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복음: 루카 1,57-66.80: 아기의 이름은 요한이다.
오늘 교회는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교회 전례 안에서 탄생 자체를 축일로 기념하는 이는 주님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요한 세례자 세 분뿐이다.
이는 요한이 구원 역사 안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한 마지막 예언자이자 새로운 계약의 문을 여는 분이었다.
1. 이름과 정체성: “요한”=하느님의 은총
루카 복음은 요한의 이름 선포와 즈카르야의 입이 열리는 사건을 긴밀히 연결시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율법과 예언의 시대가 닫히고, 복음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라고 해석한다.
“요한의 이름이 선포되자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이는 율법이 끝나고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함을 뜻한다.”(Enarr. in Ps. 85,4)
“요한”이라는 이름이 “은총”을 뜻한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 자체가 이미 복음의 무상성과 선물임을 드러낸다.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의 은총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 그것이 바로, 요한의 이름 안에 담겨 있다.
2.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한 예언자
요한 세례자는 태중에서 이미 주님을 인식하고 기뻐 뛰었다(루카 1,41).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였다.
그의 생애 전체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Hom. in Matth. 의역)
즉, 요한의 사명은 출생 이전부터 하느님께 의해 준비된 것이었다.
이는 교회가 가르치는 소명의 신비를 드러낸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며, 우리 삶 전체를 당신 계획안에서 준비해 주신다.(예레 1,5 참조)
3. 예언자적 위대함: 자신을 비움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 세례자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요한의 위대함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철저히 자신을 비운 겸손에 있었다.
그는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라고 고백하며, 자신을 줄이고
오시는 분을 드러내는 데 온 삶을 바쳤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강조한다.
“요한은 자신이 빛이 아님을 고백하였다. 참된 겸손이야말로 사람을 올바른 자리에 세운다.”(In Ioann. Evang. Tract. 의역)
4.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본 세례자 요한
교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요한 세례자는 구세주의 길을 준비하도록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분으로,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고리이다.”(523항 요약)
요한은 율법과 예언이 복음으로 이어지는 다리다. 그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자리를 열어 주는
봉헌이었다.
5.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요한 세례자는 진리를 증거하다 목숨을 잃은 예언자였다.
그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하고 있다.
내가 아니라, 주님을 드러내는 삶과,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세상의 권력과 불의 앞에서도 진리를 숨기지 않는 용기와 우리의 존재와 이름이 ‘요한’,
곧 ‘하느님의 은총’이 되도록 살아가는 것이다.
6. 맺음말
오늘 우리는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축일로 기념하면서, 그의 존재가 전하는 메시지를 마음에 새긴다.
그는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했고, 오직 오시는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살았다.
우리 또한 요한 세례자처럼 주님의 길을 닦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
가정과 일터, 교회와 사회 안에서 겸손과 용기로 주님을 드러낼 때, 우리도 요한 세례자의 삶을 이어가는
“하느님의 은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글쓴이: 松谷 조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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