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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모세 신부님

송영진 모세 신부 / 2026,6,22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작성자효재마리아(수풀)|작성시간26.06.21|조회수44 목록 댓글 1

송영진 모세 신부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강론>

(2026. 6. 22. 월)(마태 7,1-5)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 7,1-5).”

 

1) “남을 심판하지 마라.” 라는 말씀에서,

요한복음 8장에 있는 이야기가 바로 연상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요한 8,3-5)”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요한 8,7.9).”

 

‘하느님의 뜻’은 죄인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시켜서 구원하는 것입니다(요한 3,17).

만일에 죄인 자신이 끝끝내 회개하기를 거부한다면,

심판을 받고 멸망하겠지만, 그 심판과 멸망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입니다.

<여자를 붙잡아 끌고 오긴 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돌을 던지지 않고

그냥 떠나간 사람들은 그래도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심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

넘어지든 그것은 그 주인의 소관입니다. 그러나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서 있게 하실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로마 14,4).”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한 일을

하느님께 사실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로마 14,10.12).”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1요한 5,16-17).”

<이 말에서 ‘죽을죄’는 ‘죄인 자신이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해석됩니다.>

 

2) “남을 심판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다음 말씀들과 함께 묵상해야 합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3ㄴ-4).”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마태 18,15-16ㄱ.17).”

 

죄 짓는 형제를 꾸짖고 타이르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형제애 실천’입니다.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는 ‘파문’하라는 뜻인데,

‘파문’은 심판이 아니라, 회개할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파문당한 사람이 진심으로 회개하면,

교회는 그를 다시 받아들입니다.

‘형제애 실천’은 ‘함께 가는 일’입니다.

나도 죄인이지만, 형제와 함께 가기 위해서,

함께 회개하자고 권고하는 일입니다.

 

3) 예수님의 말씀에 있는 ‘티’와 ‘들보’는 가르침을

더욱 생생하게 주기 위해서 사용한 표현일 뿐이고,

누구의 눈에 무엇이 있는지, 즉 누구의 죄가 더

큰 죄인지, 그것은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

그래서 ‘들보’와 ‘티’ 라는 표현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다 똑같은 죄인들입니다.

어떻든 예수님의 말씀은, “너나 잘해라.”가 아니라,

“너부터 잘해라.”입니다.

 

내가 회개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인데, 내가 회개하는

것으로만 그치고 형제를 회개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랑 없는 일, 이기적인 일이 됩니다.

우리는 함께 회개해서, 함께 구원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고, 그 다음에는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 주어라.”로 읽어야 합니다.

 

내 눈에서 들보를 빼내는 일과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는 일을 모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순서는 ‘나의 회개가 먼저’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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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0870 | 작성시간 26.06.21 new 남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대접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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