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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 2026.6.23.연중 제12주간 화요일 - 누가 진정 행복한 사람인가?

작성자이슬|작성시간26.06.23|조회수100 목록 댓글 0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6.6.23.연중 제12주간 화요일 

2열왕19,9ㄴ-11.14-21.31-35ㄱ.18 마태7,6.12-14

 

 

누가 진정 행복한 사람인가?

“분별의 지혜, 지혜로운 사랑, 좁은 문의 선택”

 

 

한 눈에 들어온 <희망으로 빛나는 태양인데>라는 옛 자작시입니다.

 

“태양은 저토록 눈부시게

 희망으로 

 빛나고 있는데

 사람들은

 왜 태양을 등지고

 절망의 어둠 속에 방황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1006.6. >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옛 현자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분발의 노력을 다하게 합니다.

참 대단한 노력가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노력에 한계를 두고서는 재능에서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다산>

노력하는 천재 다산이었음을 배웁니다.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칩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너는 지금 미리 선을 긋고 물러나 있구나.’”<논어>

 

공자 역시 진리 탐구에 종신불퇴終身不退의 대단한 노력가였음을 봅니다.

평생 노력해야 할 평생과제가 참 좋고 멋진 그리스도인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코 이런 노력에 지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바로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첫째, 지혜입니다.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내가 좋다고, 대부분 사람이 좋다고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모두가 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요, 내가 진리를 사랑한다고

모두가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답은 하나 그에게 맞는 것을 해주는 것이니 바로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바로 다음 대목에서 예수님의 분별력의 지혜가 빛을 발합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거룩한 것을 욕되게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처럼 참 다양합니다.

이건 차별이나 무시가 아니라 지혜로운 분별입니다.

사랑의 배려, 사랑의 분별입니다. 분별의 잣대는 사랑이자 지혜입니다. 

 

둘째, 사랑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랑이 황금률黃金律입니다.

예수님이 10세쯤 죽은 유다인 랍비 힐렐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어느 사람이 시험하듯 그가 한발로 서 있는 동안 전 토라를 요약할 수 있는 한 말씀을 그에게 가르쳐줄 것을 청했습니다. 

 

“네게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마라. 이것이 토라의 전부다. 가서 그것을 공부하라(go and study it).”

 

평범하나 만고불변의 사랑의 진리입니다.

가장 포괄적인 계율은 황금률과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요약됩니다.

동서양 공통적인 진리가 황금률의 사랑입니다.

예수님 역시 이와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기원후 3세기 로마의 황제 알렉산드로 세베루스가 이 문장을 금으로 써서 자기 거실 벽에 붙인데서 유래한

황금률黃金律입니다.

예수님은 이 황금률을 새롭게 표현해 내십니다. 보답을 바라고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솔선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고, 예수님은 이 교훈을 율법과 예언서, 즉 성경 전체의 정신을 종합한 말씀으로 제시합니다.

사랑이 지혜입니다. 평범한 듯하나 황금률보다 더 좋은 사랑의 지혜는 없습니다. 

 

셋째, 선택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선택이 좁은 문입니다.

오늘 열왕기 하권, 유다의 히즈키야 임금은 좁은 문을 선택했고 간절한 기도와 더불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아시리아 임금을 물리쳤으니 좁은 문은 생명의 구원의 문이 됐음을 봅니다.

 

결코 좁은 문은 비상한 것이 아닙니다.

좁은 문에서 태어나 세상 마칠 때까지 자발적 원의와 기쁨으로 좁은 문의 여정을 선택하여 사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누구나에게 주어진 각자 고유의 <좁은 문>이요, 산상설교의 교훈대로 살 때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이끄는 복된 <생명의 문>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역시 결코 값싼 은총의 좁은 문이 아님을 봅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드는 지옥에 이르는 문은 화려하게 포장된 넓은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좁은 문을 찾아 수도생활에 입문한 수도자들이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힘겹게 각자 고유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마련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밖에서 보기에 좁은 문이지 자발적 사랑과 기쁨으로 살아갈 때 날로 넓어지는

감미로운 생명의 넓은 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이 이 진리를 알려 줍니다.

 

“좁게 시작하기 마련인 구원의 길에서 도피하지 마라.

그러면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을 달리게 될 것이다.”<성규;머리48-49>

 

성인은 겸손의 마지막 단계에서 원숙圓熟하게 잘 익은 사랑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별로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지키기 시작할 것이니,

지옥에 대한 무서움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좋은 습관과, 덕행에 대한 즐거움에서 하게 될 것이다.”<성규7장 68-69>

 

새삼 자발적 순수한 열정으로 좁은 문을 선택하여 훈련하여 습관화할 때 좁은 문은 생명의 문이 되고

정말 멋지고 자유롭고 부요하고 행복한, 지혜로운 참삶의 실현이 될 것입니다.

좁은 문을 지향하여 써놨던 <언제나> 란 자작 고백시가 생각납니다.

 

“언제나!

 높이 보다는 깊이를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드러나기보다는 드러나지 않음을

 복잡한보다는 단순함을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을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시끄러움보다는 고요함을 

 요란함보다는 조용함을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을

 부수적인 것 보다는 본질적인 것을

 껍데기보다는 알맹이를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라

 하느님만을 추구하라

 언제나!

 ‘오, 주님을 찾는 마음은 즐거워하여라.’(시편105,3ㄴ)

 ‘늘 그분의 얼굴을 그리워하여라.’(시편105,4ㄴ)”<2006.6. >

 

누가 참으로 멋지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입니까?

평생 하느님을 찾는 사람, 즉 분별의 지혜를 지닌 사람, 지혜로운 사랑을 지닌 사람, 지혜로운 선택의 사람,

바로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런 지혜롭고 부요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으로 변모시켜 줍니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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