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꼬
자연의 오월은 희망과 환희로 우리를 부르는데 코로나19의 재앙은 세상을 깊은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한동안 잠잠하여 자유를 찾았나 싶었는데 또 발목에 차꼬를 채운다.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방역에 주의하며 며칠을 지나고 나니 코로나의 진원지가 서울로 옮겨져 지진을 일으키듯 가슴이 철렁하고 경악케 한다.
또다시 환난을 겪으란 말인가.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것에 인류가 감당하지 못하고 넘어지다니 인간 또한 나약한 존재임을 새삼 느낀다. 우주를 다스리는 神은 인간을 시험에 빠뜨리고 있다. 새로운 세상에 합류하여 잘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를 더욱 완고하게 단련을 시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 몸에 어떤 질병이 올 때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고 미리 신호를 보냈는데도 감지를 못하고 무심코 넘겨 버림으로써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진다. 어떤 고통이나 환난이 닥칠 때는 그것이 왜 나에게 왔는지 생각하고 번민과 좌절을 떨쳐 버리고 버티고 인내하며 싸워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그 너머에는 새로운 희망이 준비되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옛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쉽사리 파라오가 그들을 보내준 것이 아니다. 神은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더욱 고통을 주었다. 열 가지의 재앙(자연 재앙)을 주어 그들을 괴롭혔다. 또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40년 여정의 시련과 고통이 따랐다. 그것은 神의 권능을 드러냄과 동시에 다음에 전개될 미래에 적응하기 위한 단련의 시험이었다.
지금에 닥친 고난도 그렇지 않을까.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새로운 세상이 되어 환경이나 생활 방식이 달라져 삶의 변화가 오리라.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입어야 그에 합당하게 된다. 그 세상은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지금의 시련을 기회로 삼아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쇄신해야 한다.
다시금 우리를 가두려고 하고 있다. 90여 일 동안 시험을 치렀는데도 인내하지 못하고 뛰쳐나가 제멋대로 행동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아직 인내와 수양이 부족함을 스스로 드러내었다. 요번 진앙은 이태원 클럽이다. 격리로 묶였던 차꼬를 풀어주니 수천 명이 몰려가 불꽃을 태웠으니 지난 환난은 잊어버리고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
神은 우주를 창조할 때 모든 피조물이 잘 만들어져서가 아니라 서로 조화를 잘 이루어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피조물을 지배하고 말살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일삼으며 인간을 존재케 한 神과 동등한 위치에 오르려는 바벨탑의 교만이 불행을 초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神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기대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언제 또 다른 재앙이 닥칠지 모를 일이다. 차꼬를 채우고 푸는 일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