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운치
집에서도 창밖을 내다보면 바다와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곳이지만, 정작 밤바다의 운치를 느껴본 지는 오래되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지인 몇몇과 함께 밤바다를 찾아 나섰다.
주일 저녁, 우리는 광안대교를 향해 길을 잡았다.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고, 좌우로 늘어선 빌딩 숲의 불빛은 별무리처럼 반짝였다.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그날따라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다.
광안대교를 건너며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다리가 개통되던 해, 이곳에서 하프마라톤대회가 열렸었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다리 위를 힘차게 달리던 그날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차량이 오가기 전에 내가 먼저 그 길을 달린다는 사실이 신기하고도 자랑스러웠다.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그 다리를 건너니 지난날의 추억이 파도처럼 밀려와 마음을 적셨다.
다리를 건너 도착한 곳은 용호동이었다. 이름난 오리탕집에는 손님들로 빈자리가 없을 만큼 북적였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오리 옻백숙을 주문했다. 옻닭은 먹어본 적이 있었지만 오리 옻백숙은 처음이었다.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몸에 좋은 보양식이라는 생각이 더해져 한 숟갈 한 숟갈이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심한 감기로 한 달 가까이 고생하던 때였다. 지인의 권유로 처음 옻닭을 먹었는데, 감기에 좋다는 말에 국물까지 넉넉히 마셨다. 신기하게도 다음 날부터 심하던 기침이 차츰 잦아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뒤로도 가끔 옻닭을 찾게 되었고, 국물을 얻어와 냉장고에 보관하며 먹곤 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오륙도 밤바다를 찾았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불빛들이 바다와 어우러져 밤의 장막 위에 수놓은 은빛 자수 같았다. 차와 빵을 나누며 살아온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았다. 기쁨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지만, 함께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인연의 소중함은 더욱 깊어졌다.
어느덧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광안대교를 건넜다. 길게 이어진 빌딩 숲의 찬란한 불빛은 마치 우리를 향해 환송의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오늘도 소중한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추억을 쌓으며 뜻깊은 하루를 보냈다. 밤바다의 물결은 쉼 없이 밀려오고 밀려가겠지만, 함께 나눈 웃음과 따뜻한 정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