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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

[성인]성인 이야기 7 -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 (F. de Paola, 1416∼1507)

작성자라파엘|작성시간09.04.05|조회수182 목록 댓글 0

 

  은수사. 미니모회(Minimi)의 창립자.

 

  이탈리아의 파올라에 사는 야고보 말도리라 부부는 자녀가 없음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 전구를 청하며 자녀를 주실 것을 하느님께 간청했다. 그 결과 한 남자아이를 낳았고, 전구해 주신 성인에게 감사의 정을 표시하기 위해 그의 이름도 프란치스코라고 이름지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눈병에 걸렸서 양친은 재차 성 프란치스코의 전구를 청하했다. 만일 낫게 해주신다면 장차 아이를 반드시 당신의 수도원에 보내어 하느님께 봉헌할 것을 맹세했다. 그러자 그 눈병도 즉시 완치되었다.

 

  프란치스코가 13세에 달했을 때 양친은 맹세대로 그를 어느 수도원에 들여보냈다. 그는 온갖 규칙을 충실히 지키며 순명하고 겸손하며 엄한 고행도 알뜰히 해 나갔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시로 자신도 사명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1년 뒤 수도원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부모를 따라 로마, 아시시를 순례하였다. 14세 때 파올라 부근 해변에 은수사로서 정주, 19세 때부터 많은 제자들이 신변에 모이기 시작, 이 집단은 ‘미니모’회(가장 작은 수도회)라는 새로운 수도회로 발전되어 갔다.

 

  이때부터 그는 가난하고 억압당한 자들의 옹호자가 되어 그들의 주장을 아라곤왕국의 페라테 1세나 프랑 스의 루이 11세 앞에서 서슴없이 변호하였다. 1474년 미니모회는 교황 식스토 4세로부터 공인을 얻었다. 1482년 교황 식스토 4세의 권유로 루이 11세의 종부성사를 수락하고 프랑스에 가서 행복한 임종을 맞도록 마련하였다. 또 그는 프랑스와 브르타뉘공국(公國)과의 평화유지에 공헌하였고, 루이 11세에게 스페인에 대해 루지용(Roussillon), 세르다뉴 (Cerdagne) 양군을 할양(割讓)할 것을 권고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의 평온을 유지하게 하였다.

그는 평생을 영적(靈的)인 아버지로 숭앙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겸손과 청빈을 지켰다. 또 그는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 이외에 사순절의 금육을 계속 지키라는 네번째 규율을 덧붙였다. 프란치스코는 프랑스 궁전에 머물던 1507년 4월 2일 성금요일에 세상을 떠났고 죽은 지 12년 지난 1519년 교황 레오 1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축일은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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