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마티아 신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야 49,1-6 사도행전 13,22-26 루카 1,57-66.80
주님의 길을 미리 닦은 요한 세례자
경부고속도로 휴게소 중 아름답기로 유명한 금강휴게소 근처에는 한 위령비가 있습니다.
지금은 찾는 이들의 발길이 뜸하지만, 경부고속도로 건설 시 순직한 분들을 기억하기 위한
위령비 입니다.
1970년 7월 7일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한국경제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사의 큰 역할을 한 고속도로이지만,
1960년대 당시 열악한 장비와 상황으로 인해 건설 중 77명이나 사망했을 정도로
당시 고속도로의 건설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은 시간이 지나도 이분들과 같이 이름 없는 영웅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길을 미리 닦아준 분들이라 할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미리 닦은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분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며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고 만백성의 회개를 촉구하는
사명을 띠고 오셨습니다.
한 생명이 어머니의 태중에 잉태되어 태어나 어른으로 자라는 것을 보면
생명의 신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기가 유약한 모습으로 처음 세상에 드러낼 때 그가 어떤 인물이 될 것인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부모들은 다만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이름은 자기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이것저것 가려서 많은 숙고를 한 후에 이름을 짓게 됩니다.
또한 그 자식은 부모가 지어준 그 이름을 빛내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필생의 노력을 다하게 됩니다.
사람은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명언도 있을 정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세례자 요한을 두고 이름을 짓기 위한장면이 나옵니다.
요한의 이웃과 친척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기 부모님은 요한이라고 불러야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인간은 이미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즉 각자 다른 소명과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의 이웃이나 친척들처럼
하느님께서 주신 부르심과 능력보다 인간적인 생각이나 능력의 이름으로 부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자비로 태어나 사람들에게 구세주 예수님을 알리며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며 회개의 세례를 주었습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처럼 우리도 하느님께서 베푸신 자비의 소명을 깨닫고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겸손하게 인생의 길을 걸어갑시다.
/ 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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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행도 가롤로 신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야 49,1-6 사도행전 13,22-26 루카 1,57-66.80
소리, 그리고 말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제가 근무했던 해성고등학교만 해도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 전화벨 울리는 소리,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클릭하는 소리,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밝고 큰 웃음소리,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와서 각종 서류발급을 요청하는 소리 등등.
그렇게 많은 소리들 가운데서도 별 탈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저의 귀가 익숙해진 탓도 있고 제가 필요로 하는 소리에만 신경을 집중하는 탓도 있겠지요.
또한 저 역시도 다른 사람 못지않게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제가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행정실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에게 내리는 업무지시 소리,
특강이나 수도원 소식지 등 부탁받은 글을 통해 지껄였던 소리(글),
지난 사순 시기 동안, 그리고 그동안 사제 직무를 수행하며 미사 때 했던 강론이나
여러 본당에서 했던 특강 때 내뱉은 소리 등등.
소리의 바다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수많은 소리들이 발생했다가는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유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한 귀로 들어와서 다른 한 귀로 나가버리지요.
그러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귀에 들려온 말씀은 마음속에 오래 머물고 나아가 삶의 모습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그것은 말씀이 아니라 소리입니다.
요즘 제 안에서 머물고 있는 말씀은 “쓸모없는 종”(루카 17,10)입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고 섬기러 오시어 당신의 전 생애를 바쳐
인간을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제는 섬기는 자, 다시 말해 종입니다.
그것도 쓸모없는 종입니다.
이 말씀이 제게 머물고 있는 이유는 종인 주제에 그동안 주제 파악도 못하고
주인처럼 행세해 왔던 지난날의 제 모습 때문입니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올해로 19년째인데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냐고 책망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말씀이지만 그동안은 일반 신자님들이 주인 대접을 해주는 것에
맛 들여 애써 외면하고 아닌 채 해왔었습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제 주제를 알고 그렇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저는 아무 여운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라
세례자 요한처럼 말씀이 오실 길을 닦는 ‘소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저 소리만 요란한 쓸모없는 종,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입니다.
/ 마산교구 윤행도 가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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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한준 롯젤로 신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야 49,1-6 사도행전 13,22-26 루카 1,57-66.80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성 요한 세례자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회개의 세례로 사람들을 준비시킨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이분의“삶”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알림’과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며, 신약의 시작과 함께 맞이한 “죽음” 또한 ‘선구자’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탄생”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뻐하며 할례식에 참석한 이웃과 친척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기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친척 가운데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다며 의아해 하지만,
이번에는 아버지 즈카르야가 칠판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씁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부모는 이미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루카 1,13)는 명을 가슴에 품고, 머리에 새기며,
그대로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이 부부의 “안 됩니다.”라는
거절이었을지 모릅니다.
‘우리 민족이 하던 대로~, 지금까지 해 왔으니까~ 아이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나, 친척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관습과 전통입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관습과묵은 전통을 과감히 깰 수 있는 거절 없이는
새 시대는 열리지 않습니다.
나아가 맹목적인 거절로 끝나지 않고, 천사가 알려준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다.”라는 단호한 순명이 뒷받침 되어야 구원의 새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전통과 악습에 대한 거절’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명’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는 세례자 요한이 온 삶을 다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최고의 준비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성 요한세례자는 예수님께서 여시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최고의 준비가 회개이며,
회개는 과거의 악습에 대한 거절이고,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명임을 자신의 탄생으로
손수 알려주셨습니다.
지금!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아버지의 이름을 따야 한다.’ ‘친척들의 이름을 가져와야 한다.’며 구태의연한 사고와
끊어버리지 못하는 묵은 악습에 사로잡혀 새로운 시대를 살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과감히 “안 됩니다.”라고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라며 과감하고 당당하게
하느님의 뜻에 순명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회개하여 새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 대구대교구 여한준 롯젤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