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사도행전 3,11-26 루카 24,35-48
부활은 엄청난 사건이지만, 현실의 일상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기도 합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분명한 희망이 되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의혹의 대상이 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환상처럼 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시고, 직접 만져 보라고 하셨으며, 심지어 물고기 한 토막을
잡수셨습니다. 또한 성경 말씀도 풀이해 주셨습니다. 곧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멀리 계시는
신비로우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함께 계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현존을 보도록 초대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본다’라는 말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곧 단순히 눈으로 보는 단계,
주의 깊게 바라보는 단계, 그리고 보이지 않는 뜻까지 깨닫는 단계입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놀라서 보고, 이어서 주의 깊게 살펴보다가, 마침내 믿음으로 부활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돌아봅시다.
부활은 단순히 과거의 기적이 아니라, 나를 새롭게 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내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라고 하셨듯이 우리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증인으로서 우리가 전할 것은 화려한 기적이 아니라 십자가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과 죄의 용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 우리 삶 안에서 열매 맺어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때, 부활은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 춘천교구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2026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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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현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사도행전 3,11-26 루카 24,35-48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오늘 하루도 부활한 예수님의 하루처럼 살기를 소망합니다.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의 맛
신학교 시절 수업을 시작하면서 교수신부님이 대뜸 창밖의 하늘을 다 같이 보자고 하셨습니다.
“오늘 하늘이 참 멋지죠?” 매일 보는 하늘 풍경에 대수롭지 않게 “네 멋있습니다” 하고
신학생들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교수신부님이 한마디 덧붙이십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저 하늘은 천지창조 이래 단 한 번도 반복된 적 없는 하늘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십니다.
무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대단하신 분께서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처럼 음식으로 허기를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뒤집어 이야기한다면 우리들의 일상 안에서도 부활한 삶을 체험할 수
있다는 초대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며 살아가는 일상들, 먹고 마시고, 자고 말하고, 웃고 슬퍼하는 모든 순간들 안에서
부활의 삶, 참된 삶을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오늘은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었던
하루라는 것, 내가 지금 숨쉬고 하느님을 의식하고 이웃들과 함께 신앙을 고백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 서울대교구 남창현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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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사도행전 3,11-26 루카 24,35-48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주간 첫날,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루카 24,34)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엠마오로 가다가 되돌아온 두 제자들도 그들이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서시며 당신의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그러나 제자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마치 바다를 걸으신 예수님을 보고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보아라.”
(루카 24,38-39)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증명하시기 위해 손발의 상처를 보여주시며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보고도 믿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당신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우리는 보고도 믿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히브리인들이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왔건만 기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목이 뻣뻣하여 믿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의 삶에서 벌어지는 기적들을, 특히 성체성사를 매일 거행하면서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보고 만져보라고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수시면서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 살아계심을 증명해 보여주시기까지 하십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제자들과 여전히 친교를 이루고 함께 사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줍니다.
이토록 보여주고, 만지게 하고, 함께 먹으며 친교를 나누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제자들은
차차 눈이 열려갑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어야 했습니다. 진정 필요한 한 가지,
그것은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은 기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부터 오는 까닭입니다.
마침내 '성경 말씀'을 들려주심으로써 제자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마태 24,45)
이는 부활신앙이 기적을 보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여는 열쇠임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부활의 생명을 부어주십니다.
그 지고한 ‘사랑’을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마음 속 깊은 곳을 여시어,
침묵의 언어로 새겨진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깨달은 바를 제 삶으로 인쇄하게 하소서.
당신 사랑을 꽃피우소서.
<오늘의 샘 기도>
주님!
제 마음을 열어 주소서.
제 뼈에 새겨지고 제 위장 속에 부어진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게 하소서.
당신 말씀으로 제 마른 뼈가 살아나고,
제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게 하소서.
당신 무덤의 문을 열 듯, 성소의 장막을 가르듯,
제 마음의 빗장을 벗기고, 저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부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