보면 수의 각 단위를 기호로 나타낸 초기 이집트 숫자에서 기호로 수를 나타낸
그리스 숫자로 발전됐다.
숫자는 처음에는 벽이나 지면, 판자 등에 필요한 수만큼 줄을 긋는 것으로 표현됐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수(數)에 따라 분류되고 질서가 잡힌다.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존재 자체의 원리는 수에 있다고 보았다. 어떤 문화에서든지
수에는 제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인류 최초 계산기라고 할 수 있는 손가락의 개수는 열 개다.
십(10)은 만족, 충만의 숫자다. 최고나 정상, 그리고 충족을 의미한다.
십이란 숫자는 소위 전체적 수다.
십이란 숫자는 일괄해서 정리한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 가르침에는 세속의 신자에게 주는 오계와 승려에게 주는 오계 등을 합한 십계가 존재한다.
원시인은 자기 손가락으로 물건의 수를 헤아렸다.
옛날부터 숫자 십은 십진법의 기본이었다.
또한 절대성, 이해력 등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를 수학적 수치보다는 상징적 의미에 중점을 뒀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은 십계명일 것이다.
십계명,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기 위해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숫자 십은 완전함, 전체를 나타내는 수로 우선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열 가지 재앙을 경험한 후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열 번째 재앙인 이집트 맏아들과 맏배의 죽음을 경험했다
(탈출 12,37-42).
그 후에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셨다(탈출 20,1-17).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인 살렘왕 멜키체덱에게 드렸다.
"'적들을 그대 손에 넘겨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 아브람은 그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창세 14,20).
또 레위기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수확한 것의 십분의 일은, 그것이 곡식이든 과일이든
가축이든, 주님께 바친다는 규정이 적혀 있다(레위 27,30). 십이란 숫자에는 구원의
성취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포괄적이고도 완전한 요구가 결부돼 있다.
십(10)이라는 숫자는 신약에도 등장한다.
열 달란트나 열 처녀의 비유 등이다(마태 25,1-13).
나병을 앓고 있는 열 사람은 예수님에 의해 치유됐다(루카 17,12-19).
하느님을 거스르는 힘과의 관계에서도 십의 숫자가 등장한다. 불길한 의미로
열 개의 뿔이 나온다.
그것은 사탄의 세력을 표현한다.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묵시 12,3).
열둘(12) : 일곱이나 열처럼 완전함 나타내
"열두 가지 재주 가진 사람이 조석을 굶는다"는 속담이 있다.
재주가 무척 많은데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12라는 숫자를 가장 크고 많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집이 크면 열두 대문, 산이 커서 1만2000봉, 발이 길어 열두 발 상모라 불러왔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숫자 12를 행운의 수로 생각했다.
그런데 반대로 바빌로니아에서 12는 불운을 나타내는 숫자다.
성경에서도 열둘(12)이라는 수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가장 중요한 숫자들 중 하나이다.
성경에서 이 숫자의 중요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왔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뽑아 사도로 삼으셨는데, 온 인류의 전체 구원을 위해서였다.
성경에서 열둘이라는 숫자도 일곱이나 열처럼 완전함, 전체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일 년이 열두 달로 이뤄져 있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모세는 이집트 탈출 후에 열두 지파 수를 따라 시나이 산 위에 열두 개 기둥을 세웠다.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기념 기둥 열둘을 세웠다"(탈출 24,4).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르단 강을 건너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돌 열두 개로
기념비를 세웠다.
"여호수아는 요르단 강 한복판,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의 발이 서 있던 곳에
돌 열두 개를 세워 놓았다.
그것들은 오늘날까지 거기에 있다"(여호 4,9).
대사제 예복 가슴받이에는 열 두개 보석이 있었으며, 그 위에는 각 지파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에 따라, 곧 그들의 이름 수대로 열둘이 되었다.
인장 반지를 새기듯 각자의 이름을 새겨 열두 지파가 되게 하였다"(탈출 39,14).
솔로몬은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관을 두었고, 솔로몬의 여러 건축 사업에는
열둘이라는 숫자와 치수들이 항상 포함됐다(1열왕 4,7).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와 싸울 때도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다
(1열왕 18,31).
열둘이라는 숫자의 중요성은 신약성경에도 나타난다.
우선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신 데서 잘 나타난다(마르 3,13-19).
여기서 12의 의미는 이스라엘 전체 구원을 상징한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도 열둘의 상징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마르 6,43).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언젠가는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마태 19,28).
열둘이라는 상징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곳은 역시 요한묵시록이다.
하늘에 큰 표징과 태양을 입고 발 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다
(묵시 12,1).
또 열두 성문의 열두 천사, 도성 성벽의 열두 초석, 어린 양의 열두 사도 이름 등이 등장한다
(묵시 21,14).
그 밖에도 12라는 숫자가 수없이 나타난다.
▲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하신 예수님.
사십(40) : 새 세대가 시작하는 기간
마흔의 나이를 불혹(不惑)이라 한다.
나이 사십이면 사물의 이치와 세상사에 어느 정도 깨달음이 있어 미혹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자신의 의지나 인생관을 확립하는 시기이고, 주변 여건에 흔들리지 않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고대 유다인의 비문들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를 정확하게
몰랐던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묘비에 적힌 나이들이 정확한 나이가 아니라 어림잡은 나이를 새겨 놓은 것이다.
당시에는 정확한 숫자 개념이 없었다.
성경에 셋, 일곱, 사십이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 그 증거다.
즉, 셋은 적은 것이고, 일곱은 좀 더 많은 것이며, 사십은 아주 많은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 숫자들은 모두 근사치다.
이러한 부정확한 숫자 개념에 따라 유다인들에게 사십의 숫자는 비교적 긴 시간을 의미했다
(1사무 17,16).
성경과 유다인의 전통에서 사십의 수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40이라는 숫자는 노아 홍수에서 등장한다.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벌하기 위해서 40주야 동안 비를 내리신다(창세 7장).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탈출하고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유랑 생활을 했다.
또한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을 산에서 지낸다.
"모세는 구름을 뚫고 산에 올라갔다.
모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그 산에서 지냈다"(탈출 24,18).
엘리야도 호렙 산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기 위해 천사가 주는 음식만으로 40일을 보냈다
(1열왕 19,8).
에제키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을 벌을 상징해 사십 일 동안 옆으로 누워 있었다.
"그 날수를 채운 다음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워서, 유다 집안의 죄를 짊어져라.
하루를 한 해씩으로 쳐서 사십 일 동안이다"(에제 4,6).
요나 예언자는 니느웨가 사십일 만에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처럼 구약에서 사십이라는 숫자는 시련과 준비, 괴로움, 징벌과 관련이 있다.
성경에서 40년은 특별히 구 세대가 지나가고 새 세대가 시작하는 기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신 것이 가장 두드러진 사건이다(루카 4,1-13).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하신다.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사도 1,3).
여기서 40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가 중요하다.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나기 위해 속죄, 보속, 참회, 자신의 쇄신 등으로 준비하는
상징적 기간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교회는 매년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의 만찬 저녁 미사 전까지 40일 동안 사순절(四旬節)을 지낸다.
사순시기는 예수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40일 동안 통회와 보속
그리고 희생으로 재(齋)를 지키는 기간을 말한다.
물론 이 40일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킨 것과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금식한 것, 그리고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재를 지킨 데서 유래한다.
- 허영엽 신부님(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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