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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토요일 / 신문갑 신부, 김동환 신부,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작성자효재마리아(수풀)|작성시간26.06.05|조회수87 목록 댓글 3

 

신문갑 신부

 

연중 제9주간 토요일

마르코 12,38-44

 

신앙생활의 기준은 믿음의 중심이다

  

오늘 복음은 율법학자들과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믿음의 모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의 신앙생활과 가난한 과부의 신앙생활을 구분 짖는 유일한 기준은

바로 믿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로 구분됩니다.

 

율법학자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그 믿음의 중심은 철저히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합니다.

율법학자들에게 있어서는 하느님의 말씀도, 하느님의 뜻도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해 이용됩니다.

 

이들에게 하느님과 신앙은 다른 사람에게 인사 받고,

회당이나 잔치에서 윗자리,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챙기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결국 이들에게 신앙생활은 자기 자신을 위한 하느님과의 거래가 되어 버립니다.

 

복음에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이들에게 있어서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 역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투자의 의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의 모습을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

“이러한 자들은 더욱 엄중한 단죄를 받을 것이다.”

 

반면에 가난한 과부의 신앙생활 속에는 그 믿음의 중심이 철저히 하느님께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 사실은 과부가 보여주는 봉헌 하나만으로도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과부가 보여준 봉헌은 율사들이 보여준 모습과는 정반대로 그 모든 것보다 우선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진 봉헌이었습니다.

 

과부의 봉헌 속에는 어떠한 계산도,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능력껏 아낌없이 바치는 모습, 주님을 찬양하며 내 가장 소중한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모습이 담겨져 있는 아름다운 봉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러한 과부의 봉헌을 극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우리들의 신앙 생활속에는 율법학자의 모습도, 가난한 과부의 모습도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주님께 받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주님을 찬양하며

아무런 조건없이 오로지 주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내 신앙의 중심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도 있지만 또 때로는 내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주님과 거래를 하며

내 뜻에 주님을 맞추려는 마음으로 철저히 나 자신을 신앙의 중심으로 두고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이번 한번만 해주시면 제가 이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기도해 드릴테니 이번 한번만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며 하느님과 흥정을 벌이고

“내가 이렇게 하느님께 정성을 들였는데 어떻게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러 실수가 있느냐“

원망하며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실 자체에 회의를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두가지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가 하느님께 드려야할 믿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가난한 과부처럼

하느님께 인정받는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부산교구 신문갑 신부

 

**********

 

김동환 신부

  

연중 제9주간 토요일

마르코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 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 12,38-­44)

  

우리가 헌금할 때 그 정성과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을 오늘 복음에서 들려주는 과부의 헌금이야기는

자기가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을 사서 먹을 돈을 모두 하느님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옛날 예수님이 사시는 시대에 유다인들은 하느님께 바치는 흠숭즉 봉헌을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헌금도 상당히 많이 바쳤다고 합니다.

많은 돈을 내놓는 부자 옆에서 한 가난한 과부가 렙톤 2개를 넣었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참고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렙톤은 그리이스에서 가장 가치가 낮은 화폐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모습을 보고 계시다가 이렇게 칭찬하였습니다.

"이 부인은 여기에 있는 어떤 사람보다 많은 헌금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많은 돈 중에서 얼마를 헌금하였지만, 이 부인은 있는 것을 모두 다 헌금한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재산 중에 일부를 떠에서 남겨 놓고 그 일부를 헌금했지만 ,

이 부인은 아주 작은 돈을 헌금하였지만 가지고 있던 것을 몽땅 내놓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돈의 많고 적음을 따지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소유한 모든 것을 바쳤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마음에 든 것입니다.

 

그녀는 진실로 하느님을 믿었기에 모든 것을 바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산을 하고 때때로 한 부분만을 바치지는 않습니까?

여기서 아주 중대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진실로 하느님을 믿고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뿐인 당신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어놓으셨습니다.

기꺼이 당신 생명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을 조금이나마 우리가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은 바로 그 과부가 헌금한 마음과

똑같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자신이 쓰고 남은 여분의 것을 하느님께 이웃에게 바친 것이 아니라

가난과 궁핍 속에서, 곧 죽어 가는 마당에서 바친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여인의 마음을 느낄 수 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자신이 필요한 것까지 내 놓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마음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 과부는

하느님의 마음에 꼭 든 이라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헌금할 때 그 정성과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하루 기쁘고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부산교구 김동환 신부

 

*************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9주간 토요일

마르코 12,38-44

 

지도자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이끌고 가르친다는 것은 그 이상의 막중한 책임이 뒤따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삶의 모범으로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오를수록 그것을 지키기가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보여 주어야 할 모범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느새 마음 안에 교만함과 공명심이 더 커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의 공명심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무를 공동체에 대한 봉사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명예로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타인을 억누르고, 자신들의 가르침과 견해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어떤 것을 가르치든지, 그 수단과 방법만을 가르치는 것은

올바른 지도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혼을 담아서 그것에 몰두하고, 자신의 온 삶을 담아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이고, 그 자체가 진정한 가르침이고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비록 액수가 렙톤 두 닢에 불과했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자신의 온 생명을 바친 것이기에,

어떤 헌금이나 어떤 가르침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봉헌이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가진 직무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참된 삶을 보여 주는 사람이 진짜 스승이요, 참된 봉사를 보여 주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광주대교구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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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son domingo | 작성시간 26.06.05 평화를 빕니다
  • 작성자whtjd | 작성시간 26.06.05 감사합니다.
  • 작성자노익장 | 작성시간 26.06.05 찬미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헌금할 때
    그 정성과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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