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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전삼용 요셉 신부 / 2026,6,24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 당신의 이름은 누가 지어 준 것입니까?

작성자효재마리아(수풀)|작성시간26.06.23|조회수171 목록 댓글 8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6년 가해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루카 1,57-66.80

 

당신의 이름은 누가 지어준 것입니까? 

 

찬미 예수님! 하루도 또 잘 지내셨죠? 오늘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복음 묵상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즈카르야 주니어라는 집안의 든든한 전통을 단호하게 깨부수고,

천사가 일러준 대로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 짓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요, 그가 누구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며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증명하는 거룩한 낙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우리는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읊조리지만, 실제로는 누구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갑니까? 내 자식의 이름이 명문대 합격자 명단에 오르기를,

내 이름이 세상의 성공한 자들의 명부에 오르기를 미친 듯이 갈망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드높이기는커녕, 하느님을 내 이름과 내 집안의 대를 빛내주는 소원 수리 자판기로

철저히 조작해 버립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내 발아래 짓밟고,

내 이름을 우상으로 세우는 끔찍한 영적 교만입니다.

 

하느님의 질서를 무시하고 자기 이름을 드높이려 했을 때 벌어지는 비극은 구약 성경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에 명백히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교만에 빠져 "자, 성읍과 탑을 세워 우리 이름을

날리자." 하며 탑을 쌓았습니다. 내 탐욕으로 내 이름을 높이려 한 결과는 처참한 혼돈과 파멸뿐이었습니다.

 

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순명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내가 너의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하겠다."

라고 약속하십니다. 진정한 영광과 이름은 내가 편법으로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율법에 순명할 때 하느님께서 친히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고 신해철 씨의 노래 중에

어릴 적 키우던 병아리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그 500원짜리 노란 병아리에게

얄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죠.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 그 작은 미물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내 슬픔을

나누고 내 곁을 지키는 나와 동등한 친구로 격상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세례명을 주시며 이름을 지어주셨다는 것도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너는 한낱 썩어 없어질 흙먼지가 아니라,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맞바꿀 만큼 나와 동등하게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만약 오늘 복음의 아기가 사람들의 뜻대로

즈카르야 주니어라는 이름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훌륭한 인간 사제는 되었겠지만,

평생 인간 아버지 즈카르야의 명예를 지키며 살다가 결국 즈카르야라는 인간의 수준과 한계 안에

갇혀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지어주신 요한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고 평생 하느님의 이름을

들어 높였을 때, 그는 단순한 인간의 대를 잇는 자가 아니라

구세주의 길을 닦는 가장 위대한 하느님의 예언자로 성장했습니다.

 

생물학에 코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코이 잉어는 작은 어항에 기르면 5센티미터밖에 자라지

않지만, 커다란 수족관에 넣으면 25센티미터까지 자라고, 넓은 강물에 방류하면

무려 120센티미터의 거대한 물고기로 성장합니다.

 

사람의 영혼도 똑같습니다. 인간 아버지의 이름을 빛내려 하면 딱 그 인간의 수준만큼인

작은 어항 크기로 자라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려 하면 하느님의 거대한 강물처럼

신적인 차원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가 영광을 돌리는 그 대상의 크기만큼 자라나는 법입니다.

 

이름을 잃어버리고 세속의 어항에 갇히는 과정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에도

기가 막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마녀 유바바는 온천장에 끌려온 소녀 치히로의 진짜 이름을

빼앗고 센이라는 가짜 이름을 줍니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세속의 욕망에 휘둘리는 노예가 된다는

뜻입니다. 소녀가 끝까지 자기를 잃지 않고 마침내 부모를 구해낼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자기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증명하는 진짜 이름을 끝까지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방송에서 성인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대신 "김경희 님, 엄마로

사느라 힘들지 않으셨나요?" 하고 어머니의 고유한 이름을 불러주는 실험을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도구'로만 여기다가,

비로소 부모의 이름을 온전히 부르며 인격적인 성인으로 성장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3)에서 아들이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이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세상과 싸우며 참된 자유인으로 훌쩍 성장한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거룩한 율법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를 뼛속까지 살아내어 코이 잉어처럼

거대하게 성장한 위대한 인물이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님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지배하는 아사 감방에서 사람들은 절망하며 신의 이름을 저주했습니다.

하지만 콜베 신부님은 그 생지옥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갇힌 자들과 함께 성가를 부르며 하느님의 이름을 찬미했습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내 목숨, 내 이름 좀 살려주세요"라며 즈카르야 주니어의 수준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낸 것입니다.

그 결과 하느님께서는 죄수 번호 16670번이었던 그를, 하느님과 같은 사랑의 반열에 오른

위대한 성인으로 가장 높이 들어 올려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내 이름 한 줄 남겨보겠다고 인간의 좁은 어항 속에서 아등바등 살지 마십시오.

하느님을 내 심부름꾼으로 부리는 영적 교만을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내게 생명과 이름을 내어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거룩히 빛나도록,

내 삶을 온전히 그분의 강물로 던지십시오. 우리가 나의 비루한 이름을 지우고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을

온 삶으로 들어 높일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으로 완벽하게 키워내실 것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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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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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반 송 | 작성시간 26.06.23 new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썬플라워 | 작성시간 26.06.23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하늘 바라기 | 작성시간 1시간 20분 전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roko | 작성시간 1시간 3분 전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사랑이최고joan | 작성시간 9분 전 new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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