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연중 제2주 월요일
복음: 마르 2,18-22: 신랑을 빼앗길 날 단식하리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단식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18절) 하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19-20절)라고 말씀하셨다.
유다인들은 일 년에 한 번 속죄의 날에 의무적으로 단식했지만,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의 고행을 본받아 자주 단식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매주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는데 예수의 제자들은 먹보요 술꾼으로 통한 스승의 영향으로 예수 생전에는 속죄의 날을 제외하고 단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만사 모든 일은 때가 있는 법이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건강할 때가 있으면 아플 때가 있고, 씨뿌릴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으면 기쁠 때가 있는 법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은 혼인잔치의 시기라서 기뻐할 때라고 말씀하신다.
구약에서는 흔히 혼인잔치의 상징으로써 종말론적 구원을 서술하는데 예수께서는 당신의 시대야말로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시기, 즉 구약의 약속이 실현되어 종말론적 구원이 이룩되는 시기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혼인식은 요한복음에 의하면 갈바리아 산 위에서 딱딱한 침대인 십자가 위에서 치러질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형식적인 단식행위를 비난하신다. 단식을 많이 하는 것은 바로 열심한 것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단식 그 자체는 하느님을 공경한다는 관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며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을 느껴 봄으로써 이웃 사랑 실천의 동기가 될 수 있는 좋은 행위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단식행위로써 실적만 채우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거짓된 마음을 예수님은 신랄히 비판하신다.
소위 단식한다는 자들이 시기하고 질투하며 싸움이나 하고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다니 될 말인가? 그것이 그들의 위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단식과 금육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실적만 채우려는 단식과 금육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이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완성될 때 그것이 참다운 단식이며 금육인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자선이다”.
또 새것(새 천 조각, 새 포도주)과 낡은 것(낡은 옷, 낡은 가죽부대)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혁신적이고도 위력적이어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에 맞갖은 ‘회개’를 통하여 새로운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와 함께 항상 기쁘고 주님으로 충만한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자.
-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
가톨릭 사랑방 cafe.daum.net/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