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6년 3월 30일 성주간 월요일

작성자이슬|작성시간26.03.29|조회수221 목록 댓글 1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2026년 3월 30일 성주간 월요일

복음요한 12,1-11

 

 

4세기 사막의 한 수도승의 말씀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 한 끼 식사하면 수도승이다. 하루 두 끼 식사하면 육적인 인간이다. 하루 세 끼 식사하면 짐승이다.”

 

세 끼 식사 꼬박꼬박하고 여기에 간식까지 먹는 저는 무엇일까요?

식탐을 금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느님께 진심인 수도승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진심이기에 이렇게 엄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세기 이집트 북부의 사막으로 떠난 많은 수도승이 있었습니다.

왜 사막으로 갔을까요?

이제 세상의 박해가 사라진 상태에서 사막의 고독과 침묵이 곧 또 다른 순교(백색 순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철저히 하느님을 찾기 위해 편한 자기 삶의 터전을 떠나 사막으로 갔던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해야 하고, 그 마음에 진심이 담겨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사라지게 되면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게 됩니다.

특히 세상의 기준에 자기 말과 행동을 합리화시키면서 하느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건은 ‘파스카 축제 엿새 전’,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에 일어납니다.

장소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려내신 라자로의 집(베타니아)입니다.

 

마리아가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립니다.

순 나르드 향유는 인도 산지에서 나는 최고급 향유로, 한 리트라의 가치는 300 데나리온으로

노동자의 1년 치 임금에 해당합니다.

또한 당시 유다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 앞에서 머리를 푸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마리아는 체면과 관습을 모두 버리고, 가장 겸손한 종의 자세로 예수님께서 절대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에 유다 이스카리옷은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 12,5)라면서 사랑을 세속적인 가치로만 환산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큰 사랑을 보이는 가장 거룩하고 영적인 순간을 눈앞에 두고도, 물질에 눈이 멀어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유다인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요한 12,8)라고

말씀하시면서 마리아의 사랑이 합당하다고 하십니다.

 

주님을 위해 가장 소중한 향유를 봉헌하는 마리아의 모습과 신앙마저 자기 이익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유다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을 좇고 있는지를 묵상해야 합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신앙은 절대 낭비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아무도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여 새로운 결말을 만들 수 있다(제임스 R.셔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출처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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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on domingo | 작성시간 26.03.30 new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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