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송영진 모세 신부님

송영진 모세 신부 / 2025,12,07 대림 제2주일 - 요한의 회개 선포는 구원 선포이면서, 심판 선포입니다.

작성자효재마리아(수풀)|작성시간25.12.06|조회수74 목록 댓글 1

송영진 모세 신부

 

<대림 제2주일 강론>

(2025. 12. 7.)(마태 3,1-12)

 

<요한의 회개 선포는 구원 선포이면서, 심판 선포입니다.>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태 3,1-3)”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마태 3,7-12)”

 

1)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입니다(루카 17,21).

그리고 이 말은,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10절에 있는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가

바로 그 말입니다.>

 

우리가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은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고, 심판대에서 처벌과 멸망을 선고받지 않기 위해서,

즉 ‘구원을 선고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처벌과 멸망을 피하려는 생각만으로

회개를 한다면, 그 회개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회개,

억지로 하는 회개, 위선적인 회개가 될 것입니다.

신앙인은 구원받기를 희망하고, 원하고,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회개는 바로 그 희망에서부터 시작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원해서 하는 일, ‘기쁜 일’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 전체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기쁨 가득한’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처벌과 멸망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기 위해서’ 회개를 하는 것이라고

마음가짐을 바꿔야 합니다.

 

2)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는,

‘구원 선포’이기도 하고 ‘심판 선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기쁜 소식’이면서,

동시에 믿음도 거부하고 회개도 거부하면 구원받지 못하고,

처벌과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12절의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는, 충실한 신앙인들을

예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처벌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메시아는

구세주이면서 동시에 심판관이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처음에는 구세주로 오셨고,

심판관으로 오시는 것은 재림 때의 일이라고 믿고 있는데,

요한은 이렇게 예수님의 두 모습을 한 번에 선포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세례자 요한이 너무 성급하게 ‘재림 때의

예수님’을 미리 선포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생각하면,

세례자 요한이 재림 때의 일을 미리 말했다고 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3) 3절의 ‘주님의 길, 그분의 길’은, ‘주님께서 나에게’

오시는 길이기도 하고, ‘내가 주님께’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길’을 곧게 내라는 말은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천여 년 전의 유대인들에게 선포된 메시아는

‘오시는’ 분이었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이미 오신’

분이고, 우리 가운데에 살아계시는(현존하시는) 분입니다.

 

단순히 ‘대림시기’ 라는 이유만으로, 또 ‘대림’이라는 말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모르는 척 하면서,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자고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분’, 또는 ‘오실 분’이라면,

그리고 대림이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일’이라면,

예수님은 지금 이곳에 안 계시는 분이라는 말인가?

주님이신 예수님은 신앙인들을 떠나신 적이 없는 분이고,

신앙인들은 주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안 계시는 주님이 곧 오실

것이니까 그분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회개하자.”가 아니라,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과 더욱더 깊은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회개하자.”가 되어야 합니다.>

 

4) “독사의 자식들”은 “사탄의 자식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면서 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꾸짖는 말이고,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는, “심판이 무서워서, 심판을 피할

생각만으로 회개하는 척 하지 마라.” 라고 꾸짖는 말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회개를 하여라. 온 삶으로 실천하는 회개를 하여라.”

라는 뜻인데, 여기서 ‘열매’는,

회개를 통해서 ‘완전히 변화된 삶’을 뜻하는 말입니다.

<원래 신앙생활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합니다.

삶에 변화가 없다면, 회개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대림 제2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가톨릭사랑방catholicsb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nanuri | 작성시간 25.12.06 아 멘.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