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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음식이 남긴 상처

작성자민병옥|작성시간26.06.10|조회수107 목록 댓글 0

음식이 남긴 상처


  정신적·심리적 충격으로 남은 깊은 마음의 상처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기억 한편에 남아 있다가 문득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나는 아직도 몇 가지 음식에 얽힌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친구와 함께 무전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진주에서 남해로 향하던 길에 길거리에서 번데기 한 봉지를 사 먹었다. 그날 밤 남해의 한 여관에서 묵게 되었는데,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고 가려움이 심해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약국에 들러 증상을 이야기하니 식중독인 것 같다며 약을 지어 주었다. 약을 복용하자 거짓말처럼 증상이 가라앉았고 두드러기와 가려움도 차츰 사라졌다.
  그 일을 겪은 뒤로 번데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당시 술집에 가면 기본 안주로 번데기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구수한 냄새가 입맛을 돋우고 맛도 좋았지만, 젓가락을 들었다가도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이내 내려놓곤 했다. 번데기 대신 맥주잔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이처럼 마음에 남은 상처는 잊으려 해도 쉽게 잊히지 않는가 보다. 오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기억이 생생하니 말이다. 그 이후 우리 집 식탁에는 번데기가 오르지 않았다. 고단백 식품이고 맛도 좋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또 하나 잊히지 않는 음식이 있다. 바로 여름철 별미인 냉면이다. 수십 년 전 어느 여름 저녁, 아내와 함께 냉면집에 들러 물냉면을 먹었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의원을 찾았더니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특히 여름철 물냉면은 위생 상태에 따라 장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약을 처방받아 복용한 뒤에야 증상이 차츰 나아졌다.
  그 뒤로는 냉면도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었다. 냉면집에 가더라도 다른 음식을 주문했다. 함께 간 사람들은 냉면에도 알레르기가 있느냐며 의아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충 웃어넘기며 얼버무렸다.
  지금은 고기도 예전처럼 즐겨 먹지 못한다. 위 수술을 받은 뒤부터 고기가 잘 소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불에 구운 고기는 속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었는데, 정작 건강검진에서는 빈혈이 있다며 고기를 자주 먹으라는 권유를 듣는다. 그러나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처럼 한 번의 불쾌한 경험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기억 속에 남아 우리의 행동을 좌우한다. 그것이 꼭 큰 상처가 아니더라도 삶의 습관과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조금 단단히 먹어 보려 한다. 여름 음식의 으뜸은 역시 냉면이다. 올여름에는 오랫동안 피해 왔던 냉면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오래된 기억을 이겨 내고, 새로운 맛으로 그 기억을 덮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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