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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자료실

2018년6월8일 성 에프렘

작성자강정일 (바오로)|작성시간18.06.09|조회수123 목록 댓글 0


성 에프렘은

 교회역사가 소쪼메노스의 기록에 의하면 

306년 니시비스에서 그리스도교 신자 양친슬하에서 태어났다. 

수덕자이며 주교였던 야고보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였고, 

후일 이 신앙학교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시리아에서 “계약의 아들들”이라고 불렸으며 

수덕생활을 추구하던

 초기 수도자적인 삶을 살았다.

 성 예로니모의 기록에 따르면,

 에프렘은 부제로 주교를 도와 활동하였고, 

니시비스가 함락되자, 

그는 363년 에데싸로 피신하여

 동굴에 자리를 잡고 은수생활을 하고 

성서 주석, 교의 및 수덕 생활, 신앙생활에 관한 

수많은 글을 시리아어로 집필하여 남겼다. 

 

에프렘은 성부와 성자가 하나임을 믿지 않는

 아리우스파에 반대하며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에데싸에서 정통신앙을 수호하는

 “페르시아 학파”에 속하였고,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에데싸 시내에 페스트가 발병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흉년이 들었다. 

성인은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산에서 내려와 

부유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가진 것을 기부 하도록 설득하여 

구호활동에도 앞장섰다. 

 

에프렘 부제는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분이었다. 

“창세기와 탈출기 주석서”를 비롯하여 

많은 저술들을 남겼으며, 

그가 남긴 찬미가들은 유명하다. 

“파라디스 찬미가”, “신앙 찬미가”, “주님의 성탄축일과 

공현축일 찬미가”, “사순시기 찬미가”, “파스카 찬미가”,

 “동정성에 대한 찬미가”등 있다.

그는 노래로 성가 작사, 작곡을 하여 

신자들이 함께 불러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께 대한 사랑을 노래로 찬미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에프렘 부제는 노래로 성가 작사, 작곡을 하여 

신자들이 함께 불러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께 대한 사랑을 노래로 찬미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시리아의 ‘성가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성가를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성인은 음악이 지닌 영향력과 노래로 부르는 

기도의 힘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성인은 특히 

복되신 동정녀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도 신심이 깊었는데,

 그가 마리아의 원죄 없음을 단언하였기 때문에

 흔히 ‘원죄 없으신 잉태’의 증인으로도 불린다. 

또한 그는 공식 예절에 찬미가를 도입하여 

찬미가를 미사 때 노래로 부르도록 함으로써

 전례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신앙 교육에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부활신앙을 믿지 않는 이교도인들에게

 노래로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에프렘 부제의 찬미가는 일찍이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 그리고 라틴어로 번역되어

 자주 사용되었는데, 

그의 찬미가와 절기에 따른 찬가는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업적으로 인하여 

그는 ‘성령의 하프’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1920년 교황 베네딕투스 15세에 의하여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교황이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한 것은 

시리아 교회 출신으로 서방 교회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

 그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것이었다. 

 

에프렘은 ‘교부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또한 ‘시인 신학자’로 공경을 받는다. 

그의 시는 아름답고 놀라운 기도로 이어진다.

 그는 373년 6월 9일 에데싸에서 선종하였고, 

교회는 그의 축일을 6월 9일에 지낸다.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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