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갈리스토는
로마의 트라스테베레 태생인 로마인이었으나
카르포포루스의 노예로서 재정을 담당했었는데,
사업에 실패해 그리스도인 예금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히자 도망쳤다가 포르토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여기서 석방된 후에 그는
또 안식일에 회당에서 싸우다가 다시 체포되어,
이번에는 사르데냐 섬의 광산에서 일하는
중노동형을 받았다.
그는 황제 코모두스의 첩인 마르키아의 요청으로
다른 죄수들과 함께 석방되었고,
노예 신분에서도 풀려났다.
199년경에 그는 대부제가 되어
아피아 가도의 교회 묘지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
이때 그는 교황 성 제피리누스(8월 26일)의
친구이자 고문관이 되었다.
그는 217년에
성 제피리누스 교황을 승계하여 교황이 되었으나,
교황직에 가장 유력시되던
히폴리투스의 심한 반발을 받았다.
그들은 교리적으로 또 규율적인 입장에서
교황을 공격하여
쉽사리 사그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그가 운명함으로써
이 싸움은 끝이 났다.
4세기경부터 그는 순교자 축일표에 나타나
순교자로 공경을 받았는데,
그 당시에는 박해가 없었지만
아마도 시민 폭도들에 의하여
살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 갈리스토는
교황직에 등위 후 222년 경에 순교했으며
초창기 교회의 순교자로서
추앙받는 성 베드로를 제외한 첫 번째 순교한 교황이다.
글...천주교부산교구 "오늘의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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