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제님 수도자님 방

부활 제6주간 수요일 / 김준철 신부,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오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효재마리아(수풀)|작성시간26.05.12|조회수85 목록 댓글 5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사도행전17,15.22─18,1  요한 16,12-15

 

오늘 제1독서를 보면 바오로 사도는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에서 연설합니다.

당시 아테네는 교육 도시로서 명성이 매우 높았으며, 시민들은 새로운 학문에 대한 갈망과 함께

종교심도 깊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우상 숭배에 물들어 있었기에 온갖 것에 이름을 붙여

신격화하여 제단을 만들어 섬겼던 것입니다. 더욱이 아테네 시민들은 아직 자신들이 모르는 신이

분명 있으리라고 생각한 나머지 ‘알지 못하는 신’까지 섬긴 것입니다.

 

오늘 주목할 점은 바오로 사도의 태도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아테네 사람들을 대하는 바오로 사도의 지혜와

포용력이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아테네 시민들이 세운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한 제단을 언급하면서,

바로 그 알지 못하는 신이 ‘하느님’이심을 자연스럽게 말한 것이지요. 이 방법은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들의 무지와 우상 숭배를 무조건 탓하기보다, 그들 안에 심어진 복음의 씨앗을 발견하여,

그 싹을 키워 주는 이런 방법도 바람직한 선교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복음을 전하면서,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의 환경과 입장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참되고 변하지 않는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입과 손이 되어 말씀을 널리 전하도록

성령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청해야 하겠습니다.

 

/서울대교구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사도행전17,15.22─18,1  요한 16,12-15

 

진리 안에 머무는 것은 타인에 대하여, 나아가 하느님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말하고 행동합니다. 각자의 생각을 고쳐 하나의 사실과 정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고 다듬는 것이 진리 안에 머무는 일입니다.

진리는 다름의 자리에서 서로를 향한 열린 눈과 귀를 간직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을 진리의 영께서 일깨워 주십니다. 진리의 영께서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믿음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길잡이시며 버팀목이셨습니다.

 

진리의 영께서는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신앙의 정답을 제시하시는 분이 아니시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아버지 하느님께 들으신 것을 알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여러 가르침은 획일화되고 화석이 되어 무조건 그대로 수행해야 하는 정언 명령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로 채색된 화려한 그림과 같습니다.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진리의 영께서 이어받으시고, 아버지 하느님께 들은 이야기를

진리의 영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과 같이, 신앙인들은 서로의 다른 생각을 교환하고 교환한 자리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누리는 개방적이고 초월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각자의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다듬고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른 이와 우리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 위하여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합니다.

기도와 묵상은 저 혼자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느님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사람들과의 친교를 되새기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

 

오상선 바오로 신부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사도행전17,15.22─18,1  요한 16,12-15

 

말. 말. 말!

 

나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사는가? 입이 있기에 말을 하고 살아야 함은 당연할진대

어떨 때는 쓰잘 데 없는 말을 할 때도 많고 안해도 될 말을 할 때도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할 때도 있고

때로는 반대로 꼭 말을 해야 할 때도 힘이 없어서 말 못하고, 말하면 누군가 다칠까봐 가만히 있기도 하고,

심지어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것 같아서 말을 못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이 말 때문에 수많은 문제들이 야기된다.

말 때문에 상처를 입고 오해가 생기고 관계가 나빠지기가 일쑤다.

그럼 어떤 식으로 말하면서 살아가야 하나? 그 원칙을 한번 복음에 비추어 정리해 보자.

 

1) 먼저 할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슴에 담아두자.

된장이 맛이 있기 위해서는 오래 담구어 두어야 하고 술이 맛이 있기 위해서는 오래 숙성시켜야 한다.

말도 다 입으로 내뱉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때론 가슴 속에 묻어두어야 한다.

자식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쓰잘데 없는 말을 줄이자.

자기를 자랑하고 드높이는 말, 과장해서 하는 말, 남보다 더 많이 아는 듯이 보이기 위해 하는 말,

남을 험담하는 말,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 욕설 등은 내 입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기에 가능한 한 줄여 나가야 한다.

 

3) 꼭 할 말은 더 많이 하자.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를 드리는 기도, 남을 칭찬하는 말, 감사하는 말,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위로의 말, 용서를 청하는 말, 이런 말들을 하면 할 수록 내 입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기에

더욱 더 늘여나가자. 침묵만이 금이 아니다. 침묵이 금이라면 이러한 말들이야 말로 보석들이다.

 

4) 입보다는 눈으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말하자.

전철을 타고 갈 때마다 늘상 만나게 되는 "예수 믿으시오!"하는 소위 쟁이들을 만날 때마다

입보다는 마음과 행동으로 설교해야 함을 더더욱 느끼게 된다.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눈으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야 함은 당연지사...

 

예수님은 입보다는 몸으로 말씀하셨다. 그분의 삶 자체가 하나의 설교였다.

그분은 아직도 나에게 할 말이 많으신데 그냥 마음 속에 품어 두신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 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말씀은 <바오로, 너를 사랑한단다!> 이리라.

 

그 사랑을 말로 하기보다는 눈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하셨기에

이는 내가 진리의 영 안에서 올바로 해석할 줄 알아야만 알아듣기 때문이다.

 

<주님,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고백드려야겠지만 입으로 보다는 나도 눈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내 삶으로 그 응답을 드려야 하리라. 아멘.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노익장 | 작성시간 26.05.12 찬미예수님

    "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청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댓글 이모티콘
  • 작성자whtjd | 작성시간 26.05.12 감사합니다.
  • 작성자son domingo | 작성시간 26.05.12 평화를 빕니다
  • 작성자마지 | 작성시간 26.05.12 감사합니다.
  • 작성자햇살지기 | 작성시간 26.05.13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